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데이(노동절)와 '법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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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데이(노동절)와 '법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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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곡되어 알려진 ‘헤이마켓 사건’

 
   
  ^^^▲ 이상돈 교수^^^  
 

지난 4월 25일은 ‘법의 날’이고, 오는 5월 1일은 ‘근로자의 날’입니다.

4월 25일이 ‘법의 날’이 된 것은 김대중 정부의 산물입니다.

원래 ‘법의 날’은 5월 1일이었는데, 2002년 12월에 정부가 이를 ‘4월 25일’로 변경키로 해서 2003년부터 4월 25일이 ‘법의 날’이 되었습니다.

추억 속의 ‘법의 날’

내가 대학을 다닐 적에 서울 법대는 매년 5월 1일에는 ‘법의 날’ 행사를 했습니다.

4학년 때로 기억되는데, 존슨 행정부에서 국무차관을 지낸 유진 로스토우 예일대 교수가 국제법에 대해 기념 강연을 했던 것이 기억에 남습니다. (유진 로스토우의 동생이 경제발전단계 이론으로 유명한 월트 로스토우입니다. 월트 로스토우는 존슨 대통령의 안보보좌관을 지냈으니, 형은 국무차관, 동생은 안보보좌관을 지낸 것입니다. 형제는 2002년과 2003년에 각각 사망했습니다.)

대학 다닐 때만해도 ‘법의 날’의 유래를 알지 못했습니다. 5월 1일에 ‘법의 날’이 된 것은 아이젠하원 대통령이 미국 변호사협회의 권고를 받아들인 결과라는 것은 대학원 가서야 알게 됐습니다.

동서(東西) 냉전(冷戰)의 긴장이 팽팽하던 시절에 5월 1일이 되면 모스코바의 붉은 광장과 베이징의 천안문 광장, 그리고 평양 한복판에서는 그들의 노동자 대회가 열렸고, 붉은 군대는 탱크와 미사일을 앞세우고 행진을 했습니다. 서방의 군사전문가들은 그날 공개되는 공산권의 신무기에 대해 신경을 곤두 세웠습니다.

‘메이데이’

5월 1일은 흔히 ‘메이데이(May Day)’라고 부릅니다. 메이데이의 유래는 유럽에 기독교가 전파되기 전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유럽에선 우리나라의 그네 같은 메이폴(Maypole) 놀이를 하면서 여름의 시작을 알리고 농사의 번창을 기원했다고 합니다. 기독교가 전해 진 후에도 이 전통은 유지되었습니다.

유럽과 미국에선 ‘계절의 여왕’인 5월이 시작되는 축제일로, 작은 마을에선 민속의상을 차려 입고 행진을 하는 의식이 전통으로 이어오고 있습니다. 학교에선 아름다운 여학생을 선발해서 ‘5월의 여왕’(메이 퀸)으로 대관식을 하는 행사를 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1970년대까지 이화여대가 메이 퀸 행사를 성대하게 했습니다.

서방에선 메이 퀸을 뽑는 ‘5월의 축제일’인 5월 1일이 공산국가에서는 무시무시한 ‘적군(赤軍) 행사일’이 된 것은, 1890년부터 유럽의 사회주의자와 공산주의자들이 5월 1일을 ‘노동절’로 정한데서 유래합니다.

그 직접적인 계기는 1886년 5월 4일에 일어난 ‘헤이마켓 사건’입니다. 주의할 점은 헤이마켓 사건은 5월 4일에 일어났는데, ‘노동절’은 5월 1일로 정한 것입니다.

그것은 물론 유럽에서 5월 1일을 이미 축제일로 정하고 있어서 이날을 ‘노동절’로 정하면 ‘메이데이의 정통성’을 가져 갈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하튼 냉전 시대에 5월 1일은 공산국가에서 큰 의미를 갖게 되었고, 이에 대항하여 1958년에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5월 1일을 ‘법의 날’로 정했습니다. 미국 변호사 협회는 노조가 탈법을 많이 하며, 공산국가들이 메이데이 행사를 하기 때문에 5월 1일을 ‘법의 날’로 정해서 눌러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근로자의 날’과 ‘법의 날’

우리나라는 1957년에 노총 창립일인 3월 10일을 ‘노동절’로 정했습니다. 제3공화국 들어서 그 명칭을 '근로자의 날'로 변경했습니다.

1964년에 박정희 대통령은 5월 1일을 ‘법의 날’로 정했습니다. 5월 1일을 ‘법의 날’로 정하는 것은 미국을 따랐다고 밖에는 달리 설명하기가 어려울 것 같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이 사회주의 운동을 억제하기 위해 미국에선 5월 1일을 ‘법의 날’로 정했다는 것을 듣고 그렇게 결정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생각됩니다.

‘근로자의 날’을 5월 1일로 옮긴 김영삼 대통령

1980년대 말 이후 우리나라 노동계는 ‘근로자의 날’을 5월 1일로 옮기자는 주장을 계속해 왔습니다. 1994년 김영삼 대통령은 ‘근로자의 날’을 5월 1일로 옮기도록 결정했습니다. 따라서 우리나라에선 5월 1일이 ‘노동절’이면서 또한 ‘법의 날’인 기형적 상황이 발생한 것입니다.

2000년 들어서 대한변협(민변출신인 김창국 변호사가 회장을 할 때입니다)은 ‘법의 날’을 5월 1일로 정한 것은 아무런 근거가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2002년 말에 구한말(舊韓末)에 ‘재판소 구성법’이 제정된 4월 25일을 ‘법의 날’로 정했습니다.

보기에 따라선 우리나라에선 미국과는 정반대되는 현상이 이루어 진 것입니다.

왜곡되어 알려진 ‘헤이마켓 사건’

원래부터 ‘메이데이’였던 5월 1일이 ‘노동절’이 된 것은 헤이마켓 사건 때문입니다. 1886년 5월에 시카고 시내 헤이마켓 거리에서 일어난 폭발 사건, 그리고 이로 인해 무고한 사회주의자 몇 명이 사형을 당한 것이 ‘헤이마켓 사건’입니다.

미국 역사의 한 장(章)을 장식한 ‘헤이마켓 사건’은 미국 사법사(司法史)에 오점(汚點)을 남겼습니다. 이 사건은 미국에서 강경한 노동운동이 막을 내리는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문제는 우리나라에 이 사건이 황당하게 왜곡되어 알려져 있다는 점입니다.

“사건 자체가 자본가들의 음모였다”, “30만 명이 시위에 참가했다” “흰 꽃을 손에 쥔 어린 소녀가 경찰의 발포로 죽었다” ‘당시 미국의 자본가들은 100달러 지폐로 담배를 말아 피웠다“ 등등입니다.

당시 시카고 전체 인구가 80-90만 정도였는데, 30만 명이 시위에 참가했다는 것도 황당하고, 도무지 헤이마켓 광장은 우리나라로 치면 로타리 정도 밖에 안 되는 면적입니다. (30만 명이면 프랑스 대혁명이나 볼세비키 혁명을 일으키기에 충분하지요. 또한 당시 100달러면 지금 돈으로 수천 달러가 되는 거액입니다.)

월간 조선 2007년 5월호에 기고한 ‘헤이마켓 사건의 진실’이 ‘북 월드’에 올라 있습니다. 그것을 읽으시고 비극적인 '헤이마켓 사건'의 진실을 접해 보기 바랍니다.

참고로 우리나라 신문에 난 관련 기사를 아래에 그대로 옮겨 놓았습니다. (비교해서 읽으시면 재미있을 것입니다. 1, 2, 3 기사는 기명 칼럼입니다만, 글 쓴 기자의 이름은 생략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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