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고서면(광주지방법원, 5.18영상고발)
참고서면(광주지방법원, 5.18영상고발)
  • 지만원 박사
  • 승인 2018.10.23 12: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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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서면

사건 2017가합55683 손해배상(기) 등
원고 : (재)5.18기념재단 외 8
피고 : 지만원
위 사건에 관하여 피고 소송대리인은 다음과 같이 참고서면을 제출합니다.

다 음

1. 서론

원고 박남선은 2017. 7. 7.에는 광주지방법원에 출석하여 당사자본인으로 진술헸고, 2018. 6. 21.에는 서울지방법원에 출석하여 고소인으로서 증언을 하였습니다. 원고들 소송대리인들은 5.18이 벌써 38년이나 경과하여 관련자들의 기억이 감퇴하였기 때문에 위 원고의 최근 증언이나 당사자본인신문 결과는 믿을 수 없는 부분이 많을 수 밖에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피고 소송대리인은 2018. 9. 5. 귀원에 을25호증의 1, 2로 전교사 계엄보통군법회의 검찰부가 작성한 원고 박남선에 대한 피의자신문조서들을 증거로 제출한 바 있고, 위 피의자신문조서는 5.18 사건의 직후인 1980. 8. 18.경에 작성된 것이어서, 그가 고의로 허위진술을 하지 않았다면 믿을 수 있는 자료라고 볼 수 있습니다.

피고 측은 위 원고의 진술을 믿을 수 없는 자료를 귀원에 자세히 밝혔으나, 위 피의자신문조서에 의한 탄핵자료는 제출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를 뒤늦게나마 참고서면으로 밝히고자 합니다.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 단독부는 위 서증 등에 비추어 증인 박남선을 비롯한 몇몇 증인들의 증언이 부실했다는 이유로 이들에 대한 직권신문을 다시 하려고 소환했습니다. 

2. 원고 박남선의 신분에 관한 진술

원고 박남선은 1954. 9. 18.생으로 중학교 2년을 중퇴하였고(을25호증의 2 제3쪽 제12행) 1973. 12. 8.에는 절도죄로 징역 8원의 집행유예를, 1979. 8.경에는 협박죄로 벌금 5만원을 선고받은 바 있습니다(을25호증의 1 제1쪽 하단). 위 원고는 위 피의자신문조서에서도 자신의 직업을 운수업이라고 진술하였습니다.

3. 원고 박남선의 활동 내역에 대하여

(1) 원고 박남선은 위 증언과 당사자본인신문에서 자신이 시위대 총사령관이었고, 1980. 5. 21. 상황을 모두를 자기가 지휘했으며, 그날로부터 전남도청에 상황실을 차리고 자기가 시위상황을 총 지휘했고, 광주 현장 사진들에 등장한 주역들을 모두 자기가 지휘했다고 자랑을 했습니다. 그러나 위 피의자신문조서의 기재에 의하면 위 주장을 인정할만한 아무런 흔적이 없습니다. 또한 위 원고는 제71광수 사진이 자신의 사진이라고 주장하나 위 현장사진과 부합하는 기록도 전혀 없습니다.

(2) 위 원고의 진술기재에 의하면 그는 다음과 같은 활동을 한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① 그는 1980. 5. 20. 계림동, 산수동, 풍향동 등 소요의 핵심지역이 아닌 외곽지역에서 사람들과 어울려 “가두시위”를 했습니다(을25호증의1 제2쪽).

② 그는 5. 23. 14:00경부터 적십자병원에 있는 입관된 19구의 시체를 도청으로 운반하는 일에 동원되면서부터 같은 달 25.까지 시체를 도청으로부터 상무관으로 옮기는 일에 노력동원을 하였으며, 시체를 확인하러 오는 사람들을 안내하는 등의 일을 한 것에 불과했고, 그 때 상황실에는 5. 23. 저녁과 5. 24. 낮에 잠깐 잠깐 들어갔다가 나왔는데, 딩시에는 김화성이 상황실장인 것으로 알고 있었으며, 그 뒤로는 김화성이 자칭 총사령과, 작전본부장이라면서 도청 후문경계, 순찰조에 지시 등을 하였습니다(제3쪽).

③ 그는 5. 25. 시민학생수습위원회(위원장 김창길)의 부위원장 김종배의 제의로 상황실장을 맡기 시작했고(같은 제4쪽), 그 후로는 도청 정문 경비병을 배치, 교체시키는 일을 관장했으며, 무기회수 등의 일을 했으며(제3-4쪽), 도청에서 어린 학생 등을 상대로 산발적인 지시를 하였으며, 별 하는 일 없이 45구경 권총을 어깨에 차고 돌아다니면서 시체 입관하는 곳에 술을 사다주는 등의 일, 도청 앞에서 돌아다니는 차를 도청 안으로 들려놓기도 했으며, 하는 일 없이 총들고 다니는 사람에게서 총을 빼앗아 무기고에 갖다 주기도 했습니다(제4쪽).

⑤ 그는 5. 26. 9:00경 기 편성된 순찰대의 통제가 잘되지 않아서 기동질서반을 만들도록 지시했고, 같은 날 14:00경 이리하여 만들어진 기동타격대 6명에게 칼빈총을 지급했고, 15:00경 상황실에서 강도 신고를 받고 기동타격대에 순찰을 돌게 하였으며, 18:00 경 김창길 등이 자기들을 계엄군에 넘겨주려 한다는 이야기를 김종배로부터 듣고, 회의를 하는 부지사실로 들어가 권총으로 협박해 내 보냈습니다(제5-6쪽).

⑥ 그는 5. 27. 새벽 도청 2층 회의실에 있다가 “투항”하여 체포된 행적 밖에 남기지 못했습니다(제7쪽). 그가 지휘했다는 상황실은 “직원이 6명”(제8쪽)이라 진술하였습니다.

(3) 위 각 진술기재에 비추어 원고 박남선이 광주 민사법정과 서울 형사법정에서 진술한 내용들은 모두 허풍이 섞인 그 혼자만의 주장임을 알 수 있습니다. 위 허풍을 뒷받침할 아무런 자료가 없습니다. 따라서 위 원고의 주장은 배척되어야 합니다.

(4) 위 원고는 서울법정에 나와서는 자가가 무장 시민군 600명을 총 지휘했다고 허풍을 떨었지만 그의 유공자 등급은 최고 1급에서 최저 14급이 있는데 자기는 겨우 10급밖에 받지 못했다고 불평했습니다. 모든 공식기록에는 골재채취운전자로 기록돼 있고, 그가 도청에 들어온 날이 5. 25. 오후였다고 기록돼 있는데 그는 5. 21. 상황을 자기가 지휘했고, 자기가 계엄군을 전남도청에서 추방시켰다고 허풍을 떨었습니다.

(5) 원고들이 말하는 항쟁본부는 5. 25. 밤중에 형성됐고, 상황실이라는 존재는 이 때 처음으로 항쟁본부 예하조직으로 존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도 원고 박남선은 공식 수사기록과 5.18유공자 증언록에 반하는 허위주장들을 마구 쏟아냈습니다. 5. 25. 밤중에 탄생한 항쟁본부의 총사령관은 전남대 3년생 김종배였고, 위 원고는 상황실장이었습니다. 그는 제71광수가 가진 무전기로 전남도청 상황실과 통신하였다고 주장하지만 5. 24.에 전남도청에는 시민군 상황실이 없었습니다. 북한군이 장악하고 있었습니다. 항간에는 ‘시민군’이라는 단어가 많이 떠돌아다닙니다. 피고가 추적해 본 결과 광주사람들은 시민군을 형성한 적이 없습니다. 시민군이라는 어감에는 ‘펄펄 날아다니는 용병 급 시민부대’라는 의미기 들어 있습니다. 이 500-600명의 시민군을 놓고 광주사람들은 홍길동 같이 나는 ‘연고대생’이라 불렀습니다. ‘시민군’은 이제까지 광주사람들 사이에는 연고대생이라는 전설로 통합니다. 분명히 있었는데 안개처럼 한순간에 사라진 존재였습니다. 그 전설의 연고대생 시민군은 곧 북한특수군이었습니다.

(6) 광주시와 5.18단체가 이들을 찾는다는 광고를 내어도 나타나지 않았고, 이 사건 소송에 관한 보도가 거듭되었어도 아직 나타나지 않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이들이 남한 사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망월동에 묻힌 사망자들 중 지문에 의한 신분이 밝혀지지 않은 시체도 10여구나 되었습니다.

4. 제71광수 사진에 대하여

(1) 원고 박남선은 제71광수의 현장사진이 자기 사진인데 피고가 턱 부분을 황장엽과 비슷하게 깎아 합성한 것이라고 주장하였고(을26호증 제6쪽), 귀원의 종전 판결도 위 주장을 인용하였습니다.

(2) 그러나 위 원고는 위 사진이 왜 자기 사진이라는 것인지를 증명할 수 있는 원본사진을 내놓지 못했습니다. 무조건 위 사진의 제71광수는 자기인데 턱 부분을 황장엽 얼굴과 비슷하게 변조시켰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위 제71광수 사진은 1980. 5. 24.에 조선일보 사진DB에 등재되었고 지금까지 그대로 올라와 있습니다. 피고가 위 사진을 조작할 이유도 없고 조작할 기술도 없습니다.

(3) 위 원고는 5.18유공자증언록에서는 잠을 잘 때에도 워커를 벗어 본 적이 없다고 주장했지만 제71광수가 5. 24.에 신고 있던 신발은 감정 색 사제 단화입니다. 따라서 위 원고의 주장은 자신이 과거 출판물에서 주장한 사실과 전혀 다른 것입니다.

(4) 위 사진에 의하면 제71광수가 소지한 총은 무거운 M16유탄발사기입니다. 위 피의자신문조서 어디에도 위 원고가 이를 소지하고 다녔다는 진술은 없습니다. 또 이는 M16소총에 M203 유탄발사기를 결합하여 수류탄 정도의 폭발력을 가진 유탄을 최대 400m까지 발사할 수 있는 특수화기이며 훈련을 받은 사람만이 사용할 수 있는 무기입니다. 하지만 원고 박남선은 2017. 7. 7.자 광주법정의 원고본인신문에서 이 총기의 방아쇠와 조준용 부위들에 대해 전혀 설명하지 못했습니다. 무거운 무기를 그냥 가지고만 다녔다고 비상식적인 답변을 했습니다.

5. 결론

그러므로 원고 박남선의 청구는 기각되어야 합니다.

2018. 10. 22.
피고 소송대리인 변호사 김XX
광주지방법원 귀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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