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피랍 JAL기 승객 김포공항 도착 ⓒ e-영상역사관(http://ehistory.korea.kr) | ||
1970년 3월 31일 일본 극좌파 학생단체인 적군파 불순분자 9명이 일본항공(JAL)소속 보잉 727기를 북괴로 납치하려다 실패, 한일 양국의 협조로 이날 하오 3시 15분, 김포공항에 유도 착륙되는 사건이 일어났다.
우리 정부는 요도호가 김포에 도착하자 임시대책본부를 설치하고 정래혁 국방장관, 박경원 내무장관, 백선엽 교통장관, 유근창 대간첩대책 본부장, 김재규 보안사령관, 정상천 치안본부장 등이 나와 납치범들과 협상을 벌였으나 실패했다.
정래혁 국방장관은 1일 새벽 승객을 내려 보내주면 이륙을 보장해주겠다고 약속했으나 역시 실패로 끝났다. 범인들은 빨리 이륙시켜줄 것을 요구하며 버티었으나 우리의 본래 입장인 승객을 내려놓지 않고는 북괴로 비행기를 보낼 수 없다는 방침에는 변함이 없다고 강경하게 맞섰다.
JAL기는 1일 기체에 산소공급을 받았으며, 범인들의 거부로 그동안 식사공급을 하지 못했으나 뒤늦게 타협을 보아 식사와 음료수 등을 제공받기에 이르렀다. 1일 가네야마 일본대사를 비롯 우리 정부측 관리들의 설득작전은 계속되었고 범인들의 요청에 의해 입국하게 된 일본 운수성차관과 JAL기 지사장이 김포에 도착, 설득작전에 합세했다.
일본측에서 승무원을 교체하기 위해 승무원을 입국시켰으나 범인들의 거부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범인들은 1일에 이어 2일에도 완강히 버티며 북쪽으로 갈 것을 고집했고 정래혁 국방장관은 2일 범인들과의 대화를 통해 “너희들은 대한민국에 불법 입국한 범인이며 마땅히 체포해야 하나 인도적 입장에서 무고한 승객을 구하기 위해 참는 것이니 승객을 풀지 않고는 이륙을 시키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밝힌다”고 통고했다.
2일 야마무라 일본측 운수성차관은 범인들에게 승객 대신 인질로 동행할테니 승객을 풀어 달라고 했으나 납치범들은 거부했다. 당시 정래혁 국방장관의 최후통첩을 듣고 난 범인들은 2일 오후 6시 30분 야마무라차관이 탑승한다면 승객을 석방하겠다고 극적 타협을 보아 4월 3일 오후 2시 58분 기장과 부기장 승무원 3명을 제외하고 1백 3명(승객 99명, 스튜어디스 4명)이 71시간만에 석방되었다.
JAL 승객들은 김포공항에서 잠시 휴식한 뒤 JAL소속 DC 8기편으로 본국인 일본을 향해 떠났다. 한편 일본의 일부 신문과 TV 방송은 북괴와의 정치적 이유로 한국이 JAL기를 억류하고 있으며 한국정부의 고집 때문에 북괴로의 비행이 지연되고 승객의 안전에 영향을 끼쳤다고 보도를 하여 우리 정부와 국민들의 분노를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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