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나라에는 매카시가 꼭 있어야 한다
지금 우리나라에는 매카시가 꼭 있어야 한다
  • 백승목 대기자
  • 승인 2012.06.02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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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공검사 오제도와 선우종원, 숙군주역 김창룡이 필요 할 때

이명박이 중도를 선언(2009.7.20)하고 대북뇌물사건 주범 김대중의 국장을 치르고 난 2009년 8월 31일 인터넷매체에 게재 했던 칼럼이다. 그 당시보다 현재의 상황이 오히려 몇 배나 더 심각하다고 여기면서 이를 수정 없이 다시 게재한다. "지금 세상에 빨갱이가 어디 있느냐?"고 생각하는 얼간이들은 이 칼럼을 읽을 필요도 읽을 자격도 없다.

매카시는 악마가 아니었다.

소위 지식인사회 특히 '진보'를 자처하는 '親共 내지는 容共的 입장을 취하는 지식인(?)' 사이에 마치 악령(惡靈)처럼 경원당하고 저주받아 온 이름이 아일랜드계 미국인 농부의 아들로서 변호사를 거쳐서 상원에 진출하여 소위 매카시 선풍으로 1950년대 미국 정가를 주름잡은 죠지프 매카시(Mc Carthy, Joseph Raymond 1908.11.14~1957.5.2) 일 것이다.

매카시는 1950년 2월, 205명의 공산주의자가 국무부에 침투했다고 공개적으로 폭로함으로써 미국 전역을 들끓게 했으나 얼마 후 있었던 상원 외교관계위원회 증언에서 '정식등록을 한 공산주의자'가 어느 부서의 누구인지 實名을 제대로 밝히지 못했다는 이유로 근거 없는 폭로자라는 누명을 쓰고 적어도 소연방해체 시까지 40여 년 동안은 악마로 매도당해 왔다.

매카시즘이 근거 없는 선동이나 정적에 대한 악의적 공세가 아니라 이유 있는 문제제기이자 근거 있는 고발이었음이 확인 된 것은 1995년 미연방 극비문서 '베노나프로젝트'가 비밀이 해제되면서 매카시가 지목한 앨저 히스(Alger Hiss), 해리 홉킨스(Harry Hopkins), 해리 덱스트 화이트(Harry Dexter White)등이 간첩이었다는 사실이 입증되었기 때문이다.

비밀문건에 의하면 루즈벨트 대통령 아래서 얄타회담을 준비한 국무부차관보 앨저 히스, 국제통화기금 창설을 준비한 재무부 차관보 해리 덱스트 화이트, 뉴딜의 공공사업을 관장하다가 루스벨트의 보좌역으로 전쟁정책에 간여했던 해리 홉킨스도 간첩이었고 심지어는 CIA의 전신인 OSS의 참모장이던 던컨 리도 소련간첩이란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비록 간첩은 아니었지만 간첩 못잖게 소련을 이롭게 한 공산주의자로서는 내무장관을 지낸 해롤드 아이크스, 죤스홉킨스대학의 중국전문가로 루스벨트 행정부와 트루먼 행정부의 아시아 정책에 큰 영향력을 발휘했던 모택동주의자 오웬 래티모어, 국공내전에서 모택동을 유리하게 만든 2차 대전시 합참의장 출신으로 트루먼 정부 국무장관을 지낸 죠지 마샬도 중국공산당에 우호적이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런 사실(FACT)에 비춰볼 때 매카시는 비열한 밀고자도 난폭한 폭로자도 아니었으며 악질적 선동가도 아닌 '정당한 고발자' 이었음에도 불구하고 20C의 악마로 매도당하고 지탄받게 된 이유는 미국 판 송두율이라 할 앨저 히스 등 수정주의자들의 끈질긴 반격과 매카시즘이라는 단어를 만들어 낸 오웬 래티모어의 惡評의 결과로 보고 있다.

정치적으로는 1953년 미 상원에서 매카시의 공세로 위기에 내몰렸던 민주당내 진보파들이 유력한 언론이 매카시를 비판 공격하기 시작하는 등 매카시에 대해 식상한 사회적분위기를 틈타 공화당내 '실용주의자'들과 결탁하여 "매카시 활동이 무책임하고 무분별하다"는 애매한 명목의 징계 안을 통과시키면서 반공의 기수 매카시는 몰락하고 말았다.

간첩과 빨갱이 이야기

1973년 1월 27일 파리에서 월남정부가 빠진 채, 월맹과 베트콩 그리고 미국 3자간에 '평화협정'을 체결하고 일방적인 휴전에 들어 간지 불과 1년 반 만인 1975년 4월 30일 월남의 수도 사이공이 월맹군에 함락되면서 월남공화국은 지구상에서 영원히 사라지는 비극이 발생 했다.

바로 월남 패망직후 드러난 사실은 월맹이 남파한 간첩이 무려 5만 명에 이르고 티우 정권타도에 앞장 선 100여개 (위장)시민단체에서 활동한 목사, 승려, 학생, 용공분자들이 反戰과 인도주의와 민족주의를 표방했던 운동이 간첩과 긴밀하게 연계 투쟁해 왔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독일 통일 후 드러난 동독의 슈타지(Stasi) 간첩은 '비밀 정보원 수 2만~3만명'으로 그 중, 첩자로 포섭된 서독 연방의원의 숫자만도 '원내 교섭단체'를 구성할 정도였으며, '총리 보좌관, 여당 원내총무, 내독성(통일부)장관도 간첩'으로 포섭. 서독 거물인사들의 여비서에 대한 미남계(美男計)로 유혹해 정보를 수집하고 슈타지 마수가 '정계 재계 학계 종교계 언론계 학생운동권 등 사회 전반에 침투' 했다는 사실은 우리를 전율케 하고도 남았다.

그런가하면, 1999년 10월 이태리 의회에서 아르만도 코수타 전 공산당수를 비롯해서 상원의원과 언론인, 외교관, 교수, 기업인, 학생 및 심지어는 가톨릭 성직자와 '일부 우익인사' 에 이르기까지 약 200여명이 소련 KGB의 간첩으로 활동했다는 사실이 폭로되어 이태리 정국이 발칵 뒤집히기도 하였다.

황장엽의 5만 명 정보기관의 2만 명

1996년 2월 12일 주 중국 대한민국 대사관에 망명요청을 한 황장엽은 한국 내에 5만여 명의 북한 간첩이 암약하고 있으며 정부 깊숙이에도 파고들었다고 증언한바 있으며 이에 대하여 당시 보안 및 방첩관계자들은 A-3방송망 등을 근거로 2만 명 내외의 간첩이 암약하고 있다고 시인하기도 하였다.

우리는 지금 56년 전 매카시의 주장이 사실이었느냐, 34년 전 월남패망 당시 간첩이 몇 명이었느냐, 20년 전 베를린 장벽 붕괴와 독일 통일 후 밝혀진 동독 슈타지 간첩이 몇 만 명 이었느냐, 이태리 공산당수와 상당 수 신부가 KGB 간첩 이었느냐를 따지고 있을 만큼 한가하지 못하다.

다만 우리가 지금부터라도 정신 바짝 차려야 할 것은 김대중 시절인 1998년 석방 된 서경원, 박노해, 김낙중, 황인오와 1999년 석방 된 고영복, 안재구와 류낙진, 최호경과 조덕원, 일본인 메구미 납치범 신광수, 2000년에 석방 된 무하마드 깐수와 심정웅 외에 우용각 등 미전향장기수 19명의 신분과 정체에 대해서 주목하지 않을 수가 없다는 사실이다.

특히 노무현 시절인 2005년 석방 된 민경우, 강태운, 이종린, 하영옥 등이 민노당과 범민련 등 친북단체에 깊숙이 간여 하고 있었다는 사실과 2006년 10월에 불거져 나온 일심회 간첩단 사건과 지난 4월에 있었던 공동선언실천연대에 대한 이적단체 및 간첩 판결에서 보듯 우리사회 구석구석에 간첩이 암세포처럼 퍼져 있다는 사실에 경각심을 높여야 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친북정권 아래서 과거사 청산이라는 미명하에 1970년대 및 1980년대 공안사건을 '재심'이라는 절차를 악용, '합법'을 가장하여 '민주화인사 명예회복 및 보상심의'라는 요식행위를 거쳐서 '반정부 반체제 친북용공통일 반국가폭력투쟁 = 민주화 투쟁' 이라는 해괴한 공식을 만들어 사실상 빨갱이와 미전향 주사파에게 면죄부를 주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또한 작년 여름 100일 촛불폭동에 앞장선 "범"자 돌림 단체들이 '미군철수, 국가보안법철폐, 연방제통일' 이라는 북의 지령에 절대복종하고 이를 충실하게 실천하려는 "빨갱이"들로서 '우리민족끼리와 6.15인정, 10.4합의 이행'을 부르짖으면서 무차별 폭력투쟁을 주도하고 있다는 엄연한 사실을 도외시해서도 안 된다.

이렇게 볼 때 1996년 당시 A-3방송이라는 낡은 통신수단을 기초로 판단했던 2만여 명 내외의 간첩세력이 2009년 전 세계 실시간 인터넷 통신시대에 무엇을 근거로 간첩망을 산출해 낼지 모르겠지만 2009년 8월 현재 대한민국에서 암약하는 간첩망과 정체를 노출해가면서까지 대담하게 투쟁하고 있는 "빨갱이"는 몇 만이나 될지 가늠하기가 쉽지 않다.

2009년 현재 우리에게 만약 오제도(吳制道 1917∼2001)와 같은 반공검사가 있다면 국민들이 한결 편안하게 잠 들 수 있을 것이다. 우리에게 만약 천용택과 김대업 그리고 설훈 같은 악질적인 모략음해조작폭로가 대신에 간첩을 바로 보고 "빨갱이"를 제대로 구분할 줄 아는 단 한명의 매카시가 있다면 대한민국의 내일은 어둡지 않을 것이다.

빨갱이는 스스로를 빨갱이라 안 한다.

우리는 흔히 반공하면 60년대 군사정권의 유물정도로 치부하기 일쑤이다. 혹자가 실수로(?) "빨갱이"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기라도 하면 "지금이 어느 시댄데 색깔논쟁이냐?"고 면박을 당하기 일쑤요 "반공"을 주장하면 20C 냉전종식과 21C 탈이념 탈냉전시대에 함께 살 수 없는 석기시대 야만인이거나 정서적 장애인 취급을 받기도 한다.

그러나 멀리 이태리나 독일 월남의 예를 들것 없이 대한민국의 현실을 보라. 경찰을 7명씩이나 불태워 죽인 방화 살인범이 46명이나 무더기로 '민주화인사'가 되어 "이건 아니다."라고 바른말 하는 우익은 수구꼴통 극우로 매도당하고 순직경찰관 명예회복을 서두르던 국회의원이 국회의사당에서 민가협 '조직원' 들에게 폭행을 당해 실명의 위기를 맞는 게 오늘의 현실이다.

위수김동을 노래 부르고 친지김동을 찬양하던 자들이 '민주화 인사'로 둔갑하고 '화염병과 쇠파이프'로 국군을 폭행하고 경찰관을 실명시킨 폭도들이 거리를 활보하는 세상에 우리가 숨 쉬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명색이 국회의원이란 자들까지 심지어는 정동영 같이 대통령 후보를 지낸 자 까지 '국가보안법폐지, (주한미군철수 대신에) 한미연합사해체, (국가연합이란 말로)연방제통일은 물론이요 NLL양보와 헌법 제3조 영토조항폐지'를 공공연히 주장하는 "빨갱이 세상"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망각해선 안 된다.

그런데 문제는 빨갱이는 스스로 빨갱이라고 하지 않고 "민주화 인사"라고 주장한다는 사실이다. 간첩은 잡혀 죽어도 간첩임을 인정치 않고 '전향'을 거부하여 '미전향장기수'로 남고 주사파는 주사파임을 인정치 않고 '준법서약서' 작성마저 거부하여 그 알량한 혁명적 의리와 '지조'를 지키려 한다.

그날이 벼락처럼 도둑처럼 닥쳐도...

우리는 그날이 언제 어떻게 올지 모르고 있을 뿐 '남침전범집단 핵무장 인질범'의 마지막 날이 반드시 그것도 가까운 장래에 오게 돼 있음을 안다. "3대 부자 없고 3대 거지 없다."는 속담처럼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으로 이어지는 3대 세습독재는 반드시 무너질 수밖에 없는 것이며 일제 36년 만에 8.15해방이 그랬듯이 다만 그 날은 벼락같이 닥치고 "도둑같이 올 것" 이다.

남파 된 간첩과 남에 있는 '위수김동族 친지김동派 빨갱이'와 그 촛불폭도 추종세력 들이 그때가 겁이 나서 다 죽어가는 김정일 정권을 연명 시키려고 인공호흡기 대신에 '퍼주기'를 해 온 것이며 그때가 겁이 나서 과거사법을 만들고 '민주화 보상법'을 만들어 스스로 '면죄부'를 나눠 갖기까지는 했지만 천망회회소이불실(天網恢恢疎而不失)이라 했듯이 김정일과 함께 지은 반인류 비인간 利敵反逆의 죄가 쉽사리 지워지지는 않을 것이다.

北은 2012년에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 3대 세습 살인폭압독재체제를 갖추는 '선군정치 강성대국 대문'을 열겠다고 호언을 하고 있다. 그러나 2012년 이전에 김가 3대 세습독재가 무너지는 날이 닥칠 것이다.

그때가 되면 독일 통일과 소련해체과정에서 그랬듯이 조선노동당 기무고 철문이 깨트려지고 '해방 이래 70년 가까이 쌓인 빨갱이들의 반역의 문서'가 쏟아져 나와 숨을 곳도 도망칠 곳도 없게 될 것이다.

평양이 무너지고 간첩과 반역의 증거가 드러나면 후회해도 뉘우쳐도 소용이 없다.  60.70년대 흔히 봐 온 표어처럼 지금이라도 남파간첩은 자수하여 광명 찾고 敵에 동조 부역한 "빨갱이"들 역시 전향하여 새 삶을 누려야 한다. 이것이 동포로서 형제로서 마지막 권고이다.

대한민국은 이승만 대통령의 반공으로 건국을 하고 박정희 대통령의 반공으로 근대화를 이룩한 나라이다. 우리에게는 그때를 단 하루, 단 한 시간, 몇 분, 몇 초라도 앞당기기 위해서 2차 대전 후 미국 사회를 소련간첩의 마수에서 지켜 낸 매카시가 필요하다. 국산 매카시가 없다면 수입이라도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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