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신의 늪에 빠진 사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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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신의 늪에 빠진 사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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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장이 연루된 사건을 대법원이 자체적으로 조사?

 
   
     
 

신영철 대법관의 이메일 사건의 파장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신 대법관은 문제의 이메일에서 이용훈 대법원장의 뜻이 담겨 있는 것처럼 전했고, 이용훈 대법원장도 그런 사실 자체는 부인하고 있지 않고 있어 문제가 간단치 않다. 이용훈 대법원장은 신영철 당시 서울중앙법원장의 이메일은 "판사는 자기 소신에 따라 판결하고 다른 영향을 받지 말라는 원칙론을 말한 것" 뿐이라고 하나, 그것을 곧이 들을 사람이 얼마나 있을지 모르겠다.

지난 6월, 촛불시위 때 검찰에 구속 기소되었던 몇몇 사람들을 대리한 변호사들이 야간집회 금지가 위헌이라고 주장하고 담당 재판부가 이를 받아드렸다는 뉴스를 읽고 헌법재판소가 어떤 판결을 할 것인가 생각해 보았다.

우리 언론에는 별로 보도가 되지 않았지만, 당시 홍콩에서도 매일 4-5만 명이 야간에 도심광장에서 촛불집회를 열고 있었다. 천안문 사건 19주기를 맞아 희생자를 추모하고 중국 본토의 인권회복을 위한 촛불집회였다. 홍콩 당국이 허용한 그 집회에는 할아버지에서 어린 아이들까지 온가족이 참가한 경우가 많았다. 정부가 인정한 집회라서 그런지 우리나라와는 달리 차분하고 엄숙한 분위기였다. 여하튼 우리나라에선 법으로 금지되는 야간집회가 중국이 통치하는 홍콩에선 허용되고 있다는 사실에서 묘한 패러독스를 느끼기도 했다.

법원이 사건을 심리하던 중에 동일한 쟁점이 다른 재판부에 의해 헌법재판소에 회부되었다면 헌재의 판결이 나오기 전까지 재판을 연기하는 것이 지금까지의 관례였다. 헌재 판결이 어떻게 나올지 모르는 상황에서 공연히 재판을 해 보았자 헛수고가 되고, 당사자에게 부당한 부담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난 번 촛불사건에서는 재판부에 따라 독자적으로 유죄를 인정하는 판결이 나왔다. 교수들 사이에서도 “이해하기 어렵다”는 말이 오고 갔는데, 그 맥락을 알 수 있게 하는 ‘단서’가 실체를 드러내고 만 것이다.

대법원은 자체적으로 조사를 해서 결론을 내리겠다고 하나, 그 결과를 누가 곧이 믿을 것인지 알 수가 없다. 대법원장이 연루된 사건을 대법원이 자체적으로 조사해서 내 놓은 결과는 나라도 믿지 않겠다. 그렇다고 다른 기관이나 시민단체가 대법원을 조사할 수도 없는 일이다. 그것 자체가 사법부의 독립을 저해하기 때문이다. 국회가 탄핵 대상인지 아닌지를 다루는 특위를 만들어 조사하는 것이야 가능하겠지만, 이 역시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하다. 결국 당사자들의 결단이 있지 않는 한, 한국의 사법부는 불신의 깊은 늪에 빠져 버리고 말 것이다.

이번 사태를 보수와 진보, 우파와 좌파로 나누어 보는 시각도 있는 모양이다. 그러나 과연 그런 도식(圖式)이 얼마나 설득력이 있는지는 알 수 없다. 보수진영에서는 이용훈 대법원장을 노무현 대통령의 ‘대못’ 정도로 이해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런 이용훈 대법원장에 대해 ‘좌파 판사’들이 이념적으로 반기(叛旗)를 들었다는 해석은 설득력이 약하다.

노무현 대통령은 전에 없이 많은 숫자의 대법관과 헌재 재판관을 임명했다. 노 대통령은 진보 법관 일색으로 대법원과 헌재의 색깔을 바꾸지는 않았지만, 전체적으로 보아서 대법원과 헌법재판소는 노무현 이전 시대에 비해 왼쪽으로 약간 기울어 진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교수들이 그러하듯이 판사도 성향이 있다. 그러나 판사 개개인의 성향이 문제가 되는 것은 주로 대법원과 헌법재판소이다. 하급심에서도 판사 개개인의 성향에 따라 비슷한 사건에서 판결과 양형이 달리 나오기도 하지만, 하급심은 기본적으로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판례를 존중해서 판결을 하는 것이 보통이다. 야간 집회를 금지한 집시법이 헌법에 합치하느냐 하는 문제가 제기되자 담당 판사가 이를 헌재의 심판에 회부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 것은 정상이다. (다만 그 판사가 재판 중에 피고인에 동조하는 듯한 발언을 한 것은 잘못이다.)

대법원과 헌법재판소는 구성원의 가치판단에 따라 판결이 좌우될 여지가 많다. 그렇다고 해서 대법원이나 헌법재판소가 취향에 따라 판결을 하는 것은 아니다. 두 기관 모두가 '법원'('court of law')이기 때문에 중요한 것은 역시 '논리'('legal reasoning')이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외부에서 볼 때에 두 기관이 ‘보수적 조직’으로 보이는 것이다.

예를 들어, 논란이 많았던 상지대학교 정이사 선임을 무효로 판시한 대법원 판결과 종부세 부부합산을 위헌으로 판시한 헌법재판소 판결도 실정법 해석과 기존 판례에 비추어 볼 때 예견되었던 것이다. 진보 매체는 이 판결들을 ‘보수 판결’ 이니 ‘기득권 수호 판결’ 이니 하는 식으로 비난했는데, 그것은 올바른 보도 자세가 아니라고 나는 생각한다.

‘현관예우’ 시대 ?

우스운 말이지만 요즘 우리나라 법관들은 ‘현관예우(現官禮遇)’에 빠져있다고 한다. 무슨 말인가 하면, 요즘은 변호사가 많아서 옷 벗고 나가봤자 워낙 사정이 안 좋아서 ‘전관예우’고 뭐고 간에 별로 비전이 없고, 안에 있는 것이 대우받는 것이라는 말이다.

실제로 이제는 부장판사 정도 지내다가 옷 벗고 나가서 변호사 개업을 해보아야 큰 비전이 없다. 이런 현상이 법관의 자부심을 높여 준다면 다행일 것이나,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예전에는 상부에서 부당한 지시를 하거나 외부 압력이 있으면 소신껏 재판하고 옷을 벗고 나가기도 했다. 그러나 변호사 숫자가 늘어나서 변호사 실직이 사회문제가 되어 버린 오늘날에 그것은 옛날이야기가 되고 말았다.

이런 사정으로 인해 하급심 법관들이 위축되어 있지 않은가 한다. 영미권의 판사와 달리 보직과 승진에 신경을 써가면서 재판을 해야 하는 ‘고달픈 법관들’에게 ‘대법원장의 뜻’은 하늘의 계시(啓示)와 같을 것이다.

김병로, 최대교, 김익진을 아십니까?

우리는 건국 초기의 하늘과 같았던 법률가의 생애를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 초대 대법원장을 지낸 김병로는 기개와 지조와 강단(强斷)이 있었던 법률가이었다. 그는 질병으로 한쪽다리를 절단한 불편한 몸을 갖고 이승만의 독재에 결연하게 맞서 싸운 인물이었다. 그는 부산 피난시 정치파동을 보고 “독재자에 맞설 수 있는 길은 사법부 독립 뿐” 이라는 명구(名句)를 남겼다. (김종인 전 의원이 김병로의 손자임은 잘 알려져 있다.)

이승만 대통령이 총애했던 초대 상공부장관 임영신을 독직(瀆職) 혐의로 기소한 최대교 검사는 또 어떠한가. 대통령은 법무장관을 통해 기소하지 말라고 압력을 가했지만 서울지검장이던 그는 이에 굴하지 않고 임 장관을 전격적으로 기소해서 법 앞에선 만인이 평등함을 보여 주고 사표를 던졌다. 4.19 후에 복직한 최대교는 부정선거 원흉들을 기소했다.

2대 검찰총장(1949.6- 1950.6)이었던 김익진은 이승만의 측근들이 꾸민 정치공작을 파헤쳐서 기소하도록 했다. 이 대통령은 기소하지 말라고 압력을 넣었으나 그는 권력의 비선(秘線)을 단호하게 기소했다. 사임 압력에도 굴하지 않는 김익진을 이 대통령은 고검장으로 강등시켜 발령을 냈다.

부산 피난 중 이 대통령의 정치보복으로 구속되는 수난을 겪기도 한 그는 은퇴 후에 공증업무를 하면서 말년을 조용하게 보냈다. (서울법대 학장을 지낸 민법학자 故 김증한 교수는 김익진의 아들이다.) 우리나라의 ‘보수’는 이런 사람들도 기릴 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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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사 2009-03-10 01:44:30
시원하고 명쾌한 컬럼 잘 보았습

사죄하라 2009-03-16 01:10:00
대법원장과 대법관이란 사람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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