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탐방] 1969년 대한민국 역사에는-2
스크롤 이동 상태바
[역사탐방] 1969년 대한민국 역사에는-2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무장 공비의 침투 만행

^^^▲ 주문진 무장공비 침투 현장 검증과 주문진 침투 무장공비 노획물
ⓒ e-영상역사관(http://ehistory.korea.kr)^^^
3월 16일 상오 1시경 주문진에 괴한이 출현하여 경찰 1명을 죽이고 해상으로 도주한 것을 군경 예비군이 추격전 끝에 시체 7구를 인양했다.

뒤이어 6월 8일 새벽 1시 50분경 삼척군 북평읍 천곡리 앞 해상을 통해 북괴는 3명의 무장공비를 침투시켰다.

해안을 경비 중인 00사단 오선교 상병 등은 고무 보트로 상륙하는 무장공비를 발견, 1명을 사살했으나 2명이 상륙하는데 성공했다.

사격전을 벌일 때 해안에서 약8백미터 가량 떨어진 해상에 대기 중인 쾌속 간첩선이 박격포 1발을 쏘아 삼척산업 사택에 명중했다.

이 포탄은 깊이 잠든 이태운과 부인 박동춘 여인, 3남 종길 4남 종복, 생후 3개월 된 막내딸 등 5명의 가족을 몰살시켰다. 군과 예비군 경찰로 편성된 합동수색대는 상륙에 성공한 무장 공비가 북평읍의 초록봉에 숨어 있음을 탐지, 소탕전을 폈다.

10일 상오 9시쯤 삼척 경찰서 북평지서의 이종민 순경이 지휘하는 10명의 잠복조는 무장공비 1명이 퇴로에 지쳐 초록봉 산속 바위에 기대어 앉아 있는 것을 발견, 격투 끝에 생포했다. 6월 13일에는 전남 흑산도 극해에서 북괴 대형 무장 간첩선 1척을 나포하고 무장공비를 일망타진 했다.

나포된 간첩선 안에서 7구의 시체를 발견했으며 잔비를 추격하기 시작하여 00전투경찰대 제 1소대장 이윤권 경위가 지휘하는 특공대는 6월 16일 상호 11시 10분쯤 흑산도 해안 자연동굴 입구에서 4시간동안의 격전 끝에 숨어 있던 무장공비 6명을 모두 사살했다.

그 외에도

◆ 6월 14일 - 전북 부안군 내산면에서 침투한 무장공비 3명을 사살.
◆ 6월 25일 - 서울에 침투한 무장공비 2명을 검거.
◆ 7월 26일 - 흑산도에서 무장공비 3명을 사살.
◆ 8월 12일 - 어선을 가장한 북괴 무장간첩선이 광도 앞바다를 순항중인 경찰 경비정에 무차별 총격을 가해 경관 2명이 순직하고 민간인 2명이 중상을 입었으나 북괴 쾌속정은 도주.
◆ 3월 11일 - 서부전선 두 곳에서 총격.
◆ 3월 15일 - 비무장지대 군사분계선 표지판을 고치던 유엔군에 북괴는 소총을 난사, 한국군 카츄사 1명 사망, 미군 3명 부상, 이들을 후송하던 헬리콥터가 북괴 총격으로 추락, 승무원 5명과 부상병 3명 등 8명이 사망.
◆ 4월 7일 - 중부전선에서 북괴군은 한국군 초소에 8백여발의 곡사포, 기관포 등을 집중 포격, 진지가 파손 당했으나 인명피해는 없었다.
◆ 7월 28일 - 중서부 전선에서 침투해온 공비와 교전, 3명을 사살, 아군 2명 전사.
◆ 8월 17일 - 3명의 승무원이 탄 OH23미군 헬리콥터가 비행중 착오로 북괴 상공에 진입, 북괴군의 총격으로 격추됐다. 세 승무원은 부상한 채 북괴에 억류 되었다가 12월 3일, 판문점을 통해 송환됐다.
◆ 9월 14일 - 상오 10시쯤 비무장지대 유엔군 관할지역인 남방한계선 부근에서 침투해 온 북괴군의 매복기습을 받고 미군 4명이 피살, 권총과 상의를 빼앗겼다.
◆ 11월 2일 - 밤에는 짙은 안개를 타고 경북 울진군 북면에 8개조 1백 20명의 무장공비가 동해안을 따라 침투, 3일 아침 6시 반경 고수동 마을에 나타나 “주민등록증에 쓸 사진을 찍어준다” 고 하면서 약 40명의 부락민을 한곳에 모은 후 북괴를 찬양하며 노동당 입당서를 내놓고 지장을 찍도록 강요했다.

공비들은 주민들을 위협하는 수단으로 겁에 질려 달아나려던 한 주민을 부락민들이 보는 앞에서 대검으로 찌르고 돌로 머리를 쳐서 즉사케 했고, 위조지폐 수10만원을 주민들에게 주고 간 사건이 발생했다. “신고하면 죽인다” 는 위험에도 굴하지 않고 주민들은 공비가 떠난 직후 4갈래로 당국에 신고했다.

EC121 미 해군 정찰기 피추

4월 15일 하오 2시 청진 앞바다 95마일 공해상에서 미 해군 정찰기 EC121기가 북괴의 공격을 받고 승무원 31명과 함께 격추되었다.

비무장한 미 정찰기에 대한 북괴의 대담한 도발은 전쟁 위기로 몰고 갔다.미국의 응전 여부에 세계의 이목이 집중 되었다. 이것은 미국에 도전하는 제 2의 푸에블로호 사건이었다.

미국은 엔터프라이즈호, 레인저호 등 4척의 항공모함 등 23척으로 특별 편성된 71기동함대를 동해로 보내는 한편 일본 기지로부터 팬텀기 3개 대대를 한국에 증파했다.

북괴가 다시 도발할 경우 즉각 보복할 것을 미국은 경고 했으나 아무런 응징도 보복도 하지 않았다. 닉슨 대통령은 무장 엄호를 하여 경찰 비행을 계속할 것만을 거듭 밝혔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메인페이지가 로드 됐습니다.
가장많이본 기사
뉴타TV 포토뉴스
연재코너  
오피니언  
지역뉴스
공지사항
동영상뉴스
손상윤의 나사랑과 정의를···
  • 서울특별시 노원구 동일로174길 7, 101호(서울시 노원구 공릉동 617-18 천호빌딩 101호)
  • 대표전화 : 02-978-4001
  • 팩스 : 02-978-8307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종민
  • 법인명 : 주식회사 뉴스타운
  • 제호 : 뉴스타운
  • 정기간행물 · 등록번호 : 서울 아 00010 호
  • 등록일 : 2005-08-08(창간일:2000-01-10)
  • 발행일 : 2000-01-10
  • 발행인/편집인 : 손윤희
  • 뉴스타운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뉴스타운. All rights reserved. mail to newstowncop@gmail.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