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가 중시하는 가치는 ‘자유’, ‘법치’, ‘시장’ 등 여러 가지가 있지만 우리나라 상황에서는 ‘안보’가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 노무현 정권이 실패한 원인 중의 하나가 ‘안보 경시’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도 경시했지만, 공연히 국가보안법을 폐지하니 개정하니 해서 필요이상으로 논란을 일으켰다. 대통령이 군대는 “사람들이 썩는 곳”이니 뭐니 하는 식으로 구설수(口舌數)를 일으켰다. 이 덕분에 보수세력은 응집했고, 열린우리당은 2004년 총선 후에는 선거 때마다 패배했다.
잠실 초고층 건물
그렇다면, 이명박 정권은 한국의 ‘안보 보수’ 세력의 기대에 얼마나 부응하고 있을까? 얼마 전에 김용갑 전(前) 의원이 참으로 옳은 말을 했다. “노무현 정부 시절에 잠실 초고층 건축허가를 했더라면 난리를 쳤을 것”이라고. 안보를 경시했다던 노무현 정권도 공군의 뜻을 수용해서 건축을 불허했었는데, 보수정권이라는 이명박 정부 들어서 이를 허용해도 보수진영이 잠잠하니 말이 되느냐는 것이다.
실제로 잠실 초고층 건물에 대해 ‘안보상의 우려’를 제기한 신문은 이른바 진보매체들이니, 세상에 이런 기가 막힌 경우가 어디 다시 있을지 모르겠다. 김용갑 전 의원의 ‘질타’가 있자 뒤늦게 몇몇 보수단체들이 일과성(一過性) 반대시위를 했는데, 아마도 면피용이 아니었을까 한다.
서울시청 출신 국정원장
국정원장에 공직생활을 서울시에서만 했던 원세훈 씨를 임명한 것도 ‘안보’ 는 별것이 아니라는 인식이 그대로 반영된 것이다. 국정원은 정보 수집과 첩보활동, 그리고 대(對)첩보활동을 하는 기관이다. 그러니 만큼 국정원장은 아무나 해서도, 또 아무나 할 수도 없는 자리이다. 더구나 원세훈 국정원장 지명자는 병역을 면제받은 사람이다. 우리나라는 “대통령도 병역면제, 국정원장도 병역면제”인 이상한 나라가 될 판국이다.
미국에선 1977년에 카터 대통령이 시어도어 소렌슨을 중앙정보국(CIA) 국장으로 지명했다가 곤욕을 치렀다. 시어도어 소렌슨은 케네디 대통령의 스피치 라이터를 지냈다. 케네디가 상원의원 시절에 펴내 퓰리처상(賞)을 탄 ‘용기있는 사람들(Profiles in Courage)’은 소렌슨이 대필한 것이다. 그러나 소렌슨은 국가안보나 정보에 대해선 아무런 지식도 경험도 없었던 인물이었다. 게다가 소렌슨은 종교적 이유로 병역을 면제받은 사람이다.
CIA의 전신(前身)은 제2차 세계대전 때 목숨을 걸고 나치 독일이 점령한 프랑스에 잠입해서 사보타지 작전을 했던 OSS인데, 그런 CIA의 책임자에 신념을 이유로 병역을 회피한 사람을 임명한 것이다. 공화당은 물론이고, 민주당 보수파 의원들도 문제를 제기해서 카터는 지명을 철회하고 말았다.
중고 아파치 도입
미국이 한국에 주둔시켜 놓았던 아파치 헬기부대를 철수시킨데 대응해서 우리 정부가 미국으로부터 중고 아파치를 구입하려는 모양인데, 그것도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이 문제는 지난 가을부터 많은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한국형 전투헬기 사업을 포기하는 것이냐, 또 미국의 압력에 밀리는 것이냐는 등 말이 많다. 엊그제 중앙일보에는 이런 우려를 표시한 사외칼럼이 실렸다. 중고 아파치 헬기 도입 문제는 새로운 한미 관계와 이명박 정부의 국방안보 의식을 가름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 같다.
알다시피 우리 군은 1970년대까지는 미군이 사용하던 장비를 인수해서 썼다. 하지만 그간 한국군 현대화 계획에 의해 최신 장비가 많이 개발됐고, 또 우리 경제도 전과 같지 않아서 최신무기를 많이 도입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중고 아파치를 들여온다고 하니 의외가 아닐 수 없다. 중고 선박과 탱크는 고장이 나도 물과 땅 위에 서있기는 한다. 하지만, 비행기가 고장을 일으키면 하늘에 서 있을 수가 없기 때문에 중고 전투기 도입은 신중해야 하는 것은 상식이다.
우리 해군은 P-3 해상 초계기를 들여오기 전에 S-2라는 구형 초계기를 들여와서 오랫동안 운영했었다. 그런 구식 항공기를 그토록 오랫동안 운용했으니, 우리 군의 장비 운영능력은 대단하다. 그러나 거기에는 알려지지 않은 아픈 사연이 많다. 오랫동안 모스볼(mothball) 해놓았던 비행기를 들여와서 운영하다보니 고장이 많았다. 엔진이 하나가 꺼진 상태에서 공항에 착륙을 시도하다가 다른 엔진마저 꺼져서 그대로 추락한 사고도 발생했다. 그 사고로 장교 두 명 등 승무원 전원이 사망했다. 이에 박정희 대통령은 S-2를 조기 퇴역시키고 P-3를 도입하는 방안을 연구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30년 전에 나는 해군 초급장교로 군 복무 중이었는데, S-2가 추락해서 해군 전체가 초상집 같았던 그 날을 지금도 잊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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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보도, 무기도 삽 앞세만 서면 작아지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