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AD FC 권아솔 일대기 ①] 평범한 학생이었던 권아솔, 일진에 맞서다
[ROAD FC 권아솔 일대기 ①] 평범한 학생이었던 권아솔, 일진에 맞서다
  • 고득용 기자
  • 승인 2019.05.01 11: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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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AD FC 역사상 최초의 제주도 대회에서 아시아 MMA 역대 최대 상금이 걸려있는 100만불 토너먼트 ‘ROAD TO A-SOL’ 최종전이 열린다. 100만불 토너먼트는 MMA의 중심을 아시아와 대한민국으로 돌리기 위한 정문홍 前대표의 글로벌 프로젝트. 전세계 지역 예선을 거쳐 본선에 진출한 16명의 파이터 중 만수르 바르나위(27, TEAM MAGNUM/TRISTAR GYM)가 권아솔(33, 팀 코리아MMA)의 상대로 살아남았다.

권아솔은 토너먼트 ‘끝판왕’으로 도전자가 누가 될지 지켜보며 기다려왔다. 이제 도전자가 결정돼 권아솔의 경기는 전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화려한 ROAD FC 챔피언의 모습인 권아솔. 그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2019년 5월 18일. 100만불 토너먼트 최종전을 기념해 권아솔의 과거부터 현재까지 모조리 파헤치도록 그의 일대기를 준비해봤다.

# FIRST ROUND : 평범한 학생이었던 권아솔, 일진에 맞서다

1986년 8월 22일은 권아솔이 이 세상에 태어난 날이다. 격투기를 넘어 대한민국 스포츠의 한 획을 긋고 있는 권아솔 인생의 시작이다.

끝판왕인 권아솔, 그의 어린 시절은 지금과 달랐다. 축구를 좋아하며 친구들과 같이 놀기를 좋아했고, 즐겁게 수다 떠는 것도 좋아하는 등 여느 아이들과 다르지 않았다. 공부는 잘할 때도 있었고, 못할 때도 있는 평범한 학생. 그게 바로 권아솔이었다.

가정환경은 권아솔이 학업에만 집중하기엔 다소 힘들었다. 그가 어렸을 때 부모님은 이혼해 따로 살았다. 권아솔은 친동생과 함께 중학교 시절까지 할아버지, 할머니 손에 컸다. 집에 의존하지 않으려 친구 집에서 먹고 자는 경우도 잦았다.

“정확히 기억은 안 나는데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이 따로 사셨다. 중학교 때까지 할머니 손에 자랐다. 아버지 따로 어머니 따로 살고, 나랑 동생이랑 할머니, 할아버지는 같이 살았다.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신 후에는 할머니, 동생과 함께 셋이 살았다. 할머니가 우리를 아들처럼 보듬어주셨는데, 나는 동생보다는 나이가 있으니 의존을 안 하려고 했다. 그래서 친구 집에서 자고 밥 먹고 지냈다. 지금도 친구 부모님을 만나면 나를 좋아하신다. 어렸을 때부터 같이 지내서 짠하기도 하고, TV에 나오면 대견해 하신다”

"할머니는 권아솔이 군 복무를 할 때 세상을 떠났는데, 당시에 대해 권아솔은 “할머니가 돌아가셔서 생전 처음 군대에서 통곡하며 울었다”며 슬퍼했다.

중학교에 올라가면서부터 권아솔은 ‘싸움’을 하게 됐다. 정확히 말하자면 본인이 맞는 거였다. 남자들의 세계에서 초등학교와 달리 중학교부터는 ‘서열’이라는 게 존재한다. 일반화 시키면 안 되겠지만, 혈기 왕성한 시절에 남자들끼리의 자존심 대결은 흔히 볼 수 있는 것이다.

그게 권아솔을 맞게 했다. 그때의 권아솔은 싸우기보다는 맞는 경우가 많았다고···

“중학교 때는 몸이 왜소했다. 애들한테 까부는 스타일이었는데, 싸움은 못했다. 끝까지 덤비긴 했다.”

고등학교 시절부터는 독한 마음을 먹었다. 그리고 그 마음가짐은 권아솔을 변화시켰다. 일방적으로 맞는 게 아니라 ‘싸움’을 하게 됐고, ‘일진’들에 맞서기에 이르렀다.

“‘고등학교에 올라가면 절대 맞지 말아야지’라는 생각을 했다. 그 마음가짐 하나로 생활하다보니까 한 명, 두 명씩 나와 싸우는 사람이 많아졌다. 남자들 사이에서는 서열이 존재하지 않나. 어쩔 수 없이 싸우게 되고, 일진들이랑도 싸웠다. 지면 안 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 SECOND ROUND :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시작한 격투기

고등학교에서 싸움을 많이 하던 권아솔은 2학년 때 ‘무규칙 격투기’라는 것에 관심을 가졌다. 한 학년 후배가 먼저 배우면서 ‘무규칙 격투기’의 존재를 알게 된 것이 시발점이었다. 학생이라 돈이 없었던 권아솔은 일용직을 하면서 돈을 벌어 체육관에 등록해 격투기를 처음 배우기 시작했다.

“학업 스트레스가 심해서 운동을 하고 싶었는데 돈이 없어서 바로 시작은 못했다. 고3 1월 1일에 시작하자는 생각으로 일용직으로 돈을 모아서 체육관에 갔다. 지금의 MMA가 아니라 그냥 싸움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처음에는 취미로 했었다” 격투기를 시작한 당시를 회상하는 권아솔의 말이다.

운동을 배우면서 권아솔은 샌드백과 미트를 치며 스트레스를 풀었다. 그렇게 조금씩 격투기를 배우던 중 4개월 만에 아마추어 시합에 나가 상대와 싸우는 경험을 하게 된다.

권아솔이 나간 대회는 KPW라는 아마추어 대회. 아마추어 시합임에도 오픈 핑거 글러브를 착용하는 대회였다. 수많은 참가자들이 출전한 대회에서 권아솔은 패배의 쓴맛을 봤다. 격투기를 배운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기에 당연한 일이었다.

권아솔은 “운동을 배운지 4개월 만에 KPW라는 아마추어 대회에 출전했다. 그때는 아마추어 대회도 오픈 핑거 글러브 끼고 시합을 했다. -75kg 이하로 나갔었는데 그 체급에 워낙 사람이 많다보니까 바로 1회전에서 떨어졌다. 그때는 그라운드 기술도 잘 몰랐다. 길로틴 초크로 졌다. 난타전을 하면서 때리긴 했는데, 어떻게 했는지 기억이 잘 안 난다.”며 첫 출전한 아마추어 대회의 추억을 떠올렸다.

당시 권아솔은 격투기 수련을 부모님께 알리지 않았다. 주말에 열리는 대회라 야자 (야간 자율학습) 때문에 학교에 얘기를 했지만, 보내주지 않아 마음대로 출전했다.

“그때는 일요일 날도 학교에서 야자를 했다. 선생님께 말씀 드렸는데, 가지 말라고 하셔서 ‘될 대로 돼라’는 마음으로 그냥 갔다. 그때는 공부를 열심히 할 때니까 반항심이라기보다는 ‘선생님이 이런 것도 안 보내주네’하고 갔다. 나는 하고 싶은 건 어떻게든 하는 스타일이라서 부모님께 말씀도 안 드리고 몰래 격투기를 했다”

격투기를 수련하며 고등학교를 다니던 권아솔은 대학교를 해외로 가게 된다. 이전부터 유학을 갈 생각보다는 우연한 기회를 잡게 돼 유학을 선택하게 됐다.

권아솔은 “일본 대학교가 우리 학교와 자매결연이 맺어져 있었다. 입시 설명회를 하는데 그 학교가 국제학교라서 일본 학생 반, 외국 학생 반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때는 글로벌이 굉장히 유행해서 외국 학생들이랑 어울리는 게 멋있어 보이고 세계화에 발맞춰서 ‘나도 외국 학생들이랑 놀아봐야겠다’ 생각하고 선택하게 됐다. 대학교가면 노는 거라고 생각하고 가게 됐다.”라며 유학을 하게 된 계기를 설명했다.

본인의 말대로 대학을 다니며 권아솔은 공부를 하기 보다는 노느라 바빴다. 전공인 경영학 수업은 잘 듣지 않고, 종합격투기 동아리에서 격투기 공부에 매진했다.

“대학교 가서는 공부를 하나도 안 했다. 수업 가서 자고, 자다가 수업 못가는 경우도 있어서 F도 많이 받았다. 그때 당시 일본에는 종합격투기 동아리와 유도 동아리가 있었다. 공부 안 하고 동아리에 종합격투기를 배우러 다녔다.”

전공 공부보다 종합격투기에 매달린 권아솔은 학교에서 열린 격투기 시합 이벤트에 참가하기도 했다. 큐슈 지역 유도 선수 출신의 종합격투기 선수가 있었는데, 그 선수와 많은 학생들이 보는 앞에서 경기 했다. 당시의 결과는 1라운드 KO. 권아솔의 승리였다.

대학을 다니던 권아솔은 이외에도 수많은 시합에 출전했다. 방학 때면 아마추어 시합에 나갈 수 있는 모든 대회에 출전했다.

“방학 때 아마추어 모든 대회를 다 나갔다. 준우승을 할 때도 있었고, 2개월의 방학 기간 동안 2주에 한 번씩 시합을 네 번 나가기도 했다.”

# THIRD ROUND : 초창기 때부터 드러난 악동 기질

일본에서도 격투기를 좋아하던 권아솔은 학교를 휴학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종합격투기 선수 생활을 시작하기 위해서였다. 그때 ‘Go 슈퍼코리안2’라는 격투기 오디션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권아솔은 그 프로그램 참가 계기로 선수 생활이라는 걸 결심하게 됐다.

“프로그램이 제작된다고 출연 제안이 와서 학교를 휴학하고 출연하게 됐다. 8강인지, 4강인지까지 올라갔는데, 경기를 앞두고 코뼈가 부러졌다. 나는 출전하겠다고 했는데, 제작진은 안 된다고 해서 나에게 진 선수가 대신 출전했다. 그때부터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Go 슈퍼코리안 2’ 출연으로 권아솔은 단번에 격투기 업계에서 화제가 됐다. ‘복싱 레전드’ 지인진과의 스파링에서 노가드 도발을 했기 때문. 권아솔은 스파링 도중 노가드로 도발하는 패기를 보이며 모두를 깜짝 놀라게 했다.

노가드 도발에 대해 권아솔은 “의도된 건 아니었고, 체육관 후배들이랑 (스파링을 하면) 노가드를 많이 했다. 습관처럼 나왔던 거 같다. 그래서 욕을 많이 먹었다. 그때 인터뷰할 때 불만있으면 찾아오라고 많이 했다.”고 말했다.

‘Go 슈퍼코리안’이라는 방송이 제작되기는 했지만 권아솔이 격투기를 시작할 당시는 안 좋은 인식이 많았다. 그럼에도 권아솔은 격투기 선수가 되기로 결심, 꾸준히 선수 생활을 하며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격투기 스타로 자리매김 하고 있다.

“내 안에 항상 분노가 있었던 거 같다. 그런 게 시합 때 나오고 스파링 하면서 맞고 때리면서 분노를 해소했던 거 같다” 격투기 선수 생활 결심에 대한 권아솔의 말이다.

권아솔의 분노를 잘 표현해주는 경기는 2010년 열린 일본 GRACHAN 대회다. 당시 권아솔은 관중들에게 손가락 욕을 하는 등 거침없었다.

“일본 무대고 하와이 선수랑 대결했다. 하와이 미군 부대 사람들이 관중으로 왔는데, 나는 진짜 로블로를 맞았는데, 야유하고 난리가 났었다. 미군 부대 애들이랑 일본 사람들 입장에서는 내가 적이니까 야유를 했다. 짜증나니까 손가락 욕을 했다. 열 받아서 본능적으로 했다. 내가 원래 언더독 같은 걸 즐기는 스타일이다.”

권아솔의 이런 돌발 행동과 트래쉬 토크는 멈추지 않았다. 오래전부터 해왔기에 욕도 오랜 기간 먹었다.

권아솔은 “운동하는 사람들이 착하기도 하고 사람들 앞에서 말하는 것도 조심스럽게 하는 경향이 있다. 무도인이니까. 다른 선수들은 워낙 조용하게 말하니까 내가 조금만 솔직하게 얘기를 해도 독설인 것처럼 들린다. 그렇게 점점 하다보니까 독설이 되고, 정도가 올라갔다. 처음에는 짜증나고 누군지 알고 싶기도 하고 그랬다. 나중에는 포기하게 되고, 해탈하게 되고, 좋게 받아들이게 됐다. 맞는 말도 있으니까. 좋게 생각하게 되더라.”며 트래쉬토크에 대해 말했다.

팬들은 ‘한국의 맥그리거’라며 권아솔을 표현하기도 한다. 권아솔은 이 의견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

“아일랜드 사람들 성향이 호전적이고 하니까 그렇게 해도 나라의 대표 영웅이 된다. 반면 내가 욕하면 개XX이 되는 거다. 문화의 차이라고 생각한다.”

격투기 선수 생활은 과거부터 쉽지 않은 도전이었다. 파이트머니도 많지 않고, 국내에는 뛸 단체도 마땅치 않아 해외 시합을 전전하던 것도 일상이었다.

“나는 그때 알바를 안했다. 알바는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집에 돈이 많아서 그런 게 아니라 체육관에서 먹고 자면 돈 쓸 일이 별로 없다. 대학교 다닐 때 방학이라 한국에 오면 집에 거의 안 들어갔다. 체육관에서 먹고, 자고, 겨울에도 난로 하나 틀어놓고 소파에서 자고. 밥도 관장님이 주시면 먹고, 안 주면 안 먹고 그렇게 지냈다. 운동 끝나면 체육관 형들이 짠하니까 라면 사주고, 슈퍼 데려가서 먹을 거 사주니까 그렇게 살았다.”

# EXTRA ROUND : DMZ 수색하다 대전차 지뢰 밟다

선수 생활을 하던 중 권아솔은 대한민국 남자라면 누구나 이행해야하는 국방의 의무로 인해 군대에 입대한다. 다소 늦은 나이인 26살에 갔는데, 육군 수색대 GP로 가면서 쉽지 않은 군생활을 했다.

훈련소부터 권아솔은 남달랐다. 운동을 했기에 뛰어난 신체는 물론, 근성까지 갖췄다. 한 예로 실수로 외부에서 가져온 물품을 소대장에게 걸린 적이 있어 ‘앉았다 있어났다’를 1000개까지 했다. 아무리 운동을 한 사람이라도 1000개는 어려운 일. 그럼에도 권아솔은 독기를 품고 끝까지 해냈다.

권아솔은 “어릴 때부터 그건 많이 했다. 자신은 있었다. 그렇게 많이 시킬 줄은 몰랐는데, 오기로 했던 거 같다”며 웃었다.

훈련소에서 눈에 띤 권아솔은 GP에 들어갈 인원으로도 뽑혔다. “GP는 우울증도 많이 오고, 수류탄도 터트리는 사고도 나서 정신상태가 온전한 사람만 뽑는다. 훈련소에서 괜찮은 훈련병들을 뽑아가려고 했는데, 그때 선택 받아서 가게 됐다.”

권아솔이 군생활을 한 GP는 비무장지대에 지내기에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는 곳이다. 위험한 곳에서의 생활에 대해 압박감을 받지 않았을까.

“거기 살다보면 긴장이 안 된다”며 운을 뗀 권아솔은 “지뢰에 올라가본 적도 있다. 물건이 지뢰구역으로 넘어가서 갔는데, 대전차 지뢰를 밟았다. 대전차 지뢰는 어느 정도 무게가 있어야 터진다. 다행히 안 터졌는데, 잘못하면 죽을 뻔했다. 군생활의 절반을 GP에서 지냈는데, 계속 살다보니까 긴장되지는 않더라.”

2편에서 계속...

[굽네몰 ROAD FC 053 제주 / 5월 18일 제주 한라체육관]

[100만불 토너먼트 최종전 권아솔 VS 만수르 바르나위]

[무제한급 아오르꺼러 VS 제롬 르 밴너]

[라이트급 하야시 타모츠 VS 신동국]

[-90kg 계약체중 임동환 VS 김태인]

[페더급 박형근 VS 양지호]

[굽네몰 ROAD FC YOUNG GUNS 42 제주 / 5월 18일 제주 한라체육관]

[밴텀급 박석한 VS 쿠보 켄타]

[플라이급 고기원 VS 황창환]

[웰터급 윤태영 VS 임병하]

[밴텀급 양희조 VS 로웬 필거]

[-68kg 계약체중 신지승 VS 지영민]

[굽네몰 ROAD FC 054 / 6월 15일 원주 종합체육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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