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중 때 술 약 넣고 ‘개떡’ 만드셨던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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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중 때 술 약 넣고 ‘개떡’ 만드셨던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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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의 맛 원형을 찾아서>백중 밀가루 개떡

'발렌타인데이'에 밀린 세시풍속과 명절

백중도 이젠 ‘발렌타인데이’ 보다 못한 잊혀져 가는 세시풍속 명절이 되었다. 요즘 누가 백중을 챙겨서 지낼까보냐? 아이들은 둘째치고 어른들도 잊어 먹은 백중이니 세월을 탓해 무엇하랴?

격세지감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꽤나 컸던 명절이 알게 모르게 사라지고 있다. 백중은 음력 7월 15일이다. 장마가 끝났고 추석보다 한달 빠른 때 들녘엔 뜨거운 햇볕을 먹고 백곡(百穀)이 여물어 간다.

농사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이 시기는 김매기를 마치고 추수(秋收)를 기다린다. ‘김매기를 끝내고 불필요한 농기구(農器具)를 씻어 손질해 둔다’는 의미에서 호미와 괭이, 가래 등 농기구에 붙은 흙을 씻는 '호미씻이'를 하고 흥겹게 하루를 즐기는 것이다.

멀지 않는 옛날 머슴들에게 음식을 걸게 차려 이날만큼은 하루를 푹 쉬게 하며 놀게 했다. 그래서 백중을 ‘머슴날’로도 불렀다. 까닥했다가 그 날 머슴들 성에 차지 않으면 다음 농사를 하는 둥 마는 둥 했다는 이야기까지 있었으니 잘 차리지 않으면 안되었다.

더위에 아랑곳 않고 ‘백중개떡’ 만들어 주시던 어머니

백 가지 종자가 익어 가는 백중절(百種節. 百衆節). 백중 때는 언제나 어머니께서 술 빵을 만들어 주셨다. 노란 밀가루 떡이라고나 할까? 우리는 그걸 ‘개떡’이라 했다. 아직도 난 누런 백중 빵을 잊을 수 없다.

한 해라도 잊고 지나가면 어찌나 서운했던지 모른다. 중학교 3학년 이후로 난 그 맛있던 걸 먹어 보질 못했다. 2학년 가을에 어머니가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해마다 잊지 않고 밀가루 노란 빵을 만들어 주신 어머니가 생각나는 건 백중 무렵이어서 인가? 자라서 도시에서 파는 옥수수 빵을 먹어보았지만 예전 어머니가 만들어 주신 맛과 사뭇 달라 한 번 먹고 손에 대지 않았다.

구름 한 자락 없이 맑은 하늘. 강아지는 꼬리를 떨구고 그늘에서 늘어지게 낮잠을 즐긴다. 닭들도 ‘나 더워~’하며 쉴새없이 목구멍으로 더위를 삼키느라 목젖이 부을 지도 모르게 덥다.

이열치열(以熱治熱) 이라고 했던가. 더위에도 아랑곳 않고 백중 개떡을 쪄 주는 어머니의 정성이 대단했다. 겉만 뜨겁지 겨울철 찬 성질을 담고 있는 밀가루 빵을 먹었다는 것에서 부모님과 조상들의 지혜마저 엿볼 수 있다.

좁쌀만한 크기의 효모와 사카린 녹여 같이 섞어 반죽

어머니는 밀을 한 말 가량 잘 씻고 일어서 방앗간에 갖고 가셨다. 표백을 하지 않아 빻은 밀가루는 다소 거무스름했다. 그러니 노란 옥수수 가루를 조금 섞는다. 반죽을 하면서 어머니께서 ‘술 약(藥)’이라 부르던 좁쌀 만한 크기에 모양까지 엇비슷한 빵 효모 이스트(yeast) 알갱이 한 줌과 꼬깃꼬깃한 종이에 잘 싸둔 사카린을 녹여 넣는다. 막걸리도 두어 잔 부어준다.

되직하던 밀가루 반죽은 찔 가마솥을 준비하는 동안 몰라보게 달라진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수분과 술 약이 적당히 녹아들고 서로 엉키어 눅눅해진다. 이때 옆에서 지켜보면 약간은 시큼한 술맛을 풍기며 구멍이 곳곳에서 “뽕! 뽕! 뽕!” 뚫리며 거품이 뽀글뽀글 솟는다. 소리마저 귀를 빌려달라 한다.

붉은 팥과 빨간 강낭콩을 미리 삶아서 으깨지 않고 통째 식혀뒀다. 가마솥 바닥에 맹물을 낮게 붓고 싸리나무로 만든 채반을 깐다. 삼베 보자기나 짚을 물에 씻어 그 위에 깔고 질어진 밀가루 반죽을 살며시 퍼서 고루 퍼지게 하여 잘 익게 하여 솥에 불을 땐다.

달콤하고 약간 쉰 듯한 술맛이 나는 노오란 전라도식 개떡 맛

보글보글 솥뚜껑이 떨어질 즈음 불을 약간 줄인다. 골고루 익게 뜸을 들이면 푹푹 밖으로 나오던 김이 부엌 곳곳에 퍼지며 잠시도 밖으로 나가 한눈 팔 틈을 주지 않는다. 단 맛과 약간은 시큼한 술 냄새를 가득 풍겨 발길을 붙들어 매니 어찌 그 곳을 떠나겠는가.

“어따, 익었는가 한 번 볼까나.”
“엄니, 불 그만 때도 되것지라우?”
“그려. 부삭에서 불 꺼내그라. 탈라.”
“알았어라우~”

행주에 물을 묻혀 뚜껑을 여는 순간 김이 지붕을 향해 일제히 퍼져나갔다. 대롱대롱 매달린 그을음이 언제 떨어질지 모르는 위험한 상황이었지만 간신히 모면한다.

“냄시를 본께 잘 익었는갑소.”
“글도 잘 봐야제.”

노랗게 잘 쪄진 개떡(전라도식 개떡은 이렇다. 수도권 쑥개떡과는 약간 다르다.)을 채반 채 꺼냈다. 어머니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맺혔다.

“엄마, 쬐까만 뗘(떼어) 먹어도 되지라?”
“손 데지 않게 조심혀~”

“후후” 불며 맛을 보았다. 달콤하고 쉰 듯한 술맛이 약간 돌아 감칠맛이 난다. 강낭콩도 하나 따라왔다. 포근포근한 콩 알갱이가 씹히더니 사르르 녹아 기분을 상쾌하게 한다.

어머니께서는 완전히 식기 전 물 한 그릇을 옆에 떠놓고 보자기를 살포시 걷어가며 두부 자르듯 사각으로 칼질을 한다. 군데군데 길쭉한 콩이 박혀있어 칼에 같이 잘린다.

대나무 밥 바구리(바구니)에 넣어 사흘은 궁금하지 않게 먹었다. 냉장고 없던 때였어도 상하지 않고 똑 같은 상태를 유지하는 비결은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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