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탐방] 1960년 대한민국 역사에는-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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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탐방] 1960년 대한민국 역사에는-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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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내 3분의 2선인 156석을 능가하는 민주당의 압승

민.참의원 총선

4.19 학생의 피로 인하여 12년간의 이승만 정권이 무너지고 이제 새로운 정치풍토를 마련하고 권력의 자리에 새 주인을 앉혀야 했다. 자유당이 무너지고 새로운 정권의 대두가 필연적으로 되었을 때 과거의 야당은 제각기 그들의 알량한 대여 투쟁 경력을 내세우는가 하면, 자유당에 의한 탄압이 그들에게만 가해졌던 것처럼 이것을 훈장처럼 과시하여 정권장악에 급급하였다.

어수선한 가운데 4대국회는 해산되고 과도정부는 제2공화국의 민의원과 참의원 선거를 7월 29일로 공고하였다. 내각책임제에 의한 정부수립이 시작되는 바탕인 국회의원 선거는 정권 장악에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만큼 국민의 관심도 관심이러니와 여당이 없는 여건하에서 시행되는 선거라는 점에서 각 정당은 기회를 놓칠세라 모든 수단을 강구하고 있었다.

민주당 압승

1960년 7월 29일, 4월혁명이후 3개월만에 치룬 총선거에서 ‘못살겠다 갈아보자’의 절실했던 구호를 내건 민주당이 156명, 혁신세력인 사회대중당 3명, 한국사회당 1명으로 원내 3분의 2선인 156석을 능가하는 민주당의 압승으로 나타났다.

윤보선 대통령 취임과 신.구파의 알력

제2공화국의 정부조직이 내각책임제로 방향을 잡게 되고 민주당의 집권이 확실해지자 누가 국무총리의 자리에 앉게 될 것인가가 국민들의 관심에 초점을 모으고 있었다. 이런 상황 아래서 압도적인 승리로 총선거를 치룬 민주당은 신.구파의 싸움이 시작되고 대통령 선출과 정부수립을위한 마당에 이르자 국회 내의 신. 구파의 알력은 그 도를 넘었다.

민의원과 참의원 의장단 선거에 고배를 마신 신파는 참모회의인 13인 위원회가 8월 8일 4시간동안 장면의원이 참석한 가운데 윤보선의원을 대통령에 장면의원을 국무총리에 옹립할 것을 재확인하고 무소속의원의 대부분이 국회 부의장 선거에서 구파측에 동조한 사실에 관심을 가지고 새로운 작전을 꾸몄다.

8월 12일 개시된 양원합동회의는 재석 259명(민의원 216명. 참의원 43명)의 의원이 투표하여 208표를 얻은 윤보선 의원이 대통령에 선출되었다.

제 2 공화국 탄생

7.29 총선거 이전의 3.15 부정선거 때부터 표면에 나타나기 시작한 민주당 신 . 구파간의 주도권 쟁탈전은 자유당이 엎어지고 내각책임제로 바뀌어지자 정권 쟁탈의 치열한 싸움으로 번졌다. 신파는 장면을 주축으로 하여 세력확장에 혈안이 되고 구파는 그들대로 윤보선을 중심으로 조직을 강화하고 정권쟁취에 광분하고 있었다.

이들의 표면화된 싸움은 최초로 7.29 총선의 입후보 공천에서 맞붙었다. 전국의 233개 민의원 선거구와 58명의 참의원에 대한 공천에서 각파는 제각기 자파의 후보에 대하여 공천획득에 당의 중진들까지도 발 벗고 나섰다. 결국 실력행사를 하는 한편 협상이 이룩되어 공천을 마치자 공천에서 떨어진 낙천자들도 민주당의 간판을 그대로 업고 나오는가 하면 혹은 무소속으로 출마, 당공천자들에 대항하는 곳이 전국 수십개 지역의 선거구에서 벌어져 민주당내의 난맥상을 드러내기 도 했다.

국회가 형성된 뒤에도 신. 구파는 각기 무소속과 중도파의 민주당의원을 자파로 끌어들이기 위한 공작을 치열하게 벌이는 한편 자파의 다수를 과시했다. 신. 구파가 혈안이 되어 세력강화를 치열하게 전개하는 까닭은 내각책임제에 임할 국무총리를 국회가 선출하는 거나 다름없는 까닭이다. 대통령의 지명에 따라 국회가 인준을 함으로써 국무총리가 선출되는 것이므로 실질적인 권한은 국회가 가졌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국회가 개원하자 윤보선, 김도현을 중심으로 구파의 세력은 그들의 절대적인 다수를 믿고서 신파와 결별하여 분당을 하기로 결정했다. 한편 표결에 앞서 무소속의 원내교섭단체인 민정구락부의 25명 의원들은 김도현과 장면에게 보낸 서한에 대하여 검토한 다음 김씨의 인준을 부결하기로 했다.

장면 내각 성립

8월 19일 아침부터 데모와 비라가 난무하는 가운데 장면박사가 의사당에 들어섰다. 이날 법정 가결 득표수는 재적 228명의 과반수인 115표였다. ‘가표 117표, 부표 107표, 기권 1표’로인준 가결선에서 겨우 2표라는 근소한 득표로 총리에 선출된 장면 박사는 ‘어는 한파에 치우치지 않도록 신. 구파와 무소속의 균형 있는 내각을 만들겠다’고 당선 제 1 성을 토했으나 장총리는 14개 부처 가운데 10개 부처를 거의 신파 일색으로 내각을 구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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