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수근 사건"을 주제로 다룬 영화 "이중간첩" | ||
이수근 이야기
이완용이 친일파의 상징으로 통하는 것처럼, 이수근(45)은 위장간첩의 상징이었다. 그는 1967.3.22 총성과 함께 판문점으로 내려와 한때 여교수와 결혼도 하고 애국자로서의 대우를 잘 받았다.
그는 중앙정보부의 감사를 받으면서 수많은 곳에 다니며 멸공강연을 하다가 북한에 두고 온 전처의 조카 배경옥(27)과 함께 월남을 거쳐 캄보디아로 도망하다가 사이공 공항에서 극적으로 잡혀와 1969.7.2일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이수근은 간첩이 아니었다”: 조갑제
그 후 모든 국민은 이수근을 위장간첩으로 불렀지만, 조갑제는 “이수근은 간첩이 아니었다”라는 제목의 글을 1989년 월간조선 3월호에 실었다. 이수근은 “북도 남도 다 싫어서 스위스 등으로 나가려고 도망쳤을 뿐이다”라는 결론을 낸 것이다.
이 글을 근거로 하여 2005년5월 당시 이수근 사건으로 무기 징역을 선고받고 21년 복역한 후 출소한 배경옥이 서울중앙지법에 재심을 청구했고, 이번 12월19일 ‘과거사위’는 ”이수근은 위장간첩이 아니었다“고 최종 판정했다,
[한겨레] “1969년 일어난 위장간첩 ‘이수근 사건’으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던 이수근씨의 조카 배경옥(67)씨가 “이모부는 간첩이 아니었다”며 서울중앙지법에 재심을 청구했다고 19일 밝혔다. 배씨는 청구서에서 조갑제 기자가 쓴 ‘이수근은 간첩이 아니었다’는 1989년 3월 <월간조선> 기사에 인용한 김형욱, 중앙정보부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해볼 때, 이수근씨는 북한의 이중간첩으로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위장간첩은 조작된 것이었나?
조갑제 기자가 문제의 글을 쓴 근거는 당시 월남 공사로 있던 이대용 준장(예)의 말 한마디에서 출발했다. 조기자는 1986.1.8일에 이대용 전 공사를 만났고, 이 대용 공사는 옛날의 수첩을 뒤적이면서 17년 전의 기억을 더듬어 이야기 해 주었다 한다. 이대용 공사는 무슨 근거로 그런 말("이수근은 위장간첩 아니다")을 했을까?
조기자의 글에 의하면 이수근이 1969.1.31 오전에 월남 탄소누트 공항에서 붙잡혀 그날 밤 11:55분 C-54로 수송하기 전까지 12시간 동안, 이수근이 정보부 요원에게 하소연하는 말을 옆에서 들은 후 혼자서 얻은 결론이라 했다. 이것이 과연 결정적인 증거능력이 있다는 것인가?
조기자는 또 당시의 이수근과 관계했던 몇 사람의 의견을 물었다. 하지만 그들이 대답해준 의견은 결정적인 증거능력이 될 수 없어 보였다. 심지어 미국 정보기관이라는 거창한 기관명을 댔지만 실제로 어떤 ‘미국인’을 만나 어떤 이야기를 나누었는지에 대해서도 명확하지가 않아 보였다.
조기자는 중앙정보부 감찰실장 방 모씨가 이수근 발밑에 대고 총을 쏘고, 못살게 굴고, 감시가 너무 심해서, 제3국으로 탈출하고 싶어 도망의 길을 택했다는 이대용 공사의 말을 인용하지만, 여기에는 의문이 있다. 실제로 이수근이 탈출했을 때, 만 2일간 중앙정보부는 그의 행방을 캄캄하게 모르고 있었다. 이수근의 말대로 감시가 철저했다면 이런 2일간의 공백이 있을 수 없다고 본다.
당시 이대용 공사는 중앙정보부 감찰실장인 방모씨가 이수근을 못살게 굴었다고 하지만, 필자는 중앙정보부 시절에 국정원에서 근무했다. 감찰실장이라는 직책을 가지고는 시스템 상, 이수근 같은 낱개 개인에게 접근하여 못살게 굴지는 못한다. 더구나 발밑에 총을 쏘았다는 이수근의 말을 여과없이 전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그럴 수가 없다.
더구나 이대용 공사의 판단과 조갑제 기자의 판단은 100% 증거능력이 없다. 이에 더해 이 두 사람의 판단력에도 문제가 있어 보인다.
예를 들어 조기자는 김재규가 박정희 전대통령을 살해 할 때, “우발적”으로 저지른 사고라고 주장한다. 이렇게 단정하는 근거를 그는 심수봉과 신 모 여인을 박선홍이 끈을 달아 감시하지 않고 금일봉을 주어 그대로 보내주었다는 것을 들고 있다. 사전에 계획한 사건이라면 치밀한 계획을 세워 두 여인을 방류하지 않고 통제했어야 했다는 것이 조기자의 주장이다.
그러나 이는 중정의 사정을 모로고 하는 말이다. 박선홍은 머리가 좋았기 때문에 그녀들을 놓아준 것이다. 그녀들은 그냥 방류하더라도 일국의 중앙정보부장이 대통령을 시해했다는 말을 언감생신 발설하지 못한다. 만일 이 여인들을 안가에라도 가두면 이는 그 자체로 골치아픈 뉴스로 번지게 된다.
박선홍은 김재규의 거사계획을 전혀 알지 못했다. 대통령 시해계획은 김재규 혼자서 계획한 것이지, 부하들과 계획한 것이 아니다. 박선홍이 거사 계획을 몰랐다 해서 김재규가 거사를 계획적으로 하지 않았다는 논리는 매우 싱거운 논리다.
이런 판단력에 의해 우리는 ‘위장간첩’의 상징인 이수근을 위장간첩이 아니라고 인정할 수 없다. 더구나 조기자가 쓴 문제의 글이 배경옥에 의해 재심의 근거로 이용되었다는 사실과, 또한 이번 과거사위에서 “이수근은 위장간첩이 아니었다”는 판정을 내리게 된 근거 자료로. 조기자의 무책임한 글을 이용됐다는 사실은 불쾌한 일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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