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김정일과 면담에 목맬 것 없어
현대, 김정일과 면담에 목맬 것 없어
  • 백승목 대기자
  • 승인 2009.08.16 09: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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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주영 정몽헌 현정은과 김정일의 일곱 차례 면담결과는 퍼주기 10억 $

 
   
  ^^^▲ 현정은 현대그룹회장^^^  
 

1998년 10월 30일 밤 10시 15분, 北 김정일이 정주영 현대 명예회장이 머물고 있던 평양 백화원 초대소를 노동당 대남담당비서 겸 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아태위원회) 위원장 김용순을 대동하고 나타나 약 35분간의 '면담'이 이루어짐으로서 금강산 관광사업 1라운드가 정리 됐다.

당시 북의 '조선중앙방송'은 정주영 명예회장이 고령인 점을 감안하여 김정일이 (집무실로 부르지 않고) 숙소로 직접 찾아 만났다는 설명과 함께 ①금강산관광 ②석유개발 ③서해공단조성 등 주요 사안에 대한 대화가 있었음을 이례적으로 신속하게 보도하는 '친절'을 베풀기도 하였다.

그런데 김정일이 정주영 현대 명예회장과 정몽헌 현대아산 회장 면담을 결정한 배경에는 1998년 6월 16일 판문점을 통한 소 500마리 1차 소떼방북 쇼와 1998년 10월 27일 소 501마리 2차 소떼 방북 이벤트가 주효 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현대는 1.2차 소떼 방북을 통해서 소 1001마리와 수천 t의 옥수수, 5t트럭 101대, 당시로서는 최고급인 다이너스티 승용차 등 7억 원 상당의 '공물(貢物)'을 바친 외에서 김정일의 만수무강을 기원하는 의미로 무려 150돈 짜리 금학(金鶴)을 진상한 후에 김정일을 35분간 알현(?)하는 영광을 누린 것이다.

그로부터 현대가(家) 정주영 정몽헌 부자와 김정일과 면담은 수차례 이루어 졌는바 대북뇌물사건 당시 현대 측 변호인이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1998년 10월 30일 심야 면담(35분)으로부터 2000년 9월 30일 금강산 오찬면담(5시간 30분)에 이르기까지 다섯 차례나 계속 됐다.

2003년 8월 4일 정몽헌 현대그룹 회장이 계동 사옥에서 의문의 자살로 타계 한 후 현대그룹 회장에 취임한 현정은 씨는 2005년 7월 16일 지금 묵고 있는 백화원초대소에서 김정일과 면담을 가졌고 2007년 11월 2일에도 김정일을 면담한 바가 있다.

김정일은 2000년 6월 12일 5억 $ 송금이 이루어진 후로는 현대 일가에 각별한 관심과 배려를 아끼지 않았으며 6.15선언 직후에 있었던 2000년 6월 29일 3차면담 시에는 원산 동해함대 해군기지에서 만찬을 포함 4시간 20분간, 2000년 8월 9일 4차면담 시에는 원산 김정일 전용 요트에서 오찬포함 4시간 15분간 면담을 하는 파격적(破格的) 대우를 하였다.

그런데 이번 경우에는 무엇이 못 마땅해선지 현정은 현대그룹회장이 네 차례나 체류일정을 연장해가면서 김정일과 면담을 기다리게 하고 있다.

이를 두고 현정은 길들이기, 남한 정부에 본때 보이기, 북한주민에 김정일 위세 과시하기, 현정은의 선물보따리 불만 투정부리기, 이명박 대통령의 8.15기념사 지켜보기 등 구구한 해석이 봇물을 이루고 있다.

이러한 견해 가운데에는 국방위원회 중심의 군부와 노동당 대남담당비서 및 통일전선부간 내부이견 조정 및 공산당 특유의 <상대를 피로케 하여 양보를 강요하는> 敵疲我打 전술로 보는 견해도 없지는 않다.

김정일의 속셈이 무엇이고 통일전선부(아테위원회) 김양건의 노림수가 무엇이던 간에 현대로서 분명히 해야 할 것은 글로벌 기업답게 비즈니스를 하라는 것이다. 구시대적 뇌물이나 '朝貢' 식 선물공세로 특혜적 독점권 유혹에 휘말리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現代家 정주영 정몽헌 부자와 김정일의 다섯 차례 면담과 현정은과 김정일의 두 번의 면담 결과는 금강산관광과 개성공단사업으로 나타나고 서해유전개발과 백두산직항로 관광사업은 말뿐인 '미끼'에 불과했음이 입증 됐다.

그러면서 김정일은 금강산관광사업을 통해서 북괴 해군의 최남단전초기지인 장전항확장 및 현대화 공사로 1억 $를 챙긴 것 말고도 지난 10년 동안 현금10억 $ 노다지를 만나 핵 실험 및 미사일개발, 그리고 대남공작용 사금고를 채우고 개성공단사업을 통해서 연간 4천만 $ 이상을 힘 안들이고 뜯어내는 화수분을 만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정일은 걸핏하면 우리 관광객을 억류하기를 식은 죽 먹듯 하고 심지어는 등 뒤에서 총을 쏘아 죽이는가하면 멀쩡한 남측의 현지파견 직원을 간첩혐의를 씌워 137일 씩 '독방'에 감금을 해도 현대와 감독부처인 통일부는 사건이 터질 때 마다 우왕좌왕 부산만 떨었지 찍소리도 못하고 당하기만 하였다.

금강산 관광이 공식으로 시작되기 이전인 1998년 8월 14일 北의 '금강산국제관광공사' 총사장 방종삼의 명의로 만들어 준《보장서》라는 쪽지에는 "직장. 직위를 문제 삼아 관광과 관련한 출입국을 허용하지 않는 일은 없을 것이다." 라고 쓴 한 줄짜리 메모 이었다.

그런데 정작 문제가 된 것은 금강산관광이 본격적으로 시행된 당일인 1998년 11월 18일 북측에서 일방적으로 통보한 소위 《금강산 관광에서 남조선관광객들이 지켜야 할 행동준칙》이라는 해괴한 문서는 관광이 아니라 차라리《노예의 행렬》이라고 해야 할 굴욕적이고 야만적인 22개 조의 '강제조항' 이었다.

더욱 기가 막힌 것은 이 행동준칙 제 2조에 보면, "남조선 관광객들은 북남사이의 화해, 민족대단결, 조국통일의 념원에서 관광려객선으로 동해새상분계선을 넘어 금강산을 관광할 수 있다"고 하여 북의 대남적화통일전략과 연결 짓고 있다는 사실이다.

몇 개의 기막힌 예를 든다면 관광객 카메라에 160미리 이상의 망원렌즈 소지금지,《공화국의 자주권과 재산 및 인권(?)을 침해하거나 사회제도와 정책, 시책들을 시비하지 말아야 한다.》며 관광객 입에 재갈부터 물리고 담배꽁초만 버려도 30원의 벌금을 물리게 하는 등 최고 6000원까지 범칙금을 규정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물론 이에 앞서 北 사회안전부 부장 백학림 명의로 "금강산관광사업 계약서에 의해 북측지역에 들어오는 현대 실무대표단, 합영회사직원, 공사인원, 유람선 승무원, 《남측인원 관광객의 신변안전과 무사귀환을 보장》한다는 내용이 담긴 신변안전보장각서를 받아 놓기는 하였다.

그러나 그 각서내용대로 집행이 됐다면 민영미 씨 억류사건에서 박왕자 주부 피격사망사건, 유성진 씨 불법감금 장기억류 같은 사건이 발생했을 까닭이 없다.

관광도 좋고 화해 및 교류협력도 좋다. 그러나 자국민 생명과 안전에 대한 보장이 없는 대북 교류협력 사업이란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 된다.

현정은 회장이 김정일을 만나 무슨 제안을 하고 김정일이 무슨 약속을 할지는 몰라도 우리정부로서는 차제에 관광객 및 공단체류 인력에 대한《영사권》에 준하는 대한민국 국민의 생명과 신체의 안전에 대한 보장대책이 없다면 금강산관광이고 개성공단이고 중단하거나 포기하는 것이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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