남자는 탈바꿈 한다
스크롤 이동 상태바
남자는 탈바꿈 한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탈 쓴 장로에게 4월의 하늘은 잔인했다

▲ ⓒ뉴스타운

금송아지에게 번제와 화목제를 드린 후, 먹고 마시며 뛰면서 노닥거리는 히브리 민족을 놓고, 여호와는 격분했다. 그리고 가차 없이 “목이 뻣뻣하고 부패한 그의 백성을 진멸할 것”이라 모세에게 경고했다.(출애굽기 32장 7-10절) 경남기업 회장 성완종은 교회 장로로서 못할 짓을 서슴없이 저질렀다. 그는 온갖 사기로 더러운 돈을 끌어 모아 “국회 정피아”까지 치고 올라 갔으나, 결국 면피하지 못하고 부활절이 겨우 며칠 지나며 자진하고 말았다. 지난 4월 5일은 부활절이었다. 부활은 그리스도가 애벌레에서 나비로의 탈바꿈을 개시한 사건이었다. 그리스도인은 탈피 아닌 탈바꿈 한다. 곤충은 번데기 때 제 몸을 통 채로 녹여 변태(metamorphosis) 하는데, 이 과정은 뱀이 탈피(slough)하는 것과 질적으로 다르다.

베네치아 부활절 카니발은 특히 가면 축제로 유명하다. 남미의 카니발처럼 관능적이지도 않고, 유럽 다른 나라의 축제처럼 열정적이지도 않다. 그럼에도 형식이나 연출이 없는 베네치아 카니발에서는 마스크만 쓰면 누구나 주인공이다. 마스크를 쓰고 벌이는 놀이는 우리에게도 친숙하다. 탈춤이나 가면극 등에서 몰락한 양반, 파계승, 무당, 하인들을 등장시켜 특권계급의 위선적 윤리에 반항했던 것이다. 이와 같이 베네치아 카니발도 참가자에게 마스크 뒤로의 은밀한 자유로움과 일탈된 놀이를 즐기게 해준다. 그러나 우리 전통 탈춤에서도 찾아볼 수 있지만, 서구의 가면 축제 역시 영적 절망과 상류층의 황무지 같은 비애가 깊이 깔려있다.

이완구는 “카멜레온 관피아”의 대표적 인물이다. 이 (전)총리가 취임과 함께 부패와의 전쟁을 선포한 담화 이후, 검찰수사의 타깃 1번으로 경남기업이 잡혔던 것은 돌이킬 수 없는 운명이었다. 그는 이른바 “성완종 리스트”에 자기 이름이 포함된 사실에 대하여 “섭섭함의 되돌려 차기가 아니겠나.”로 둘러 대었다. 그런데 국회 본회의장 대정부 질문에서 한바탕 웃음이 터진 뜻밖의 순간이 있었다. “(질문)4월이 무슨 달인 줄 아세요?” “(답변)잔인한 달 아닙니까? 저에게는 잔인한 달입니다.” 엘리엇(Eliot)의 시 황무지(The Waste Land, 1922)에서 따온 구절이다. “4월은 가장 잔인한 달 /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 추억과 욕정을 뒤섞고 / 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운다.”

원효(元曉, 617-686)는 7세기 때 70 평생 탈바꿈의 명수로 살았다. 어려서 “새털”이란 이름으로 절밥 먹고 성장하다가, 청소년 때 화랑으로 변신하고, 김유신이 그의 고향 압량주 도독으로 취임하자 금성으로 피하여 황룡사에서 출가했고, 이후 이웃 분황사를 거점으로 “반체제 반전쟁 시위”를 주도했다. 다분히 원효의 연출이기도 한데 김춘추가 보다 못해 자기 딸을 주어 파계하도록 유도했고, 그것도 불안해서 아예 의상(義湘, 625-702)까지 딸려 중국으로 방출시키려했지만 “해골 사건(?)”으로 되돌아와 태종무열왕의 무력통일 의지에 거역했다. 김춘추가 봤을 때 삼국통일과 그의 권력유지에 가장 위험한 인물은 군부의 김유신과 민중의 원효였다. 왕은 가장 확실한 방법을 택하여 둘째 딸과 셋째 딸을 각각 원효와 김유신에게 주어 사위로 삼았다. 이렇게 원효와 김유신은 동서로서 한 배를 탔지만, 좌우로 나뉜 정치적 라이벌이었다.

원효는 환속 거사로서 자임했고, 화엄경에서 “무애(無碍)”를 따서 써넣은 표주박을 높이 쳐들고 흔들어대었다. 그리고 품바가 되어 발 닿는 대로 세상 모든 고을과 장터를 찾아가며 돌아다녔다. 아래는 이때 원효가 불렀음직한 “새털 거사의 각설이 타령”이다.

“어얼 씨구씨구 들어간다 / 저얼 씨구씨구 들어간다.

작년에 왔던 각설이 / 죽지도 않고 또 왔네.

어허 품바품바 들어간다 / 저허 품바품바 들어간다.

나무아미타불 / 관세음보살.

일 자나 한 장을 들고나 보니 / 김춘추가 정복 통일 / 새털 거사는 하나 마음.

둘에 이 자나 들고나 보니 / 김유신은 생멸 장군 / 새털 거사는 진여 회통.

삼 자나 한 장을 들고나 보니 / 자장 황룡은 호국불교 / 새털 거사는 불국토.

열에 십 자도 남았구나 / 현수 화엄은 십종 교판 / 새털 거사는 십문 화쟁.“

대체로 당대 세계 최고의 석학으로 삼장법사(현장, 602-664)을 꼽을 수 있겠으나, 원효는 판비량론(判比量論, 671)을 통해 법상종 유식론(法相宗 唯識論)의 미비함을 꾸짖고 있다. 즉 현장은 제8식을 모든 의식의 바탕으로 깔아 해탈까지 설명가능하다고 보았으나, 원효는 이것마저 한낱 마음의 작용으로 파악했고, 이로써 자신의 브랜드가 된 “일체유심조”의 뜻한 바를 관철시켰다. 판비량론은 재미나는 발굴일화를 가지고 있어서 더욱 유명하다. 1967년 초 일본 동경거리에서 한 엿장수가 책갈피를 찢어 엿을 팔고 있었다. 지나가던 한 불교학자가 예사롭지 않은 글씨체에 빨려들어 그 책을 구입했는데, 바로 판비량론의 잔본이었다는 것이다.

원효가 김춘추와 김유신과 더불어 대결할 수 있는 강단의 근거는 이처럼 세계최강의 내공이 뒷받침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뿐 아니라 삼국유사를 저술한 일연과 동향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좁은 반도를 벗어나지 못하는 조급하고 근시안적 역사관에서 벗어나서 대륙의 배달환국까지 아우르는 강토회복에 대한 열망 때문이 아니었을까. 물론 시간은 어느 정도 걸리겠지만, 원효의 믿음은 그들과 달리 반드시 평화통일에 의한 정토낙원이었다. 원효의 속성은 설(薛)씨인데, 설씨는 서라벌건국 6촌 중의 하나지만 몇 번이나 멸문 당한 역사적 흔적이 남아있다. 역사와 현실을 거슬러 창조적 관점에서 세계를 바라보는 사람은 죽음과 부활의 탈바꿈을 겪어야 가능할지 모른다. 천재적 통찰력과 초인적 노력도 필요하지만, 자신의 삶을 통해 몸소 실천하기까지 남자 같은 과감한 용기도 뒤따라야 한다.

루키(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 1889-1951)는 이와 같은 삶을 이끌어낸 사람으로 평가되며, 동서고금을 떠나 원효와 비견되는 철학자다. 루키는 마치 곤충처럼 완전 탈바꿈 과정을 뚜렷하게 보였다. 1889년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철강회사 갑부의 5남3녀 중 막내로 태어나, 부친의 뜻에 따라 1908년까지 독일어권에서 실업계 교육을 받았던 약 19년의 삶이 “알”에 해당된다. 이어서 영국으로 건너와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논리철학을 전공하고,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에 자진 참전하여 1918년 “논리철학논고”를 완성하기까지 약 11년 사이가 전설이 된 “애벌레” 시절이다. 그리고 1919년 거액의 유산을 기부하고, 시골학교 교사가 되었다가 폭력교사로 몰려 사임하고 귀향하기까지 약 10년간이 “번데기” 시기라고 볼 수 있다. 끝으로 1929년 트리니티 칼리지로 돌아가 펠로(fellow)가 된 후, 제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철학적 탐구”를 집필하고 1951년 사망하기까지 약 22년 동안이 “어른벌레” 시기로 분류할 수 있다.

비트겐슈타인은 타임지가 20세기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로서 100인에 선정된 유일한 철학자다. “논고”의 마지막 문구는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라는 이성 지상주의의 경고였다. 그러나 “탐구”에서는 “야성이 먼저이고, 이성은 그 다음이다. 언어놀이 안에 비로소 그 이유가 들어있다.”며, 자신이 예전에 만든 명제까지 뒤집었다. 루키에게 지상명령은 금송아지가 모셔져 있는 우상의 동굴에서 인류를 밖으로 인도하는 것이었으며, 죽기까지 사명은 철학의 위대함이 아니라 황무지에서 언어가 작동하는 참뜻을 모두가 깨닫게 하는데 있었다. 1951년 4월 26일 생일날 담당의사가 생이 이제 며칠 남지 않았다고 알려주자, 루키는 "좋아요, 사람들에게 내 삶이 참 멋있었다고 전해주시오."라고 마지막 말을 남겼다. 그리고 4월 29일 그의 죽음은 절정의 순간이었다. 비트겐슈타인에게 화려한 탈바꿈이 남아 있기에.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메인페이지가 로드 됐습니다.
기획특집
가장많이본 기사
뉴타TV 포토뉴스
연재코너  
오피니언  
지역뉴스
공지사항
동영상뉴스
손상윤의 나사랑과 정의를···
  • 서울특별시 노원구 동일로174길 7, 101호(서울시 노원구 공릉동 617-18 천호빌딩 101호)
  • 대표전화 : 02-978-4001
  • 팩스 : 02-978-8307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종민
  • 법인명 : 주식회사 뉴스타운
  • 제호 : 뉴스타운
  • 정기간행물 · 등록번호 : 서울 아 00010 호
  • 등록일 : 2005-08-08(창간일:2000-01-10)
  • 발행일 : 2000-01-10
  • 발행인/편집인 : 손윤희
  • 뉴스타운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뉴스타운. All rights reserved. mail to newstowncop@gmail.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