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너지 지배력(Energy Dominance)”라는 개념은 시대와 맥락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져 왔다. 특히 최근 몇 년간 세계 에너지 지형과 기후 위기, 지정학적 갈등이 겹치면서 그 의미는 단순한 ‘많은 생산’을 넘어서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
과거와 현재에서의 ‘에너지 지배력’의 달라진 의미를 요약해 보자면, 화석 연료 생산과 수출 중심에서 청정에너지, 기술, 공급망, 기후 규범의 주도로 바뀌었으며, 자급자족의 과거에서 글로벌 공급망 통제로 변했고, 단기 수익과 경제 우선이었던 것이 지속가능성, 기후 리더십 중시로 전환됐고, 국가 중심 에너지 안보에서 글로벌 협력 기반 에너지 안보로 의가 달라졌다.
20세기 후반에서 2010년대 중반까지 화석 연료 생산량의 절대적 우위를 보이면서, 석유, 천연가스, 석탄을 많이 생산하고 수출함으로써 세계 시장을 주도했으며, 러시아, 사우디아라비아 등이 에너지 수출국으로서 지정학적 영향력을 행사했다. 트럼프 미국 행정부는 ‘에너지 지배력’를 에너지 자립 + 화석 연료 수출 확대 전략을 제시하는 등 트럼프의 미국은 2020년대 초반 현재 과거로 회귀 성향을 보이고 있다.
과거지향적 트럼프의 미국과는 달리 최근에는 청정에너지 기술력 우위로 바뀌고 있다. 태양광, 풍력, 원자력, 수소, 에너지저장장치(배터리) 등 신재생 기술과 생산 시스템을 선도하는 나라가 전략적 우위 확보하게 돼 있으며, 에너지 기술 수출과 표준 설정을 통해 시장 지배를 하는 시대로 접어들었다.
또한 리튬, 희토류, 구리 등 에너지 전환에 필수적인 자원의 확보 및 가공 능력이 중요해지면서 ‘에너지 통제 영향력’의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단순한 에너지 생산보다 그 공급망과 인프라를 통제하는 쪽이 더 큰 힘을 가지게 되는데 그 좋은 사례가 중국이 희토류 장악하고 그 공급망까지 흔들며 영향력 확대를 꾀하고 있다.
나아가 기후 변화 대응 역량과 글로벌 탄소 감축 목표를 향해 먼저 달려가는 세력이 에너지 안보와 기후 리더십을 확보, 탄소국경세, 탄소시장 등 국제 규범 주도권을 쥐는 것이 ‘에너지 외교력’의 핵심으로 자리매김해 가고 있으며, 지능형 전력망, 에너지 효율 소프트웨어, 인공지능(AI) 기반 수요 예측 등 디지털 기술 융합이 새로운 우위 조건이 디지털 에너지 인프라 주도권을 제공하게 될 것이다.
"에너지 지배력"은 석유 굴착 장치와 가스전 보유 그 이상이다. 오늘날의 지정학적 환경에서 이는 미국이 세계 에너지 시장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안정적이고 저렴한 국내 에너지를 확보하며, 원자재부터 첨단 기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혁신을 선도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고 있다.
진정한 에너지 우위 혹은 지배력의 징후는 전 세계적으로 희토류 광물과 핵에너지 생산을 늘리고, 규정을 개정하고, 전체 공급망을 통제함으로써 미국을 주요 에너지 수출국으로 만드는 것이다. 트럼프식 에너지 지배력 전략이다.
현재 미국은 리튬, 흑연, 우라늄과 같은 핵심 광물에 대한 자체 수요를 충족할 역량이 부족하다. 이 광물들은 모두 배터리, 전기차, 반도체, 방위 시스템의 핵심이다. 캘리포니아주 마운틴 패스는 유일한 주요 경희토류 광산이며, 생산량의 상당 부분이 가공을 위해 중국으로 수출된다. 미국은 디스프로슘이나 테르븀과 같은 중희토류를 생산하지 않으며, 우라늄의 90% 이상을 수입하고 있는데, 그 가운데 상당 부분은 “카자흐스탄”에서 수입된다.
미국이 석유와 가스에 집중하는 동안, 중국은 미래에 필수적인 가공 소재 시장을 독점했고, 러시아는 세계 핵 영향력을 확대했다. 중국이나 러시아의 그러한 노력은 계속되고 있다. 트럼프의 미국에서는 오랜 허가 지연과 환경적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몬태나, 와이오밍, 텍사스, 네브래스카, 알래스카에서는 새로운 탐사 및 시범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다.
2025년 미국-우크라이나 전략적 광물 협정은 미국 기업이 우크라이나산 리튬, 티타늄, 희토류에 조기에 접근할 수 있도록 허용하여 일자리를 아웃소싱하지 않고도 국내 제조에 필수적인 투입재를 확보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당장은 아니다.
그린란드와 중앙아시아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카자흐스탄은 광대한 희토류 매장량 외에도 전 세계 우라늄 공급량의 40% 이상을 점유하고 있으며, 우즈베키스탄은 개발이 필요한 광물 매장량도 보유하고 있다. 두 나라 모두 중국과 러시아에 대한 의존을 벗어나 대안을 모색하고 있으며, 이는 미국의 투자, 인프라, 그리고 거버넌스 지원 기회를 창출하고 있다.
한국 정부도 중앙아시아의 희토류 등 광물자원 확보에 적극 나서야 한다. 미국이나 일본에만 집중하고 중국이나 러시아는 배척하면서, 동남아시아, 아프리카, 남미 등에 대한 신규 시장에 대해서는 눈을 감는 등의 극우 정권의 무식한 프레임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다각화된 한국의 에너지 포트폴리오는 필수적이다. 한국은 재생에너지, 수소, 그리고 청정 기술에도 적극, 지속적으로 투자해야 한다. 러시아가 대규모 원자력 발전소를 건설하는 반면, 미국은 소형 모듈형 원자로 (SMR) 분야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다. SMR은 안전하고 유연하며 견고한 전력망이 부족한 지역에 이상적인 선택이다. 한국도 SMR에 대해서 동유럽과 중앙아시아 시장을 겨냥하는 기술 개발을 서둘러야 할 것이다. 이들 시장이 SMR을 장려하는 것은 러시아 의존에 대한 에너지 대안을 제공하는 일이며, 한국의 새로운 SMR 기술 시장을 개척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이러한 변화를 뒷받침하기 위해 한국 정부는 RE100이 완전히 달성되고 탈탄소 100% 되기 전까지 필요한 일정 기간 동안은 불가피하게 화석 연료와 원자력과 소형모듈원자로(SMR)를 적절히 활용하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반드시 나아가야 할 재생에너지 부문 전반에 걸쳐 인력 개발에 투자해야 한다. 국내에서는 에너지 구매력과 회복탄력성을 확보하고, 다각화된 조달과 국내 생산 능력을 통해 가정과 산업을 에너지 가격으로부터 보호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
인프라 현대화는 이미 시급한 과제이다. 국가 전력망 개선, LNG 터미널 및 희토류 시설 확장, 그리고 전략 비축량 확충은 필수적인 조치이다.
이러한 전략적 비전에 발맞춰 자금 조달도 진화하고 있다. 세계은행(WB)의 개발도상국 광업 자금 지원 금지 조치 해제 등은 우리 산업에 직접적인 지원을 제공하는 글로벌 광물 조달을 가능하게 할 것이다.
수입에 의존하는 것은 에너지 자립을 저해한다. 하지만 이는 오래된 생각이다. 오늘날 진정한 에너지 안보는 모든 것을 스스로 해결하려 애쓰는 것이 아니라, 신뢰할 수 있는 파트너와 회복력 있는 공급망을 확보하는 데서 비롯된다. 오늘날 에너지 안보는 회복력 있고 신뢰할 수 있는 글로벌 공급망을 의미한다. 핵심 광물을 전 세계에서 조달하고 국내에서 가공함으로써 한국은 산업 역량을 유지하고, 수출을 늘리며 지정학적 영향력을 강화할 수 있다는 신념으로 임해야 한다.
한국은 에너지 독립국가를 만들어 내기 위해서는 글로벌 에너지 동맹을 구축해야 한다. 에너지 외교, 특히 중앙아시아, 아프리카, 동남아시아 지역에서의 에너지 외교는 한국 에너지 전략의 핵심 요소가 되어야 한다. 인공지능(AI) 시대를 대비하기 위해서, 반드시 에너지 독립국을 향한 효과적인 글로벌 에너지 공급망을 구축해야 한다.
20세기에 에너지 지배력은 유정과 석유 매장량을 장악하는 것을 의미했다. 21세기에 에너지 지배력 혹은 에너지 우위는 소형 원자로(SMR), 배터리 공장, 그리고 희토류 처리 분야를 선도하는 것을 의미하며, 이는 세계 자원을 기반으로 하지만 한국 산업에 뿌리를 두어야 한다.
나아가 지능형 전력망을 구축해 효율적인 에너지 배분에 관한 노하우를 쌓고, 글로벌 시장을 개척하는 수단으로도 활용해야 한다. 해외 자원을 확보하는 동시에 국내 산업 부흥을 견인하는 것은 단순한 에너지 전략이 아니라 국가 안보와 경제적 리더십을 하나로 통합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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