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 반민족 김창룡 묘 이장 촉구 집회 열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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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 반민족 김창룡 묘 이장 촉구 집회 열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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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범 김구 선생의 모친과 함께 둘 수 없다"

^^^▲ 항의 집회 장면
ⓒ 뉴스타운 송인웅^^^

금년 8월 15일은 58번째 맞는 광복절이다. 암울했던 일제의 식민통치에서 해방된 날이다.

'민족문제연구소'대전지부(지부장 여인철)회원들과 '애국지사 숭모회"(회장 이규희)회원들은 지난 6월6일 현충일날 '김창룡'의 묘이장을 촉구하는 집회를 가진데 이어 8월15일 광복절날을 맞이하여 기념하는 차원에서 8월9일 두번째로 대전현충원에서 '김창룡 묘이전 촉구집회'를 가졌다.

"일제시대 때엔 만주의 관동군 헌병보조원으로 우리의 독립투사들을 잡아들이는데 혁혁한 공을 세워 헌병이 되고, 해방후에는 두차례나 사형선고를 받고도 목숨을 부지하다 월남하여 우리 군에 투신,온갖 만행을 저지르다가 급기야는 백범 김구선생의 살해를 사주한 자가 김창룡이기에 대전 국립묘지에 살해를 사주한 백범선생의 어머니와 아들과 함께 있어서는 안된다."고 밝혔다 .

김창룡묘 이장 항의 집회

"해방된 조국에서 우리가 제일 먼저 해야할 일은 우선 식민지 시절 나라와 민족을 배신하고 일제에 빌붙어 제 일신의 안위를 도모하고, 심지어 동족을 밀고, 체포, 고문하던 악질 친일부역자들을 처단하고 새나라를 건설하는 것이었다"는 것 이다.

"그러나 그 꿈은 미군정과 함께 물거품이 되었으며, 친일로 먹고살던 민족반역자들이 다시 기용됨으로써 우리의 민족사에 큰 오점을 남기게 되었다."는 주장이다.

또한 (가칭)'대전 국립묘지의 친일군인 김창룡묘 이장 추진위원회'구성을 제안 하는 성명서를 발표하였다.

^^^▲ 면담 장면
ⓒ 뉴스타운 송인웅^^^

대전 현충원 측의 입장

대전 현충원앞 항의 집회에 이어 현충원장의 면담을 요구하였으나 만나지 못하고 대전현충원 관리과장과의 면담만 이루어졌다.다음은 항의집회 대표들과 대전현충원 관리과장과의 일문 일답.

-지난 6월6일 지금과 똑같은 항의 집회를 하였고 김창룡묘이장을 촉구하는 민원을 접수하였는데 아직도 해결이 안되는 이유는?
"내용은 지휘계통에 따라 보고하였으며 현추원자체적으로 해결할수 있는 사항이 아닙니다."

-민원제기한 지 3년이 지났는데도 해결이 안되는 이유가 무엇인가?
"저희는 육군본부에서 심의한 바에 의한 이장허가에 의해 이곳에 안치하였을 뿐 그이상은 저희 소관이 아닙니다."

-심의 하여 안장하라고 한 공문과 심의위원들의 명단을 볼 수 없나?
"공개정보청구를 하시면 되는데 국방부에 하여야 됩니다."

-우리도 계통을 받아 김창룡묘이장을 요구하고자 현충원장 면담을 요구하고자 하는데 주선할 의향은 있는가?
"적절한 시간을 택하여 면담이 이루어지도록 지휘계통을 통해 보고 주선 하겠습니다."

^^^▲ 애국열사에 대한 헌화 및 묵념 장면
ⓒ 뉴스타운 송인웅^^^
^^^▲ 애국열사에 대한 헌화 및 묵념 장면
ⓒ 뉴스타운 송인웅^^^
애국선열에 대한 헌화와 묵념후 이규희 애국지사 숭모회 회장의 안내로 맨 처음에는 백범 김구선생의 모친 묘를 참배하고 애국지사 신정숙(申貞淑)선생의 묘를 참배하는 시간을 가졌다.

'신정숙'선생은 백범 김구선생의 광복군 최초의 여자 광복군으로 1910년 평안북도 의주에서 태어났다. 1940년 9월 광복군에 입대하여 1941년 3월 1일 대한민국임시에서 제3분처 임무위원 겸 회계조장으로 파견되어 활약하였으며,

제3분처 본부를 연산현(鉛山縣) 하구진(河口鎭)으로 옮겨 김문호(金文鎬)와 함께 전선과 후방에서 중국유격대와 합동으로 정보수집 및 선전공작을 전개하였다.

또 포로심문을 통해 일본군의 일선 및 후방에 관한 정보를 수집하여 공작에 활용하는 임무를 수행하였다. 1977년 건국포장, 1990년 대한민국 건국훈장 애국장을 수상하신 애국지사이다.

^^^▲ 신정숙 선생의 묘 참배 장면
ⓒ 뉴스타운 송인웅^^^

결국 항의 집회 대표단과 관리과장간의 양해로 기왕 현충원에 온 이상 애국선열들에 대한 헌화와 애국지사 묘역을 둘러보기로 하고 대전현충원측에서 제공한 버스를 이용하였다.

다음으로 참배를 한 애국지사는 조신성(趙信聖)선생으로 선생은 평북 의주(義州)에서 출생하시어 19세에 남편이 죽은 후 그리스도교 신자가 되어 전도사업에 진력하다가 선교사의 주선으로 일본에 가서 요코하마[橫濱]여자전문대학에서 교육학을 수학하였다.

^^^▲ 이규희 회장
ⓒ 뉴스타운 송인웅^^^
귀국 후 이화학당(梨花學堂) 기숙사 사감을 지내고, 평양에서 진명(進明)여학교를 창설하였다. 그 후 신민회(新民會)에 참여하고, 그리스도교를 전도하면서 헌납금을 임시정부에 보내고, 독립운동가를 피신시키는 등 적극적인 항일민족운동을 전개하였다.

나신탁(羅信鐸)을 동지로 만들어 경찰서를 습격하게 하여 1921년 치안유지법 등의 죄목으로 6개월 징역형을 선고받고 복역하던 중 다른 사건에도 관련되어 1년 2개월간 복역하였다. 1927년 김활란(金活蘭) 유각경(兪珏卿) 등과 근우회(槿友會)를 조직하여 회장이 되었다.

8 .15광복 후 북조선여성동맹위원장으로 있다가 월남하여 1948년 대한부인회 부총재가 되었다. 6.25전쟁 때 부산에서 병사하였다. 1977년 대통령표창이 추서되었다.

이규희 '애국지사 숭모회회장'의 말에 의하면 "선생은 우리나라 독립운동의 조상이라 할 수 있으며 초대 대통령이신 이승만 박사가 국무회의에서 지금의 어버이날인 어머니날을 만들게 하신 분"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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