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북반역 亡種 김대중 처단해야
친북반역 亡種 김대중 처단해야
  • 백승목 대기자
  • 승인 2009.07.08 08:47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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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이 분한 것은 연방제 음모

 
   
  ▲ 김대중 전 대통령  
 

김대중이 3일 뒤늦게 공개 된 지난 5월 29일자 노무현 영결식 추도사에서 목숨을 바쳐 온 (5.18식, 광우병 촛불폭동 아테네 식 직접)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해 《억울하고 분하다》는 말로 그 정체와 본색을 남김없이 드러냈다.

우리는 김대중이 선거 때 마다 나이가 세 살, 네 살 차이가 나고 만주 建國大 출신 이랬다가 일본 法政大 출신 이랬다가 제 멋대로 같다 붙여도 대한민국 서울 建國大 출신이라고 우기지 않는 것만도 기특타 여겨 왔다.

우리는 김대중이 나이를 속여가면서 병역기피를 해 놓고도 '목포해상방위대'라는 유령부대 부사령관을 지낸 '해군 소령' 출신이라고 가짜 병력(兵歷)을 내 놓았을 때도 "별 시러베아들 놈 다 봤다."고 코웃음으로 넘기면서 신라 말 '장보고의 청해진 상단' 출신이라고 우기지 않은 것만도 '양심적' 이라고 여겨 왔다.

우리는 대선에서 김영삼에게 패배한 김대중이 1993년 3월 《정계영구은퇴》를 선언하고 영국으로 망명하듯 떠났다가 1년 만에 돌아와 《국민에게 할 말이 없다.》면서 정치재개를 선언했을 때도 정치에 인이 박히면 아편 끊기보다 힘들다는 사실을 인정해 주었다.

우리는 김대중이 1994년 3월 귀국 직후 김일성의 '아태평화위원회(노동당통일전선부위장단체)' 개업에 맞춰 '아태평화재단'을 설립했을 때만해도 그런가 보다 하였으며 1994년 7월 8일 김일성 사망 직후 인 7월 11일 국회에서 김원기 이부영 이우정 임채정 장영달 남궁진 등 조문파 6인방을 앞세워 《김일성 조문》을 주장했을 때도 그러려니 하고 말았다.

우리는 김대중이 15대 대선 직전인 1997년 12월 5일 조총련부의장 출신 북 사민당 김병식으로 부터 20만 $ 빚 독촉장을 받았을 때도 '북의 모략'이겠거니 여기려 했으며 대통령취임 후 첫 작품으로 김정일과 동시에 <남북민화협>을 창설 할 때만해도 김정일을 위해서가 아니라 대한민국을 위해서 무언가를 해 줄 것을 기대하고 또 바랐다.

우리는 김대중이 2000년 6월 15일 오후 방북을 마치고 돌아와 인천 공항에서 "한반도에 전쟁은 없다,", "김정일도 주한미군을 인정 했다.","김정일이 핵 개발을 하면 내가(김대중이) 책임지겠다."고 한 《개 소리》를 곧이곧대로 믿고 싶었다.

우리는 김대중이 2001년 3월 미 부시 대통령 취임직후 한미정상회담 석상에서 '노벨상 수상자' 티를 내면서 부시를 가르치려들다가 "THIS MAN" 소리를 들었을 때 "김대중 선상님 욕 보요" 하면서 김대중 편을 들었다.

우리는 김대중 정권 말 세칭 홍삼비리(弘三非理) 사건으로 김홍일. 김홍업. 김홍걸 삼형제가 애비인 김대중 죄를 뒤집어쓰고 교도소 문턱을 드나들 때 "뭐 이런 애비 X이 다 있나."하면서도 남의 집안일로 못 본체 덮어 주려고 애를 썼다.

우리는 김대중이 2002년 6월 29일 제 2연평해전에서 '선제사격금지' 훈령으로 전사케 한 6명의 해군장병에게《눈길 한 번 안준 채 빨간 넥타이까지 매고 도쿄로 날아가 월드컵 축구구경을 했을 때》 저 자는 대한민국 국군통수권을 '포기한 X' 이로구나 여기고 말았다.

우리는 김대중이 2006년 10월 9일 김정일 핵실험 직후인 10월 11일 광주로 달려가서 《핵실험 미국 탓》이라고 했을 때 노망이 아니라 "미쳐도 단단히 미쳤구나!"라고 한탄을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우리는 김대중이 2008년 6월 12일 광우병조작선동촛불폭동에 대하여 《아테네 이후의 직접민주주의》라며 제 2의 5.18, 제 2의 광주사태를 선동 할 때 이 자야말로 "김일성에게 충성을 맹세하고 김정일에게 단단히 코를 꿴 노동당 세작"이란 사실을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우리는 김대중이 2008년 11월 27일 평양을 방문하여 북 사민당 김영대와 무언가 꿍꿍이짓을 하고 돌아 온 고 강기갑에게 "민노당과 민주당이 굳건히 손잡고 시민단체 등과 광범위한 민주연합을 결성, 역주행을 저지하는 투쟁"을 주문했을 때 반역자의 면모를 재확인할 수 있었다.

우리는 김대중이 2009년 1월 2일 민주당 지도부에게 이명박 정부를 독재로 규정하고 "민주주의 역주행"을 막으라고 했을 때 김대중의 반란이 본격화 되고 있음을 감지했다.

우리는 김대중이 2009년 5월 25일 김정일 2차 핵실험으로 UN안보리 대북제재결의안 1874호 등 국제사회의 제재에 대하여 "김정일에게 억울한 측면이 있다." 며 6.15와 10.4실천을 촉구하고 나서는 것을 보면서 "이 자야말로 반역의 수괴였구나" 하는 점을 깨달았다.

우리는 김대중이 2009년 5월 29일 노무현 추도사에서 "억울하고 분하다."면서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의 편" 이라며 독재타도를 선동하고 나선 데에서 김대중이 내란 및 외환 반란의 수괴를 자임하고 나섰음을 확인하게 되었다.

우리는 이로써 김대중이 분해 한 것은 대한민국을 적화 시키지 못한 것이요 김대중이 억울한 것은 죽을 둥 살 둥 모르고 연방제 적화통일에 발 벗고 나서서 투쟁한 업적에 대하여 김정일로부터 100%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는 넋두리임을 깨닫게 됐다.

여기에서 아시아월스트리트저널지 2004년 10월 25일자 사설에서 “한국의 열린당이 추진하고 있는 4대입법은 평양이 하고 싶은 ‘더러운 일’을 대신해 주는 것 같다. 간첩이 해도 이보다는 더 잘할 수가 없다” 했던 우리의 가슴을 찢는 질책 한마디를 상기해 보자.

이제 우리 국민에게는 발작하는 친북반역 亡種 김대중 일당에 대하여 더 이상 베풀려야 베풀 수 있는 '아량'이 남아 있지 않으며 대한민국 정부로서는 내란외환 및 반란의 수괴 김대중을 의법 처단 하는 것 외에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음을 절감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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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소 2009-07-08 10:31:28
우리나라 모든 국민들은 백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