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양읍과 병곡면 경계 지점에 도덕바위가 있다. 유호인 선생이 즐겨 다니던 낚시터로 유명한 곳이다. 어느 날 이곳에서 두자 넘는 커다란 잉어를 낚은 유호인 선생은 “이렇게 좋은 생선을 내 어찌 사사로이 먹을 수 있으랴” 상감께 진상을 해야겠다. 선생은 띠풀로 망태기를 만들어 걸머지고 한양을 향했다
보름 동안을 걸어 한양에 당도하니 그는 망태기에 잉어는 생각도 못하고 한양의 화려함에 도취되어 있다가 인경을 알리는 종소리에 놀라 주막을 찾아 헤매이다 마주친 선비가 있었다.
“노형은 뉘신데 이 시각에 여기에서 헤매고 있소?”
“예 나는 함양 사는 유호인이라는 사람이요. 선비는 뉘신데 이렇게 헤맨단 말이요?”
“나는 한양 사는 이교리라는 사람이요.”
두 사람은 수 인사를 나누었다. 상감께 잉어를 상납하러 왔다는 유 선비의 이야기를 듣고있는 사람은 바로 민심을 살피러 나온 성종 임금이었다 임금인줄을 모른 채 한양 물정 몰라 이교리가 자기 집에서 재워 준다는 말에 따라가, 떡 벌어진 술상을 마주한 유 선비 놀라서 하는 말인즉,
“이것보시요. 이교리. 상감님의 덕택으로 미관말직에 있는 당신 같은 사람이 이렇게 호의호식하니 대신들은 말할 것도 없겠소. 왕을 기만하고 아래로 백성을 착취하니 참으로 한심하구려.” 화를 내며 일어서는 선비를 달래며 성종의 입가엔 미소가 흘렀으니 자초지종을 알고 난 유 선비는 얼굴을 못 들고 임금과 충성스런 백성의 허심 탄회한 하룻밤의 술자리는 알아 짐작하시라!
물론 나라에 부름을 받아 큰 일꾼으로 덕망을 쌓았으니 훗날에 왕과 선생은 군신의 의를 초월하여 친구의 정의를 변치 않은 채 지냈다. 선생이 벼슬을 그만두고 고향으로 돌아갈 때 대왕께서 친히 선생의 손을 잡고 술을 권하며 헤어짐의 아쉬움을 노래하니(있으렴 부디 같이 / 아니 가지 못할 소냐?/ 무던히 네 싫더냐?/ 누구 말을 들었느냐?/ 그래도 애달프구나/ 가는 뜻을 일러라/)
시의 흐름으로 보아 매우 애달픈 이별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후의 소식은 전하여 오는 이야기가 없다. 현재까지 학사루에 그의 시가 남아 있고 후학 가르치기에 힘을 썼다고 한다. 현실적으로 너무 거리가 먼 고리타분한 이야기일까. 한번 생각하여 봅시다.
할머니 소를 도둑질한 손자, 부모님의 재산이 탐나서 불효 막심한 짓도 서슴지 않는 자식이 있는가하면 어제까지 상관으로 모시던 분을 물고 뜯고 하는 오늘의 현실을 보며 복중 더운 날씨에 얼음 수박 한쪽먹는 시원한 청량제가 되었으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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