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일을 업 삼는 히키고모리 정신병자들
반일을 업 삼는 히키고모리 정신병자들
  • 지만원 박사
  • 승인 2018.10.02 09: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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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강력 에프킬러로 녹여버려야 할 붉은 바퀴벌레 주사파 떼

▲ ⓒ뉴스타운

일본의 전철은 매우 비좁다. 일본 사람들로 가득한 전철 안은 적막이 흐를 만큼 조용하다. 전철 안에서 독서를 하지 않는 사람 거의 없다. 커피숍에서도 사람들은 독서를 한다. 육체는 무거운 살덩이가 움직이는 제한된 공간에 머물지만 독서는 영혼을 광활한 우주공간으로 인도한다. 독서 없는 인간은 이 세상에서 자가기 가장 잘났지만, 독서하는 사람은 겸손하다. 책 속에 스승이 있기 때문이다.

일본사람들은 참 예의가 바르다. 차를 타고 일본 농촌을 통과한 적이 있었다. 앞으로 전진하던 차량 행렬이 10분 정도 정차를 했다. 왜 차들이 주행하지 않느냐 동승자에 물었더니, 도시사람들이 농촌을 지날 때는 농기구 차량들이 다 지나갈 때까지 정차해서 예의를 갖춘다고 했다. 우리나라 사람들과 비교 한번 해보라.

10여 년 전, 일본에는 독서 없는 인간을 저주받아야 할 짐승으로 묘사한 책이 있었다. “지상에서의 마지막 가족”, 일본의 한 청년, 스스로를 암흑의 방에 가두고 어머니도 때리고, 아버지도 때려 병원에 보낸 후, 아버지 재산을 빼앗고, 아버지를 길거리로 내모는 히키고모리(자폐증환자)가 있었다. 그 한 인간이 한 가족을 파멸시키고야 만 것이다. 이 나라에는 이런 인간들이 권력을 잡고 별 흉측한 지랄들을 다 한다. 바로 주사파라는 인간 바퀴벌레들이다.

금이냐 옥이냐 업어 키우고, 이들에게 풍부한 생활 바탕을 마련해준 지금의 70대 이상의 아버지 할아버지들이 이들에 의해 어둠으로 내몰리고 있다. 아니 국민 모두가 어둠으로 내몰리고 있다. 이 붉은 바퀴벌레들이 대한민국을 “지상에서의 마지막 국가”로 파멸시키고 있는 것이다. 초강력 에프킬러로 녹여버려야 할 붉은 주사파들이 바로 한국에 사는 문명인들이 해야 할 일이다.

무식한 히키고모리 노무현 후예들

노무현 시대는 반일굿판의 시대였다. 반일굿판은 노무현이 빨갱이였기 때문에 벌인 것이다. 노무현이 빨갱이였다는 사실과 반일 굿판을 벌인 사실 사이에 무슨 연관이 있는가? 그가 쓴 자서전과 행적들을 보면 그의 머리 속에는 어릴 때 형성됐던 열등의식이 가득 차 있었다. 그래서 자기보다 잘나 보이는 사람들을 못 봐주고 공격했다. 강남 때리기, 서울대 때리기가 그 한 예였다. 이런 열등의식을 가진 사람들은 그 열등의식을 사회부정으로 분출하게 되고 사회부정 세력이 모인 곳이 빨갱이 집단인 것이다. 인격이 없는 소시오패스들.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하는 데 가장 좋은 도구는 이승만이 친일파를 가지고 건국을 했다는 주장을 내세우는 것이다. 반일 굿판은 곧 대한민국을 부정하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프로그램이었다. 빌어먹지도 못한 반일이라는 정신병, 반일병자가 곧 독서 없는 히키고모리들이다. 못나고 못 배운 데서 오는 열등의식이 반일병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지각이 없는 덩이들이 반일 종북 종교에 빠진다. 문명권에 나오면 열등의식을 느끼기 때문에 못난 것들끼리 똘똘 몽쳐진 집단이 주사파들이고 전라도 것들이다. 그래서 부자를 증오하고 배운 사람을 증오하고 잘난 일본인들을 증오하고 못난 북한을 좋아하는 것이다.

미개했던 부족국가 조선이 왜 잘났는가?

해방 이전까지 조선사람들은 일본사람들이 하라는 대로 피동적으로 움직였다. 하다못해 땅 임자들에게 등기부등본을 떼어주는 행정도 측량능력을 가진 일본인들이 해주었다. 서당 대신 학교를 만들어 현대적 학문을 가르쳤지만 그런 교육을 받는 조선인들은 극히 소수였다. 그러다가 갑자기 하늘에서 해방이라는 선물이 떨어졌다. 갑자기 국가를 새로 만들어야 했던 다급한 시대에 현대적 행정, 사법, 경찰, 군을 경영할 능력을 가진 인재가 어디 있었겠는가?

이승만의 눈에나 미군정의 눈에나 일본사람들로부터 교육받은 사람들밖에는 없었다. 일본사람들로부터 배운 사람들을 놓고 빨갱이들은 친일파라 부른다. 미친 것들, 문맹율이 85%였던 미개한 부족국가가 근대적 행정체계라고 갖추기 시작했던 때가 이승만 시절부터였다. 거짓말을 가장 증오했던 일본인들, 거짓말로 똘똘 뭉친 조선사람들을 거짓말 하지 말라고 가르쳤다.

8년 전, 명불허전이라는 프로에 나간 적이 있었다. 사회자인 정한용씨가 나에게 물었다. “일본에 먹힐만해서 먹혔다는 이 말씀이 무슨 뜻입니까?” 이에 필자는 그 말이 자연스럽게 들리지 않느냐고 되물었다. 정한용씨 얼굴 표정이 황당하다는 표정이었다.

이에 내가 “옛날의 일을 지금의 잣대로 판단하지 말아야 한다. 옛날에는 약육강식이 세계적인 대세였다. 일본은 먼저 외국문물을 받아들여 현대화를 위한 유신을 했는데 우리는 궁궐의 담장 안에서 서로가 서로를 질시하고 모함하는 대장금 문화로 날 가는 줄 모르지 않았느냐, 그런 잠자는 나라를 열강들이 가만 둘리 있느냐? 못난 행동을 일관하다가 당한 것을 놓고, 100년도 더 지난 지금 누워서 침 뱉기로 일본을 욕하고 있는 지금의 모습이 더욱 부끄러운 일 아니겠느냐” 여기까지 말했더니 그제야 수긍이 간다고 했다. 정한용씨는 역시 어른들과 대화를 많이 나눌 필요가 있다고도 했다.

일제를 초대한 주인공은 바로 변하기 싫어하던 조선인들

1900년 초에만 해도 조선은 외국의 눈에 한심하게 보였다. 1905년 7월 29일, 일본 총리 가쓰라 다로와 미국의 루즈벨트 대통령의 특사인 육군장관 W.H. 태프트 사이에 비밀협약이 맺어졌다. 미국이 필리핀을 개화시키는 대신 일본은 조선을 개화시키라는 것이었다. 조선은 현대적 행정과 사법제도를 운영할 능력이 없는 지역이라고 했다. 이것이 가쓰라-태프트 밀약이며, 이 밀약에 의해 1910년 을사보호조약이 강요됐다.

1900년대 초에 조선은 루즈벨트의 눈에도 자치능력이 없는 종족으로 보였고, 그래서 일본에 의한 개화 대상 리스트에 올랐던 것이다. 이렇게 기울어진 나라를 어느 조선 사람들이 구해낼 수 있겠는가? 개인들의 능력으로는 시스템의 붕괴를 막아낼 수 없다.

일제 치하, 일반 백성들에 직접적으로 강요된 최초의 개화는 상투를 자르고, 양반-상놈-노비의 계급을 타파하는 것이었다. 상투를 자르는 것도 유익한 일이었고, 계급제도를 타파한 것도 유익한 것이었지만, 계급으로부터 해방된 조선인들은 무엇이 달라졌는지도 의식하지 못했다. 상투가 뭐 그리 좋은 것이라고. 단지 상투가 잘렸다는 사실에 분노한 것이다.

개화로 대표되는 일제의 지배를 30년 이상 받아왔으면서도 1940년대 초, 조선 시대의 아버지들은 딸자식을 인간으로 취급하지 않았다. 여성은 가정에서 노예처럼 일만 했다. 어쩌다 공부를 하고 싶어 학교에 몰래 나가면 아버지가 찾아와 교실에서 딸자식의 머리채를 잡아 흔들면서 끌어내 남학생들이 보는 앞에서 책을 태우고 짐승처럼 폭행을 했다. 먹고 살 것이 없어 딸을 낳으면 엎어 죽이기까지 했다.

노동과 학대에 견디다 못한 어린 여성들은 개화된 도시를 향해 가출했다. 돈도 벌고 공부도 할 수 있다는 인신 매매단의 꼬임에 빠져 일본군 위안부로 직행한 여인들이 부지기수다. 일본을 감정적으로 미워하는 사람들은 일본 순사들이 가정에서 일하는 양가집 딸을 무조건 붙잡아다가 일본군 위안부로 넘긴 것으로 홍보해왔지만 이는 극히 일부의 현상이었고, 일반적인 사정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이 역사적 기록이다.

수십 개 나라를 상대로 오파상을 하는 어느 기업인이 이런 말을 했다. 외국을 많이 다녀서인지 말도 활달했다. “일본의 통치가 없었다면 조선은 아직도 조선일 것입니다. 조선왕조가 지금까지 지속됐다면 양반-상놈 계급을 스스로 없애버리지 못했을 것입니다. 인도는 영국의 지배를 받았지만 영국이 캐스트 신분제도를 없애주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까지도 그 망국적인 신분제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영국에 비해 일본은 조선인에게 좋은 일을 한 것 아닌가요? 조선 사람들에게 양반-상놈 제도를 스스로 혁파할 만큼의 개혁 능력이 있었다면 일본에 점령당하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이런 말을 한국사회에서 하면 몰매를 맞겠지만 저는 문제가 일본에 보다는 한국에 많다고 봅니다. 남을 비난하면 무슨 발전이 있습니까? 역사에서 배우려면 우리 스스로의 잘못을 먼저 돌아봐야 하는 게 아닙니까?”

미워하기 전, 일본의 배우는 방법부터 배워라

제조업과 무역업을 하는 국민들은 일본을 욕하거나 미워하지 않는다. 일본으로부터 너무 배울 게 많기 때문이다. 할 일 없는 놈들이 아무 것도 모르고 무조건 일본을 욕하는 것이다. 그래야 민족애가 있는 유식한 사람으로 보인다 생각하는 것이다. 세상 물정 모르는 인간들이 과거라는 얼음관 속에 스스로의 영혼을 가둔 채 일본이라면 무조건 증오만 하는 것이다. 80년 동안 미워해 오면서 우리에게 무슨 도움이 되었는가?

우리는 왕건이라는 드라마를 보았다. 6.25도 겪었다. 지난 수 천 년 동안 우리 민족이 동족상호간에 저질렀던 만행 중에는 일본인 이상으로 가혹했던 사례들이 과연 없었던가? 일본이 우리보다 야만적이냐 아니냐, 잘났느냐 못났느냐, 지금의 일본인과 지금의 한국인들을 보면 생생하게 알 수 있다. 그들은 지금도 우리보다 몇 배나 잘 살고 정직하고 세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예의범절과 신용을 지니고 있다. 만일 일본경제와 한국경제 사이에 만리장성을 쌓는다면 피해는 양국이 다 같이 보지만 우리의 피해가 훨씬 더 크다. 외국에 나가 일본사람을 욕하면 욕하는 우리가 따돌림을 당한다.

우리는 일본보다 빨리 발전하고 싶어 한다. 발전의 원동력은 창의력과 선진과학을 수용하는 자세다. 증오로부터는 절대로 창의력이 나오지 않는다. 우리가 지금부터라도 생각해야 할 것은 일본이 미국으로부터 배우는 방식을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일본인들이 우리보다 잘난 것 한 가지만 들어본다.

건강 약품 하나를 만들어도 동물을 상대로 실험을 한다. 인명은 그토록 중요한 것이다. 그런데 미국은 원자탄을 만들어 그 실험을 일본인들을 상대로 했다. 일본인들의 자존심이 얼마나 상했겠는가? 방사능이 무엇인가? 무서운 물질이다. 일본인들은 그 방사능을 자식에게 대물림을 하면서 무슨 생각을 했겠는가? 아마도 우리가 이렇게 당했다면 미국은 지금도 우리의 철천지원수일 것이다. 하지만 일본인들은 그 미움을 배움으로 승화시켰다. 일본인은 자기들보다 잘난 사람 앞에 무릎을 꿇는다. 이런 자세는 우리에겐 없다. 그들은 잘 난 미국인을 배우고, 배워서 이겨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한편으로는 폐허의 땅에서 잿더미를 쓸어내고 다른 한편으로는 부지런히 미국으로 건너가 공장 문 밖을 기웃거렸다. 그들보다 잘난 미국을 배우기 위해서였다. 미국인들은 그런 일본인들을 멸시했다. “일본인들은 죽었다 깨나도 미국을 따라올 수 없다. 문을 활짝 열고 다 보여줘라”

1957년 당시 덜레스 미국무장관이 수많은 일본 군중을 향해 미국의 우월감을 표현했다. “친애하는 일본국민 여러분! 일본은 기술면에서 영원히 미국과 경쟁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일본은 지금 세계 최고의 손수건과 훌륭한 파자마를 생산하고 있습니다. 왜 그런 것들을 미국에 수출하려 하지 않습니까?” 감히 미국을 흉내 내겠다며 공장 문을 기웃거리는 꼴 사나운 모습들을 멸시하는 연설문이었고, 1957년에 미국에 건너간 볼품없는 트랜지스터 라디오를 비웃는 말이었다.

당시 미국은 세계 GNP의 54%를 차지하고 있었다. 거의 모든 생산기지가 미국에 있었고, 세계의 신제품은 모두가 “MADE IN U.S.A”였다. 미국인들의 우월감은 바로 여기에서 기인했다. 그들은 미국에서 만들어지지 않은 모든 제품을 쓰레기로 멸시했다. 이를 NIH 증후군(Not Invented Here Syndrome)이라고 불렀다.

이러한 모욕을 무릅쓰고 일본인들은 미국으로부터 줄줄이 선생님들을 불러들였다. 1950년에는 그 유명한 데밍 박사를, 52년에는 쥬란 박사를, 54년에는 피겐바움 박사를 모셔다가 과학 경영, 시스템 경영, 통계학적 품질관리에 대해 눈을 떴다. 그리고 일본에 산업계의 노벨상인 데밍상(Deming prize)를 제정했다. 일본이 오늘날의 품질 1등 국으로 우뚝 솟은 데에는 미국인 스승 데밍 박사가 있었다는 것을 세계에 기념한 것이다. 반면 우리 자신들을 한번 뒤돌아보자. 우리는 지금 외국을 배척하는 속 좁은 국수주의에 젖어 있다. 우리라면 우리를 원자탄으로 죽인 원수의 나라 사람, 미국인을 스승으로 기념하여 산업계의 노벨상이라는 데밍상을 제정할 수 있겠는가?

미국을 배워서 미국을 따라잡는 나라

“미국을 모방하자”(Copy the West), “미국을 따라잡자”(Catch up with the West). 일본인들은 미국을 추월하려고 정열을 짜고 지혜를 짰다. 그리고 1980년대에는 드디어 일본이 생산기술과 품질관리에서 미국을 앞섰다. 그때부터는 한동안은 미국이 일본을 배우러 다녔다. 덜레스 미국무장관의 조롱 섞인 연설이 있은 이후 25년, 1982년에 승용차에 대한 미국인의 고객 만족도 조사에서 일본 승용차가 나란히 1,2,3위를 차지했다. 반면 미국 차는 겨우 7위를 차지했다. 미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차는 미국 차가 아니라 일본 차였던 것이다. 일에 몰두하고 따라잡는 모습이 아름답지 않은가? "일본 놈들"이 한 일이면 이런 것도 보기 흉한 것이라 할 것인가?

일본만 미워하는 게 아니라 최근에는 미국까지도 미워하는 사람 수가 늘고 있다. 잘난 사람을 못 봐주는 마음, 증오하는 마음이 우리에게 무엇을 가져다 줄 것인가? 나보다 잘 난 사람도 적이요, 우리보다 잘난 나라도 적이면 우리는 누구로부터 배우고 누구와 더불어 살아가야 한다는 것인가? 최근 우리 사회에 마쳐간다. TV는 아프리카와 북한을 많이 소개하고 선진국을 소개하지 않는다.

“우리민족끼리?” 외세를 미워하고 국제사회에서 생떼를 쓰면서 주민을 탄압하고 굶어 죽이는 북한과 손잡고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증오심을 부추기면 단합은 시킬 수 있어도 발전은 없다. 못난 사람끼리 어울리면 모두가 못나진다. 우리가 무서워해야 할 대상은 증오심을 배움으로 승화시켜 끝내는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한 일본사람들인 것이다.

우리는 일본의 배우는 방법을 배워야 할 것이다. 어제 우리가 무엇을 잘못했는가를 따지는 사람들은 어제의 잘못으로부터 지혜와 교훈을 이끌어 낸다. 그러나 어제의 잘못이 누구 때문에 발생했는가를 따지는 사람들은 어제의 잘못을 연년세세 반복할 것이다. 지금 이 나라 빨갱이들이 하는 일이 바로 이것이다. 적폐청산, 이것이 바로 김일성식 숙청작업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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