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개월이 지나자 나에게도 외국인 친구들이 생겼다. 그리고 그 문화와 생활에 익숙해져가고 있었다. 월요일은 저녁에도 레스토랑에 아르바이트하고, 화요일은 무비데이로 평상시의 반가격에 영화를 볼수 있었다. 수요일은 교회에 케어그룹에 참가하고 목요일은 쇼핑데이로 밤늦게까지 상점들이 문을 열었다. 금요일은 파티나 펍에 가서 음료나 맥주를 마시며 춤을 추고 친구들을 만나곤 하였다. 토요일은 무조건 오후에 해변으로 나갔다. 에메랄드 빛에 바다를 바라보는 것만으로 행복했다. 일요일 열리는 패밍턴마켓에서는 신선한 과일을 싸게 살수 있었다.
잠깐 호주에서 사귄 친구들 소개하겠다. 유스호스텔에 머무를 때 같은 방을 섰던 영국인 친구 3명, 그중 한명은 중국계열로 어릴 때 영국으로 입양되었다고 한다. 3명 모두 시티부근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돈을 모았는데, 여행 경비가 좀 마련이 되면 브리즈번으로 떠날것이라고 했다. 그런식으로 호주전역을 여행할 것이라고 했다. 나로선 용감한 그들이 부러웠다. 대부분 부모님이 주신 용돈으로 생활하는 한국인 친구들과는 대조되었다. 굉장히 독립적이고 진취적이여서 오랫동안 그들의 모습이 기억에 남았다.
여유로운 생활은 끝나고 가진돈이 거의 바닥을 드러냈을즈음, 오페어를 해보기로 마음먹었다. 내가 들어간 집은 로즈베이에 위치한 호화빌라로 유태인가족이었다. 골프장 주인인 아저씨와 아줌마 그리고 아들3명. 고등학생1명, 중학생1명, 초등학생 1명으로 구성되어, 나는 초등학생만 돌보고 하루 3시간 정도의 집안일을 도우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것은 착각이였다. 내가 감당할 일이 너무나 많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내 선임자인 일본인 여학생이 일주일간 일을 가르켜 주며, 설명을 해주었다. 정말 놀란 것이 하나하나 세부적인 것까지 다 일러주는 것이였다. 일본인의 철저한 인수인계를 경험하며, 이것이 바로 세계 경쟁력이 아닐까? 란 생각을 했다. 너무 많은 일을 내가 감당할수 있을지 겁이났다.
그녀가 떠나고 혼자 일을 하는데, 아기를 돌보고 거기에 필요한 집안을 돕는 개념이 아니라 식모의 개념이였다. 아침에 일어나 6개의 방을 청소하고 좀 쉴려고 하면 주인아줌마가 불러 이런저런 일을 시켰다. 빨래를 하고 오후에 저녁식사 준비를 하면 하루가 그냥 지나갔다. 결국 난 오래 버티지 못했다. 그때의 혹독한 경험은 다른일을 찾는데 도움이 되었다. 그리고 짧지만 그들의 문화를 직접 체혐해 볼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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