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르니카
스크롤 이동 상태바
게르니카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아직도 치유되지 않은 아픈 상처가 남아 있는 곳

 
   
  ^^^ⓒ http://www.leesangdon.com^^^  
 

빌바오 관광안내소에 가서 게르니카를 가는 교통편을 물어 보았더니 안내하던 직원이 나에게 어디에서 왔냐고 물어 보면서 반가워하는 표정으로 친절하게 알려 주었다. 게르니카는 바스크 사람들에게 역사적으로 중요한 곳일뿐더러 나치의 공습으로 인한 아직도 치유되지 않은 아픈 상처가 남아 있는 곳이다. 그런 게르니카를 한국인이 찾아 가겠다고 하니 반가워했던 것 같다.

빌바오에서 바스크 지방 전철을 타고 한 시간 정도 걸려서 게르니카에 도착했다. 전철 속에선 스페인 말은 들리지 않고 오직 바스크어(語)만 들렸다. 바스크어는 파열음이 많아서 동유럽 언어와 비슷한 느낌이 들지만 사실 바스크어는 라틴어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오래 된 언어이고, 학자들도 바스크어의 뿌리를 아직 찾아내지 못했다고 한다. 프랑코 독재 시절에는 바스크어를 쓰면 즉시 체포됐다고 하는데, 그럼에도 이 언어는 건재해서 이제는 바스크 지역의 공식 언어가 됐다. 바스크 지방에선 빌바오와 산세바스티안 같은 도시에서나 스페인 말을 병행해서 쓸 뿐이고, 다른 곳은 전적으로 바스크어를 쓰고 있어 영어는 제2외국어 신세라서 영어 소통은 거의 불가능했다.

게르니카(Guernica ; 바스크어로는 ‘Gernika’)는 작은 도시라서 걸어서 한두 시간이면 모두 볼 수 있다. 게르니카는 항구인 베르메오와 내륙의 듀랑고 사이에 자리 잡은 교통의 요지인데, 인근의 루모(Lumo)라는 마을과 합쳐져서 공식명칭은 ‘게르니카-루모’이다. 오래 전부터 게르니카에는 바스크 부족대표들이 모여서 회의를 열었는데, 이들은 보기 좋게 자란 한 떡갈나무(Oak tree) 앞에서 의식을 했다. 지금도 바스크 자치정부의 입법부는 게르니카에 자리 잡고 있고, 유서 깊은 건물에서 입법부 회의가 열린다. 그 유명한 떡갈나무는 수백 년을 살고 19세기 중반에 죽었는데, 고사(枯死)한 나무 둥치가 지금도 보존되어 있다. 그 나무가 죽은 후 새끼 나무를 심었는데, 2004년에 죽어서 지금은 로툰다를 세워 놓은 원래 나무의 둥치만 있다.

1937년 4월 26일, 나치 독일의 공군기들이 장날로 사람이 붐비는 게르니카를 아무런 예고도 없이 공습해서 1654명이 죽었고 도시의 80%가 한 순간에 파괴되었다. (사망자 숫자는 바스크 지방정부의 추산이다.) 당시 스페인은 내란 중이었고 바스크 지방은 공화파를 지지하면서 프랑코에 맞서고 있었는데, 프랑코의 부탁으로 히틀러가 정예 공군 폭격기 부대를 보내 본때를 보인 것이다. 공습에는 각종 독일 폭격기가 참가해서 각 기종의 성능을 실험해 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바스크 사람들은 이 공습을 당하고 나서 그들이 프랑코 군대와 싸우는 것이 무모하다는 것을 깨달았고, 프랑코 군대는 조선과 철강산업이 있던 빌바오를 전투 없이 접수할 수 있었다.

나치 독일과 프랑코 정부는 그날의 공습이 아예 없었다고 잡아떼었고, 프랑코 독재시절에 게르니카 공습을 입에 올리면 비밀경찰에 의해 소리 없이 불려갔다고 한다. 스페인에서 게르니카 공습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된 것은 프랑코 정권이 무너진 후인데, 아직까지도 책임자 처벌이나 보상은 이루어지고 있지 않았다.

바스크 국기가 휘날리는 자치정부 의회 건물과 세월의 영욕을 같이 한 떡갈나무 둥치가 인상적이었다. 바로 뒤에는 산타 마리아 성당이 있고, 옆에는 평화를 기원하는 조각이 있는 공원이 있다. 그 아래 주택가 담벼락에 피카소가 그린 ‘게르니카’를 그대로 복제한 벽화가 있다. (피카소가 그린 원래의 ‘게르니카’는 마드리드의 소피아 왕후 미술관에 있다.)

게르니카에는 호텔이 별로 없어서 몇 년 전에 문을 연 호스텔에서 하룻밤을 지냈는데, 한 방에 묵었던 4명의 스페인 남녀는 북부 해안지역을 따라 산티아고로 가는 도보순례 중이었다. 이들은 게르니카에 대해선 별로 관심이 없는 듯했다. 스페인 사람들에게 게르니카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과거이기 때문일 것이다. 호스텔을 관리하는 여성이 영어가 되어서 저녁 늦은 시간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는데, 자기 부모는 게르니카에 살지 않아서 가족이 죽지는 않았지만 평화로운 장날을 피로 물들인 그 날은 모든 바스크 사람들의 기억에 살아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녀는 스페인 사람들에 비해 “자신들은 매우 다르다”(“we are very different")고 했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1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자연보호 2010-10-12 14:19:46
게르니카의 떡갈나무의 둥치는 보존되고 있는데...
인간이 아니 한국인 자자손손 자연환경을 보존하며 살아야 할 한국의 금수강산은 MB의 도둑질 같은 삽질로 엉망진창은 물론 역사 속으로 사라져 가는 현실이 너무나 아쉽고 분통이 터진다.
메인페이지가 로드 됐습니다.
가장많이본 기사
뉴타TV 포토뉴스
연재코너  
오피니언  
지역뉴스
공지사항
동영상뉴스
손상윤의 나사랑과 정의를···
  • 서울특별시 노원구 동일로174길 7, 101호(서울시 노원구 공릉동 617-18 천호빌딩 101호)
  • 대표전화 : 02-978-4001
  • 팩스 : 02-978-8307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종민
  • 법인명 : 주식회사 뉴스타운
  • 제호 : 뉴스타운
  • 정기간행물 · 등록번호 : 서울 아 00010 호
  • 등록일 : 2005-08-08(창간일:2000-01-10)
  • 발행일 : 2000-01-10
  • 발행인/편집인 : 손윤희
  • 뉴스타운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뉴스타운. All rights reserved. mail to newstowncop@gmail.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