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대통령의 1819억원을 ‘국민의 이름으로’ 추징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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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대통령의 1819억원을 ‘국민의 이름으로’ 추징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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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전 대통령의 재산명시 심리재판에 부쳐

 
   
  전두환씨, 재산명시 심리재판 출두전두환 전 대통령이 재산명시 심리재판을 받기 위해 28일 오전 서울 마포 서울지법 서부지원에 출두하고 있다. 법원은 전씨측에게 재산목록 보정명령을 내렸다
ⓒ 연합뉴스
 
 

한국현대사의 가장 큰 불행 중 하나는 ‘성공한 대통령의 부재’이다. 이승만 대통령은 자유당의 부정선거로 인해 퇴출 당했고, 박정희 대통령은 아끼던 부하의 총탄에 쓰러졌다. 전두환 대통령은 퇴임 후 유배를 떠나야 했고, 노태우 대통령은 눈물을 흘리며 비자금 은닉죄를 빌어야 했다. 김영삼 대통령은 경제대란 IMF로 인해 부실경제의 주범으로 낙인 찍혔고, 김대중 대통령은 아들과 아태재단의 비리로 쓸쓸히 퇴장해야 했다.

이러한 사실은 권력의 유혹과 타협하지 않고, 정도(正道)가 아니면 가지 않는 정신이 얼마나 높은 경지의 성취인지 말해주고 있다.

성공한 대통령의 부재와 더불어 또 하나 한국현대사의 불행이 있다. 그것은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는 대통령이 없다’는 사실이다. ‘잘못을 인정하는 대통령의 부재’는 ‘성공한 대통령의 부재’보다 국민들을 더욱 실망하게 만든다. 끝까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정당성을 우기는 전직 대통령을 보노라면 ‘저런 사람들을 우리가 대통령으로 뽑았구나’하는 심정으로 씁쓸해진다.

한국사회에서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는 대통령을 보고 싶다’는 열망이 얼마나 큰 욕심인지 다시 한번 깨우쳐주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번 재판은 여론 재판” 전두환 씨 변호인 강력하게 반발

서울지법 서부지원에서 4월 28일 전두환 전 대통령의 재산명시 심리재판이 열렸다. 전씨의 법정 출두는 검찰이 지난 2월 서울지법 서부지원에 전씨의 재산목록을 제출하라는 재산명시 신청에 따라 이루어졌다. 오전 11시 30분 경 이양우 변호사와 함께 나타난 전씨는 기자들의 질문에 시종일관 굳은 표정으로 답하며, 경호원의 호위 속에 법정에 들어섰다.

이날 재판에 나선 신우진 판사는 전씨에게 재산목록 보정명령을 내렸다. 전씨측이 제출한 재산목록에는 예금 채권이 ‘고작 30여 만원’이라고 기재되어 있었다. 이밖에 기재된 전씨의 재산목록은 부동산, 골동품, 예술품, 악기, 사무기구, 기계류 등이었다.

이에 신 판사는 “재산은닉의 위험성과 개연성이 크다고 판단된다”면서 “유가증권, 부동산 등에 대한 추가 재산목록을 보정하는 한편 배우자, 직계가족, 형제자매 등 친인척에 대한 재산목록도 내달 26일까지 제출하라”고 명령했다.

심리재판이 끝난 후, 전씨측 이 변호사는 “이번 재판은 여론재판”이고 “채무자가 제3자에 대한 재산목록을 명시할 법적근거가 없다”면서 강하게 반발했다.

검찰은 97년 4월 추징금 2204억원이 확정된 전씨를 상대로 현시점까지 314억원을 추징했다. 이는 전체 추징금의 14.3%에 불과한 금액으로 전씨는 나머지 1819억원을 6년째 납부하지 않고있다.

”왜 측근들과 자식들은 추징금은 안 내주나” 판사의 질문에 전씨 오히려 “억울하다”고 대답

재판에 앞서 신 판사는 전씨측이 제출한 재산목록을 검토한 뒤 “예금채권이 30여 만원 정도만 기재돼 있고, 보유 현금은 하나도 없다고 나와 있는데 사실이냐”라고 물었다. 그러자 전씨는 “사실대로 적은 것”이라며 “본인 명의는 없다”고 대답했다.

“본의 명의가 아니라도 타인에게 명의신탁한 재산도 기재하도록 돼 있는데 명의신탁재산도 없는가”라고 신 판사가 재차 묻자 전씨는 “그렇다”고 답했다.

이에 신판사는 언성을 높이며 “그러면 도대체 채무자는 무슨 돈으로 골프 치러 다니고, 해외여행을 다니느냐”고 따져 물었다. 이에 전씨는 “내 나이 올해 72세”라면서 “그 동안 인연이 있는 사람과 자식들이 생활비를 도와준다”고 반박했다.

그러자 신 판사는 “그런데 왜 그 측근들과 자식들은 추징금은 안 내주나”라며 따지자 전씨는 “그 사람들도 겨우 생활할 정도라 추징금 낼 돈은 없다”고 대답했다.

전씨의 반박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재산목록에 불명확한 부분이 많다”고 언급하는 신 판사에게 전씨는 “검찰이 (추징금을 그토록 많이 추징한 것은) 정치자금을 인정하지 않고 포괄적 뇌물죄로 적용했기 때문이며 이를 억울하게 생각하고 있다”고 강한 불만을 드러냈다.

심리재판 중에 전씨측 이 변호사는 “이번 재판은 재산 목록을 심리하는 자리이지 채무변제와 연관된 주변 사실에 대해 묻는 자리가 아니다”, “추징금에 대해 돈이 없어 변제하지 못했다고 말한 적은 없다”면서 재판부에 항의하기도 했다.

검찰은 국민의 이름으로 전씨의 미납된 추징금 1819억원을 징수하라

로마시대 귀족들에서 비롯된 ‘노블리스 오블리제’란 말이 있다. 이 말의 뜻은 ‘귀족은 그 직책에 걸맞는 사회적, 도덕적 책임을 진다’는 뜻이다. 평상시에는 귀족이라는 계급적 특권을 가지지만, 이 정신에 따라 국가가 위기에 처했을 때 귀족들은 누구보다 먼저 위기 극복의 선봉장이 된다.

또한 비리를 저질렀을 때는 구차한 변명보다 명예로운 죽음을 택한다. 이러한 로마시대의 전통은 중세시대 유럽까지 전파되어 사회적 계급을 지탱하는 견고한 버팀목이 되었다.

법정에선 전씨를 보면서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정신을 생각해본다. 한국사회에서 특권을 누리는 사람들은 그들의 특권이 개인의 우수한 능력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착각한다. 그들이 높은 자리에 오른 사람으로서의 사회적, 도덕적 책임은 보이지 않는다.

전씨가 조금이라도 국민의 정서를 이해하고, 지난 날의 과오를 뉘우쳤다면 ‘고작 30만원’을 내밀지 못했을 것이다.

전씨를 보면서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치밀한 도주행각으로 경찰을 우롱했던 신창원이다. 물론 그는 잔인한 범죄자이고, 벌을 받아 마땅한 사람이다. 하지만 그의 야광 티셔츠보다 더 기억이 나는 것은 그가 도주행각을 벌이면서 썼다는 일기의 일부분이다. 그의 일기는 한국사회의 슬픈 자화상일 수밖에 없다. 신창원의 일기 중에 이런 부분이 있었다.

“큰 도둑은 잡지 않고, 잡아도 금방 풀려난다. 하지만 작은 도둑은 중형에 처해진다.”

정치인들은 흔히 중대한 발표를 할 때, 국민의 이름을 빌린다. ‘국민의 이름으로 선포합니다’는 식으로 말이다. 이제 그 흔하디 흔한 문구를 빌려 말하고 싶다. 검찰은 국민의 이름으로 전씨의 미납된 추징금 1819억원을 악착같이 징수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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