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문화계의 산실, 동광동 인쇄골목 지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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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문화계의 산실, 동광동 인쇄골목 지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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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라한 부산 문화계의 마지막 자존심

^^^▲ 골목인쇄골목
ⓒ 김대갑^^^
계절은 짱짱한 햇발이 내리치는 5월이었다. 친구와 나는 중구 동광동의 인쇄 골목에 있는 기획출판사로 접근하였다. 기획사가 있는 빌딩의 정문 앞에는 자동차 두 대가 주차하고 있었다. 그와 나는 기획사로 올라갔다. 우리가 문을 가볍게 두드리자 기획사 여사장님이 밝은 표정으로 문을 열어주었다.

"인쇄물은 어디에 있습니까?"

"옆 건물에 있는 인쇄소에 있으니까 안심해요."

"잘 나왔지요?"

"그럼, 잘 나왔지. 가만있자, 내가 샘플 좀 보여줄게."

여사장님은 잠시 내실로 들어가더니 깔끔하게 인쇄된 유인물을 가지고 왔다. 노란 갱지에 청타로 찍은 인쇄물은 우선 보기에도 산뜻했다. 먹물을 묻혀가며 등사기로 밀어서 나오던 조잡한 인쇄물과는 그 질이 현저하게 달랐다. 참 좋았다. 역시 돈 들인 보람이 있었다. 이 인쇄물을 내일 교내 행사에 뿌릴 생각을 하니 흐뭇하고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동료와 나는 서로를 쳐다보며 싱긋이 미소를 지었다. 우린 해냈어!

기자는 이 동광동 인쇄 골목을 지나갈 때마다, 그 시절의 일이 생겨나 한편으론 우습기도 하고 한편으론 씁쓸하기도 했다. 돈이 없어 등사기로 희미한 인쇄물을 만들다가 어렵사리 구한 돈으로 깔끔한 인쇄물을 만든 추억이 새로웠기 때문이다.

이 곳 동광동 인쇄골목은 약 200여 개의 인쇄 관련 업종들이 몰려있어 가히 전국 최대 규모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이다. 지하철 1호선 중앙동역에서 내려 동광동 방향으로 걸어가다가 40계단을 통해 올라가면, 좌우의 이면도로와 대청동의 서라벌호텔 뒤편, 300여m에 이르는 거리가 온통 인쇄업종으로 덮여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 골목인쇄 골목에 서서
ⓒ 김대갑^^^
이 인쇄골목에는 인쇄ㆍ출판ㆍ기획ㆍ재단ㆍ지업사 등 관련업종 200여 개소가 한곳에 모여 있으며, 부산전체의 경 인쇄 물량 50%를 처리하고 있을 정도로 그 규모가 엄청난 곳이다.

이 골목의 역사는 지난 1960년대 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신우정판과 동양정판 그리고 대청동 서라벌호텔 뒤편의 자문정판이 효시가 되어 인쇄소들이 하나둘씩 자리 잡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러던 것이 지난 1970년대 초부터 국제시장 대청동 입구와 옛 시청 주변에 있던 업소들이 전세가 싼 이곳으로 대거 이전해오면서 이 일대가 인쇄의 메카로 자리매김하게 된 것이다.

현재 이 지역에는 오랜 역사를 지닌 인쇄소와 부산 문화를 이끌고 있는 유명 출판사가 입주해 있으며, 그에 따른 부속 관련 업종들이 몰려있다. 이곳에서는 각종 인쇄관련용품의 판매와 더불어 옵셋, 마스트 인쇄와 기획, 제단, 제본까지 다양하고 수준 높은 제품이 신속하게 인쇄되고 있으며 가격도 타지역에 비해 저렴하여 중ㆍ소상인과 직장으로부터 아낌없는 사랑을 받고 있다.

^^^▲ 인쇄물막 나온 인쇄물
ⓒ 김대갑^^^
더군다나 요 몇 년 전에는 이 인쇄골목이 영화촬영지로 각광을 받기도 했다. 전지현이 당찬 여경으로 나왔던 <여친소>와 임권택 감독의 <하류인생> 등이 이 인쇄골목에서 몇 개의 장면을 찍기도 했다. 밤이 되면 이 인쇄골목이 조용하기도 하려니와, 인쇄골목을 홍보하려는 상인들의 협조로 영화촬영이 손쉽게 진행되기 때문이다.

특히 이 인쇄골목에는 부산 지성계의 맥을 이어가는 문예지를 출판하는 곳이 있는데, 그 수는 보잘 것이 없어도 그나마 몇 군데라도 있는 것이 눈물겨울 정도이다. 잘 팔리지도 않는 문예지를, 별다른 지원책도, 관심도 없는 지방의 문예지를 오늘도 고군분투하며 펴내고 있는 그 출판사의 노고에 그저 고개를 숙일 수밖에.

모든 것이 수도권에 몰려 있는 상황이다 보니, 사실 부산의 문예지는 형편없을 정도로 열악하다. 인구 400만의 도시 치고는 그 문화적 수혜가 너무 빈약한 것이다. 부산의 문화와 역사를 사랑하는 기자로서는 그저 안타까운 마음밖에 없다. 모쪼록 이 인쇄골목이 앞으로 특색 있는 문화의 거리로 거듭나서 초라한 부산 지성계의 활력소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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