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의 린든 존슨 후보와 공화당의 배리 골드워터 후보가 맞붙은 1964년의 미국 대통령 선거는 전례가 드문 존슨의 압승으로 싱겁게 끝났다.
하지만 이 선거는 20세기 후반 미국 정치사에 한 획을 그은 것으로 평가된다. 미국 보수주의에 미친 영향 때문이다. 골드워터 후보의 참패가 초래한 충격 속에서 ‘새로운 보수주의’의 물결이 형성됐고, 그것이 결국 훗날 미국 정치의 지형(地形)을 바꾸어 놓았던 것이다.
당시 30대의 젊은 보수주의자 폴 웨이리치와 에드윈 풀너는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의 뉴딜 정책 이후 워싱턴을 지배하고 있던 민주당의 진보주의에 맞서기 위해 보수적인 학자들과 정책 연구자들을 모아 1973년 ‘헤리티지 재단’을 설립했다. ‘자유로운 기업 활동, 작은 정부, 개인의 자유, 전통적 미국 가치, 강한 국방’을 내건 헤리티지 재단은 사회보장의 민영화, 학교 선택권의 보장, 미사일 방어체계 등 새로운 정책을 잇달아 내놓으면서 정치권의 의제를 장악해 갔다.
이에 앞서 뉴욕에서는 1965년 한 무리의 좌파에서 전향한 지식인들이 ‘공공 이익(Public Interest)’이라는 계간 잡지를 창간했다. 어빙 크리스톨, 대니얼 벨, 패트릭 모이니헌, 네이선 글레이저 등 젊은 지식인들은 분배 우선, 문화 다원주의, 결과적 평등, 성적(性的) 자유, 급진적 사회개혁 등 당시 대학가와 지식인 사회를 휩쓸고 있던 사조(思潮)에 맞서 성장 우선, 미국 정체성의 유지, 기회의 균등, 가족의 옹호, 점진적 사회개량 등을 내걸었다. 소수 지식인 운동으로 시작된 이들의 활동은 점차 사회적 영향력을 더해가며 ‘신보수주의자(Neoconservatives)’라는 이름을 얻게 된다.
1980년 레이건이 대통령에 당선되고 1994년 중간 선거에서 뉴트 깅리치가 이끄는 공화당이 의회를 석권하면서 미국 정치의 시계추가 반세기 만에 오른쪽으로 기울게 된 배경에는 십수년 전 내지 20여년 전부터 시작된 젊은 보수주의 운동이 있었다. 오늘날 민주당 인사들은 보수적 싱크 탱크와 정치 잡지들이 설정해놓은 정치적 의제 안에서 움직일 수밖에 없는 답답함을 털어놓는다. 클린턴 전 대통령의 마지막 비서실장을 지낸 민주당의 중진 존 포데스타가 얼마전 ‘미국 진보 연구소(Center for American Progress)’를 설립한 것은 이에 맞서는 의제를 만들어낼 새롭고 강력한 진보 싱크 탱크의 필요성을 절감했기 때문이다.
1960년대 이후 산업화를 주도했던 소위 한국의 ‘주류(主流) 세력’은 잇달아 두 차례 대통령 선거에서 패배했다. 그 원인이야 여러 가지를 꼽을 수 있겠지만 그동안 우리 사회의 안팎에서 일어난 변화를 정확하게 인식, 거기에 걸맞은 정치적 의제를 만들어내는 데 실패한 것도 중요한 이유 중 하나다. 하지만 정치권의 보수 세력은 별로 이런 문제의식을 갖고 있는 것 같지 않다. 최근 한나라당에서 일어나고 있는 변화의 움직임도 얼굴이나 바꾸는 데 치중할 뿐 두뇌와 생각을 바꾸는 데는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결국 미국과 마찬가지로 한국의 ‘새롭고 젊은 보수주의’도 정치권 밖에서 만들어져야 할 것 같다. 개발독재 시대의 긍정적 유산을 계승하고 부정적 유산은 극복하면서 21세기에 알맞은 국가·사회 운영 원리를 만들어내는 일이야말로 이 시대 건강한 보수 지식인에게 부여된 과제다. 지리멸렬한 정치와 단기적인 선거에 관심을 기울이기보다는 더 근본적인 문제와 씨름하며 새 비전을 제시하는 젊은 보수 지식인들의 모습을 보고 싶다.
자유선진당에서 전략공천하던지 아니면 비례대표로 공천하던지 적극 활용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