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욕이 교차된 삶, 심장박동 정지로 숨 거두어
^^^▲ 잭슨의 스승이자 미국의 유명한 ⓒ AP^^^ | ||
세계적인 에이피(AP), 로이터(Reuters), 에이에프피(AFP), LA타임스, 폭스Fox)뉴스, CNN등 주요 통신은 물론 미국의 각 언론이 마이클 잭슨의 사망소식을 일제히 톱뉴스로 전했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데브라 오프리 잭슨 가족 측 전 변호사는 “의식불명에 빠졌던 잭슨이 오후 3시15분 로스앤젤레스 유시엘에이(UCLA) 메디컬 센터 병원에서 사망했다”고 밝혔다. 역시 로스앤젤레스 타임스(LAT)도 LA시 사법당국의 발표를 빌어 잭슨 사망소식을 전했다.
잭슨 측은 이날 잭슨이 심장 정지 증세를 보이자 LA소방대의 911 응급차에 실려 병원으로 향했다. 잭슨의 아버지인 조 잭슨은 “당시 아들의 상태가 좋지 않아 보였다”고 말했다. UCLA 메디컬 센터 의료진들은 잭슨이 12시 26분 쯤 도착했으나 이미 심장박동이 그친 상태였으며, 심폐소생술을 실시했으나 호흡은 돌아오지 않았다고 밝혔다.
잭슨의 죽음은 1980년대 최고의 전성기를 거치면서 오랫동안 특이한 동작과 행동으로 세계를 풍미하다 삶을 마쳤다. 그는 전성기 동안 음악전문 방송인 엠티브이(MTV)의 음악 차트를 장악할 정도였으며, 그의 무대는 현란하기 그지없었다.
잭슨의 스승이자 미국의 유명한 작곡가의 한 사람인 퀸시 존스(Quincy Jones)는 “오늘 나의 형제를 잃었다”면서 “내 영혼의 일부도 함께 사라졌다”고 애도의 뜻을 전했다.
1958년 인디애나 주에서 태어난 마이클 잭슨은 1982년 ‘비릿(Beat it)', '빌리진(Billie Jean)' 등을 수록한 솔로 앨범 ‘스릴러’로 일약 세계적인 스타덤에 올랐다. 조숙했던 그는 1960년대 말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으며 당시 4형제로 구성된 '잭슨 파이브(Jackson 5)'의 리더로 활약했다. 당시부터 그의 스피닝 댄스(회전하며 추는 춤)로 유명세를 탔다. 당시 최고의 히트를 한 곡은 '아이 원 유 백(I Want You Back)', '에이비시(ABC)', “아윌 비 데어(I'll Be There)" 등이다.
그는 아마도 당대의 세대에서는 가장 흥분을 자아내는 가수로서 열정적이고 가랑이를 부여잡는 듯한 춤, 울부짖듯 웃음을 띠는 고성을 지르는 등의 그만의 독특한 목소리와 댄스로 관객들을 사로잡았다. 그가 한 손에 낀 금속으로 장식된 장갑, 꽉 쪼이는 의상, 군인스타일의 자켓, 파이럿 안경 등이 그의 트레이드마크(trademark)였다. 또 잭슨은 엘비스 프레슬리(Elvis Presley)와 비틀즈(Beatles)와 함께 항상 최고의 팝스타로서 명성을 유지했다
그는 세계의 환호 속에 2001년 로큰롤 명예의 전당의 ‘공연자’(performers) 부문에 오르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항상 화려하고 영광스럽지만은 못했다. 그는 잦은 스캔들로 자신의 인생을 내리막길로 치닫게 했다.
잭슨은 우선 자신의 가정이 순탄치 못했다, 지난 1994년 엘비스 프레슬리의 딸인 리사 마리(Lisa Marie) 프레슬리와 결혼했던 마이클 잭슨은 불과 2년 만에 결별했고, 이후 자신의 백반증을 치료하던 간호사 데비 로와 두 번째 결혼을 했으나 또다시 3년 만에 이혼하기도 했다.
나아가 잭슨은 1990년대 초반부터 아동 성추행 사건으로 큰 위기를 맞이했으며 2006년에 법원으로부터 아동 성추행 무혐의 판결을 받았지만 한 번 땅어 떨어진 명성은 쉽게 회복되지 못하고 영욕(榮辱)의 삶을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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