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채 하나 들고 그늘로 떠나는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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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채 하나 들고 그늘로 떠나는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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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늘을 빌려 드립니다

 
   
  ^^^▲ 흙으로 된 숲길을 따라 오십시오^^^  
 

세파에 찌뜬 때를 뒤로하고

무더위가 기승을 부린다. 밤잠을 뒤척인다. 하루 세 번이고 몸을 씻어도 땀이 마를 줄을 모른다. 밖에 한 번 나갔다 오면 더 심하다. 땀에 절어 끈적끈적하다. 잦은 장맛비로 심신이 지칠 대로 지쳤다. 집에 들어와도 뽀송뽀송하기는커녕 눅눅함에 마음마저 걸레가 된 느낌이다. 이러다가 더위에 지친 몸이 언제 발작을 일으킬지도 모를 일이다.

세상사 흘러가는 게 영 신통치 않고 꽉 막힌 상태니 마음은 천근만근이다. 자살 소식이 끊이질 않고 들려오고 있다. 실업자가 갈수록 늘고 있다 한다. 젊은 학생들은 취업하기를 포기하고 하루하루 떠돌이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생활고에 신음하는 생활인들의 삶에 희망의 빛은 없는 건가? 절망의 끝은 어디인가? 우리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도피하여 현재 살고 있는 터전을 버리고 당장 산 속으로 들어갈 수도 없쟎은가? 농촌으로 산으로 간들 마땅히 먹고 살 방법을 찾을 수도 없다. 그러니 사람들 입에서 이민이라는 말이 쉽게 나오는 건가? 

 
   
  ^^^▲ 서오릉에 가면 괜찮은 소나무 숲이 있습니다. 솔잎을 뽀송뽀송하게 말려서 깔아 놓겠습니다^^^  
 

시원한 그늘과 시원한 수박이 그리운 때

사람은 더울 때 시원한 그늘을 생각한다. 그늘에서 수박 한 덩이 없어도 그냥 푹 쉬며 다음 걸음을 준비한다. 그런데 가야 할 길이 있는가가 문제다. 누구도 반기지 않는 곳은 갈 수 없다. 내가 맘놓고 쉴 곳이 없으면 걸음을 뗄 수도 없다. 한 발자국도 옮길 생각을 못 한다.

지친 나머지 잠시 머물다가 뒷걸음질 쳐서 궁벽하고 퀴퀴한 냄새가 진동하는 지하로 다시 흘러 들어간다. 그래서 지하도는 늘 그런 사람들로 북적인다. 동네 공원에도 갈수록 사람들이 늘어만 간다.

추운 겨울에는 또 어떠한가? 제발 얼른 날이 풀려 새싹이 돋기를 간절히 바란다. 들이든 산이든 쏘다니고 싶다. 몸 안에 가득한 내 몸에 찌든 사람 먼지를 털어 버리고 싶어한다. 일거리 하나라도 더 잡으려고 새벽같이 나가보지만 허탕칠 때가 허다하다. 처마 밑으로 한껏 쏟아지는 햇살 한 모금 먹으려고 발버둥을 치는 게 사람살이 아닌가. 

 
   
  ^^^▲ 가중나무, 참중나무도 꽤 큰 그늘을 만들어 줍니다. 이 나무 아래서 하늘을 한 번 쳐다보세요. 다른 세상이 보입니다. 요즘 일본에서 가로수로 많이 심는답니다.^^^  
 

현실은 그래도...

화려한 봄꽃 흐드러지게 핀 호시절이 그립다. 얼마만 지나면 곧 열매를 따먹을 수 있겠다는 꿈을 안고 산다. 묵묵히 현실의 무게를 견디며 살아간다. 그런데 이게 뭔가? 새 세상, 더 좋은 세상이 온 것이라 믿었던 생각은 일시에 무너지고 소금에 절여진 고등어 자반처럼 개차반 신세가 되어 있다.

현실은 너무 혹독하다. 쉬지 않고 내린 비바람은 주렁주렁 열렸던 열매를 죄다 앗아갔다. 그 붉고 시고 달콤하며 때론 향긋한 내음 솔솔 풍기는 실과를 하나도 남겨놓지 않는다. 

 
   
  ^^^▲ 고향마을에 가면 큰 당산나무가 있습니다. 8월 1일 날은 꼭 느티나무 아래로 모이시기 바랍니다.^^^  
 

시원한 물이 흐르는 계곡 원두막

여름이면 수박에 참외에 자두며 살구를 나눠 먹고 싶다. 한적한 원두막이든 계곡 그늘 물가에 발 담그고 편히 쉬면서 말이다. 세 내지 않고도 마음 편히 사랑하는 사람과 나눠 먹기가 어찌 그리 힘든가. 잠시 빌려서 머물다가 갈 것인데도 도둑놈 취급을 하니 세상 인심 이런 건가?

우리가 사는 울타리는 모두 소유가 있다. 큰 것이든 작은 것이든 오래되었든 새것이든 주인이 있다. 자리 먼저 까는 사람이 임자다. 하지만 같이 나눌 수 있는 것도 꼭 움켜쥐려고만 하지 나눠 가지려고 하지 않는다. 왜 그러는 걸까? 밭가에 지나갈 때 오이 하나 따서 주면 다음에 두 개 받는 것을? 

 
   
  ^^^▲ 거제수나무와 자작나무를 구분할 줄 아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하여튼 자작나무 숲에도 향기가 가득합니다. 이 나무 껍질을 벗겨서 라이터불을 붙이는 행위는 하지 맙시다. 자작나무는 잎이 진 뒤 눈 오는날 바라보면 참 좋습니다. 자, 눈이 온다고 생각해 보세요. 시원하시죠?^^^  
 

그늘을 빌려 드립니다

그래서 내가 꾀를 한가지 냈다. 그늘을 빌려주기로 했다. 어디까지나 한시적인 마음 씀씀이니 곧 돌려줘야 한다. 나무 그늘을 무상으로 임대하고자 한다. 세상에 수많은 나무가 있지만 그늘로 적합한 것은 그래도 알려져 있다.

당장 짐을 싸라. 한시름 놓고 집을 떠나 한시간 놀다 가도 되고 두시간이어도 좋다. 꼬박 밤을 새고 들어가도 개의 치 않는다. 오늘 왔다 잠시 쉬고 내일 모레 낮에 다시 와도 말릴 사람 없다. 

 
   
  ^^^▲ 버즘나무 플라타너스. 지난 겨울에 앙상하게 잘라버렸는데도 벌써 이렇게 왕성하게 그늘을 만들고 있습니다. 외래 수종이기는 하나 그 덕을 톡톡히 보고 있는 까닭에 이 나무를 아끼기로 했습니다.^^^  
 

느티나무 빌려드리리까, 소나무 숲에 솔잎 깔아 드리리까

느티나무 그 너른 가슴에 안기고 싶으면 웅장한 그늘 아래로 오면 된다. 도시 길가에 머물고자 하면 가중나무도 괜찮다. 고향마을 어귀에서 친구들 올까 궁금해 바로 확인하려면 팽나무가 좋다. 벚나무 아래서 까만 버찌로 입술과 혀를 물들이려면 그리 오라.

오동나무라고 그늘이 없는 게 아니다. 플라타너스면 어떻고 마로니에면 또 어떤가? 자작나무 숲을 좋아하면 주저말고 얼른 오라. 등나무 벤취에 앉아 젊은 시절 추억이 그리우면 호수 있는 캠퍼스를 살포시 걸어오시면 마중 나가리다.

몇 안 되는 나무 그늘이 싫거든 소나무 숲으로 들어 오라. 솔바람 솔솔 향기롭게 한들거릴 것이다. 그 아래서 맨밥에 신김치만 먹어도 맛있다. 청설모, 다람쥐 보시려거든 잣나무 숲이 기다리고 있다. 이런 숲에 들면 계곡 시원한 물에 등목을 할 수 있으니 이 또한 얼마나 좋은가? 아이들은 그 작은 시내에서 발가벗고 놀게 하자. 다리가 돌부리에 넘어져 조금 터진들 대수랴? 

 
   
  ^^^▲ 물만 바라보고 있어도 시원하죠? 광진구 모진동에 있는 대학 호수-일감호라고 합니다. 그 등나무 아래서 수련이 핀 걸 보면서 추억을 한보따리 꺼내시기 바랍니다.^^^  
 

밀린 일 접고 부채 들고 나오는 여유를 부려보자

한가지 드릴 말씀이 있으니 들어달라. 아무리 바빠도 너무 늦지는 말아 달라. 7월이 가고 8월 중순이 지났는데도 바쁘단 핑계로 나서지 않는다면 그늘에서 평상 깔고 낮잠 한 번 늘어지게 잘 자격이 없는 사람이다. 밀린 일 접고 나설 용기가 있어야 한다.

그늘이 그대를 기다리고 있다. 부채 하나 들고 나오는 여유도 부려보자. 내가 그댈 위해 기꺼이 팔목 운동을 할 용의가 있다. 평상과 돗자리는 이미 준비되어 있으니 염려 말아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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