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간다 이디 아민, 30만명을 죽이고도 처벌받지 않아
스크롤 이동 상태바
우간다 이디 아민, 30만명을 죽이고도 처벌받지 않아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들이 독재국가에 우선 취하는 조치가 대개 경제 제재조치지만 그 효력이 크지 않아 보인다. 최근에 미얀마, 남아공, 쿠바, 북한, 이라크 등에 경제 제재조치를 취했지만 그러하다.

오히려 주로 피해를 입는 것은 당사국의 국민들로 보인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보면 많은 시간이 지나면서 독재자들은 그 최후를 비참하게 맞이했다. 아프리카 지역을 예로 들면 지난 16일에 죽은 우간다의 전 대통령 '이디 아민'도 그러하다.

또한 최근에 전 라이베리아 대통령인 '찰스 테일러'도 권좌에서 물러나 나이지리아로 망명했고, 금년 3월에는 전 중앙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 '앙쥬 펠릭스 파타세'가 카메룬을 방문하던 도중에 실각되었다.

육군 참모총장을 지낸 프랑수아 보지즈 장군이 주도한 쿠데타에 의해 권좌에서 쫓겨나서 지금은 토고의 수도 로메에서 가족들과 지내고 있다. 전 마다가스카르 대통령 '디디에 라치라카'도 91년에 권좌에서 물러났었다.

95년 선거에서 다시 승리하여 재집권했었으나 2001년 선거에 또다시 패하여 반년 동안이나 승복을 거부하고, 권력투쟁을 벌이다가 결국은 작년 7월에 프랑스 파리로 도피했었다.

또한 92년 대통령에 선출됐던 '파스칼 리수바' 전 콩고 대통령도 당시 대선에서 자신에게 패했던 드니 사수 응궤소에 의해 97년에 축출되어 런던으로 도피하였다. 콩고 법정은 궐석재판으로 그에게 대역죄로 30년 중노동형을 선고했다.

에티오피아를 통치했던 '멩기스투 하일레 마리암' 전 대통령은 권좌에서 물러난 뒤 짐바브웨로 망명했다. 그의 정권 때 반개혁세력으로 몰린 인사 수만 명을 처형했었다. 그로 인해서 학살 및 반인륜범죄혐의로 기소된 상태다.

지난 90년에 축출된 '히세네 하브레' 전 차드 대통령도 세네갈에서 망명 생활을 하고 있다. 권좌에 오른 뒤 철권통치를 폈던 그는 인권단체들로부터 통치기간에 약 4만 명을 처형하고, 20여만 명을 고문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처럼 인간이 아무리 무소부지를 가진 힘을 휘둘렀어도 결국은 권좌에서 물러나게 되면, 비참한 말로를 맞이한다. 이처럼 당사국에 경제제재조치를 취해도 독재자들은 별 영향을 받지 않고 국민들만 더 피해를 입었다.

우간다의 이디 아민은 검은 독재자였다

이디 아민은 우간다 변두리에서 한 소농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마법사인 어머니에게서 태어났다고 하지만, 생년월일이 불분명하여 1925년에 태어났다는 이야기가 많다. 그는 덩치가 큰 것을 잇점으로 46년 영국군에 징집되어서 취사병으로 군 생활을 시작했다.

그는 정식교육을 거의 받아본 적이 없었지만 군대에 들어가 승승장구하여 군 최고 사령관이 되었고, 밀톤 오보테 대통령이 싱가포르를 방문한 사이에 쿠테타를 일으켜 정권을 장악하고 대대적인 학살을 감행했다.

그가 집권한 8년 동안 무려 30만명 이상을 죽여서 악명이 높았고, 시체를 빅토리아 호수에 악어밥으로 주었다. 자기를 아프리카의 순수한 아들, 빅 대디(big daddy)라고 부르게 하였고, 한때 세계 헤비급 챔피언인 권투선수가 되기도 했었다.

그는 자기 아내를 토막내어 죽이기도 하고, 정적의 시신 머리를 잘라 냉장고에 넣어두는 등 엽기 행각을 했었다. 그리고 당시 상권을 장악하고 있던 아시아계 8만 명을 추방해서 경제를 파탄으로 몰고 갔다.

또한 그는 자신을 신격화시키는 방법으로 독재정권을 유지했고, 역사상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의 잔인한 숙청을 몇 차례나 거침없이 단행했었다. 나치의 악몽으로 기억되는 히틀러를 공공연히 숭배하기도 한 인물이다.

그는 운동선수 출신답게 권투에도 애착을 보여서 선수육성에 많은 돈을 썼다. 그의 재임 중에는 미들급의 무가베, 헤비급의 에드워즈 등 쟁쟁한 선수들을 보유한 권투강국이 되기도 했다.

그는 지식인들이 국민들에게 나쁜 영향을 줄지 모른다며, 많은 지식인들과 영국인 지주들을 탄압하기도 했었다. 전문가들은 그가 그렇게 한 것은 문맹에 가까웠던 열등의식 때문이라고 말했었다.

아민은 영국군에서 활동했지만 영국인들을 광적으로 미워했다. 그는 집권시절 영국여왕을 불쑥 방문하기도 했고, 아프리카 정상회의에 참석해서는 파자마 바람으로 수영장에 뛰어들기도 했었다.

자신을 마지막 스코틀랜드 왕이라고 하거나, 영국을 제국의 정복자라고 지칭하는 등 기행을 일삼았다. 72년에는 우간다 경제를 장악했던 영국계 인도인 약 4만 명을 추방하면서 신이 우간다를 흑인의 나라로 만들라 하였다고 말하기도 했다.

집권 말기에는 이슬람교에 심취해 스스로 알라신의 계시자라고 밝힌 그는 리비아, 사우디아라비아, 헤즈볼라 등 테러집단을 적극 후원하기도 했었다. 76년에는 팔레스타인 무장단체와 공모해 에어프랑스 여객기를 납치했었다.

그러나 결국 79년 이웃 탄자니아의 지원을 받은 우간다의 망명 세력이 그를 몰아냈다. 갈곳이 없어진 그는 사우디가 관용차원에서 제공한 망명지로 피신했다. 그는 5명의 부인과 50명의 자식들을 데리고 사우디에 정착했었다.

호화스러운 빌라에서 아코디언 연주와 낚시 등으로 소일하고, 우간다로부터 음식을 공수해 먹는 등 편안한 망명생활을 했다. 89년에는 위조여권을 갖고 킨샤사에 가서 우간다를 다시 정복하겠다고 했었다.

어느 나라도 그를 받아주지 않아서 다시 사우디로 되돌아오기도 했다. 그러나 신장질환이 악화돼 혼수상태에 빠진 뒤 신장기증자를 찾았지만 맞는 사람이 없었다. 결국 그는 사우디 파이잘왕 특별병원에서 치료를 받다가 80세로 죽었다.

그의 독재정치 때문에 영국 정부는 암살을 계획하기도

지난 16일 영국 정부는 그를 암살하기 위한 계획을 검토했었다고 데이비드 오웬 전 외무장관이 공개했었다. 그는 아프리카 최악의 정권으로서 학살 규모가 크메르루주 공산지도자 폴 포트에 버금갈 정도였다.

희생자 중에는 그의 반대파도 있었지만 아무 이유 없이 희생된 사람들도 많았다. 오웬 전 장관은 개인적인 원한과 냉혈성으로 이처럼 많은 인명을 앗아간 사람을 그토록 오랫동안 집권하도록 놓아둔 것은 우리들의 수치라고 말했다.

최근의 인권단체와 우간다 정부 관계자들도 그를 재판에 회부하지 않은데 대해 실망을 표시해 왔었다. 국제앰네스티의 조지 응와 대변인은 그의 죽음과 관련해 국제사회가 대규모 인권유린 행위를 자행한 지도자에게 책임을 묻지 않은 것은 무능력을 보여준 것이라고 말했다.

우간다 정부는 그의 사망소식에 대해 기뻐해야 할 일이며, 그의 죽음은 나쁜 과거의 종말을 의미한다는 논평을 했다. 지난 74년 아민의 지시에 의해 심하게 구타를 당한 뒤 탈출한 존 센타무 성공회주교는 그가 죽기 전에 30만 희생자들에게 용서를 구했어야 한다고 말했다.

우간다 반군들의 부녀자 납치, 성 상대와 인신매매 자행

우간다는 영연방으로 동서남북에 수단, 케냐, 탄자니아, 자이르, 르완다와 국경을 접한다. 국토의 18%가 빅토리아 호수와 키오가호가 차지하고 대부분이 고원과 습지, 호수로 이루어 졌으며 평균 기온이 섭씨 22도이다.

인구의 약 80%가 농업에 종사하고 주요농산물은 커피와 목화이고 수출의 대개가 농산물이다. 하지만 내전이 계속되고 주변국들과의 인종문제 등 여러 가지 문제로 다툼이 계속되는 국가지만 국방력은 신통치 않다.

한 예로서 지난 7월22일에 BBC는 우간다 정부가 반군과의 전투에 주술사들을 동원, 살인 벌과 천연두 등 치명적인 수단으로 반군을 공격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라는 것을 보도했었다.

다만 교전지역에 우리 전통문화를 존중하지 않는 백인이 있으면 작전에 방해가 된다며 유엔 및 적십자 요원의 후방 철수를 요구했다. 이들은 반군을 제압할 경우, 전통 사원을 건립해줄 것을 조건으로 내걸었다.

또한 인권침해도 매우 높다. 금년 6월25일에 야만적인 우간다 반군들이 대규모로 부녀자들을 납치해 간부들의 성상대로 삼거나 인신매매를 자행하기도 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지난해 6월부터 부녀자 등 약 5,000명의 민간인이 납치, 실종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중 남자는 반군 병사로, 여자는 성 노예로 이용한다는 것이다. 이 같은 상황은 17년 간 지속된 내전과 이에 따른 치안부재 때문이다. 약 1만4천명에 달하는 우간다 북부지역 사람들은 밤마다 마을을 습격하는 반군을 피하기 위해 집을 빠져나와 교회나 공공장소에서 밤을 지새우고 있다.

반군들의 납치와 인신매매로 부녀자들은 낙태와 에이즈 등 각종 성병에 시달리고 있으며, 납치기간 동안 평균 3명의 아이를 출산하고, 어린이들은 소년병으로 충원되어 민간인 학살에 강제 동원되고 있다고 한다.

고위 반군들은 납치 여성을 첩으로 두기도 하고, 돈벌이로 남녀 아동들에게는 매춘을 강요하기도 하며, 코코아 농장에서 노동을 시키는 등, 각종 아동권리 침해가 빈발하고 있다. 이 때문에 국제아동단체들은 지역 당국과 협력해 아프리카 그들에게 신분을 찾아주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

아프리카에 눈독 들이는 미국

금년 7월 12일에 부시 미 대통령은 엿새 일정으로 우간다, 나이지리아, 남아공, 세네갈, 보츠와나 등 아프리카 5개국을 순방했다. 표면적으로는 가난과 기아에 대한 인도적 지원을 내세웠다.

하지만 많은 국가들이 그의 순방이 석유수출국기구(OPEC)에 속하지 않은 아프리카 산유국에 관한 또 다른 욕심 때문이라고 하였다. 그런 말이 나돌자 미국의 컬럼비아대 삭스 교수는 미국의 부호들이 빈국들의 질병퇴치를 위해 자발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부시의 아프리카 순방을 계기로 해서 미국의 갑부들이 국제자선 활동에 적극 나서야 하는 이유로, 미국의 갑부들이 아프리카 수억 인구의 소득을 합친 것보다 더 많은 돈을 벌고 있기 때문에, 그 수입의 일부를 아프리카를 비롯한 빈국의 질병퇴치를 위해 희사해야 한다고 했다.

그가 밝힌 바에 의하면 2000년 미국의 400대 부호들의 총소득은 모두 690억 달러로서, 부시가 방문하는 우간다, 나이지리아, 세네갈, 보츠와나 등 4개국의 총인구 1억6천600만 명의 총소득보다 더 많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런 현상이 위험스러울 정도로 비정상적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미국의 부호들이 아프리카 역사의 행로를 바꿀 수도 있다는 의미도 내포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가 한 말은 지금까지 독재국가에 경제제재로 일관된 것을 뒤집었던 말이다.

아무튼 아프리카의 일부 독재자들은 비참한 최후가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아직도 민권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으며, 우간다의 아민은 독재자의 대표적인 인물이었다. 이제 지상에서 없어졌지만 그 피해는 너무나 컸다.

그의 죽음을 보면서 독재라는 것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다. 다시는 그러한 사람이 있어서는 안 되고, 그런 자들에 의해서 선량한 사람들이 더 이상 죽어서도 안 된다는 것을 알게 하는 교훈이 되었으면 한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메인페이지가 로드 됐습니다.
가장많이본 기사
뉴타TV 포토뉴스
연재코너  
오피니언  
지역뉴스
공지사항
동영상뉴스
손상윤의 나사랑과 정의를···
  • 서울특별시 노원구 동일로174길 7, 101호(서울시 노원구 공릉동 617-18 천호빌딩 101호)
  • 대표전화 : 02-978-4001
  • 팩스 : 02-978-8307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종민
  • 법인명 : 주식회사 뉴스타운
  • 제호 : 뉴스타운
  • 정기간행물 · 등록번호 : 서울 아 00010 호
  • 등록일 : 2005-08-08(창간일:2000-01-10)
  • 발행일 : 2000-01-10
  • 발행인/편집인 : 손윤희
  • 뉴스타운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뉴스타운. All rights reserved. mail to newstowncop@gmail.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