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록강단교, 일제의 수탈과 6.25전쟁의 ‘슬픈 역사의 현장’
스크롤 이동 상태바
압록강단교, 일제의 수탈과 6.25전쟁의 ‘슬픈 역사의 현장’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통일을 성취코자하는 책임감을 느끼는 현장

 
총길이 944m였던 ‘압록강단교’(鴨綠江斷橋, 일명 ‘청성교’)는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북한 신의주(新義州)와 중국 단동(丹東)을 잇는 철교로 일제가 중국의 자원을 약달하기 위하여 건설된 교량으로 한반도와 중국 동북지방의 국경(國境) 관문 역할을 하였으나, 6.25전쟁으로 인해 끊어져 오늘에 이른 슬픈 역사의 현장이다.

지난 1908년 8월 착공해 1911년 10월에 준공했으며, 교량 중간에 철도를 부설하고 좌우 양쪽에 2.6m의 보도(步道)를 설치했고, 아치 12개로 강을 항해하는 배를 통과시키기 위해 북한쪽 9번째를 개폐식으로 만들었으나, 1934년 11월부터 교량보존을 이유로 개폐를 중지했다.

1950년 10월 19일 팽덕회 중국인민지원군 사령관과 모안영 모택동 주석의 아들이 이 교량을 건너 북한을 지원했으며, 중국이 대량의 무기와 보급품을 수송하자 미군이 이를 막기 위해 1950년 11월 8일 B-29폭격지로 폭파해 통행이 불가능하고 북한쪽에는 교각만 남았다.

상류쪽의 ‘조중우의교’(朝中友誼橋)는 1937년 복선형 철교로 부설, 1943년 개통해오다 1990년 북한과 중국이 합의해 ‘조중우의교’(朝中友誼橋)로, 중국측에서는‘중조우의교’로 부르며, 현재는 북한과 중국간의 통행과 교역로로 이용하고 있다.

중국측은 끊어진 압록강단교를 관광지로 개방해 왕래할 수 있게 했으며, 유람선를 이용해 단교와 우의교를 지나 위화도 하단에서 북한쪽 강어귀를 내려가 월랑도까지 왕복하는 관광코스도 개발해 운영하고 있다.

단교에 올라서서 바라보는 단동은 개발이 한창 진행되면서 대규모의 빌딩과 아파트를 건설하고 있고, 야간에는 불야성을 이루고 있으나, 신의주쪽은 정중정(停中停)의 현실이 눈앞에 다가왔다.

굶주림과 억압에 못이겨 탈북하는 북한사람들이 압록강건너 북한땅 고향산천을 바라본다면 그 참담(慘憺)함은 이루말로 표현할 수 없는 비감(悲感)에 젖을 것이라 것은 불문가지(不問可知)일 것이며, 무역을 위하여 중국을 왕래하는 북한관리나 주민들, 4개가 있다는 북한식당 봉사원들은 이 현실을 자연히 체득(體得)하고도 남을 것이다.

나라를 잘못다스린 선조들로 인하여 대한제국이 일제의 식민지로 전락하면서 남북분단의 단초가 되어 오늘 눈앞에 펼쳐진 역사적인 현실에 큰 자괴감(自愧感)은 물론 우리세대에 반드시 통일을 이루어 후손에게 물러주어야 할 책임감을 함께 느끼게 하는 현장이였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메인페이지가 로드 됐습니다.
기획특집
가장많이본 기사
뉴타TV 포토뉴스
연재코너  
오피니언  
지역뉴스
공지사항
동영상뉴스
손상윤의 나사랑과 정의를···
  • 서울특별시 노원구 동일로174길 7, 101호(서울시 노원구 공릉동 617-18 천호빌딩 101호)
  • 대표전화 : 02-978-4001
  • 팩스 : 02-978-8307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종민
  • 법인명 : 주식회사 뉴스타운
  • 제호 : 뉴스타운
  • 정기간행물 · 등록번호 : 서울 아 00010 호
  • 등록일 : 2005-08-08(창간일:2000-01-10)
  • 발행일 : 2000-01-10
  • 발행인/편집인 : 손윤희
  • 뉴스타운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뉴스타운. All rights reserved. mail to newstowncop@gmail.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