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주기로 시작한 적화 통일 드라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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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주기로 시작한 적화 통일 드라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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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기업에 북한 도우라는 압력 가했다

 
   
  ⓒ 뉴스타운  
 

1998년 2월에 대통령이 된 김대중, 햇볕 정책을 내걸고 가장 먼저 시작한 사업이 퍼주기 사업과 주한미군 철수 및 국보법 철폐였다.

지켜질 리 없는 금강산 독점 사업권을 명분으로 하여 9억 4천2백만 달러를 주기로 했고, 관광객이 몇 사람이든 상관 없이 매년 50만명이 간 것으로 하여 1인당 300달러씩 주기로 계약했고, 화장실에 한번 가는데 4달러씩 주기로 계약했다.

쌀과 비료는 북한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보냈고, 모든 기업에 북한을 도우라는 압력을 가했다.

쌍방울 메리야스에 압력을 넣어 내복 1천만 벌을 만들어 보내려다 500억 원어치의 내복을 보낸 시점에서 말썽이 나자 중단했다. 1999년 한해 동안 대기업들이 부담한 준조세는 업체 당 평균 745억 원이었다. 이는 기업들이 부담한 국세의 1.2배이며 지방세의 20배 규모에 해당하는 엄청난 액수였다.

1999년 10월 6일 현대가 20인치 칼라 TV 3만대를 북송했다. 445만 달러 어치였다. 1999년 8월 16일 대한제당이 연간 2만톤(60만 달러)씩 북한에 제공하도록 했고, 1999년 11월 27일 삼성도 북한에 172만 달러를 투자했다.

2000년 1월 25일 현대아산은 190만 달러 상당의 기와공장 설비를 반출했다. 2000년 2월 8,863평짜리 평양실내 체육관 준공식이 거행됐다. 3,420만 달러란다.

평화자동차 공장에 금강산 국제그룹 박보희 회장이 3억 달러를 투입했다.

2000년 3월 7일 삼성전자가 평양체육관용 전광판 시스템에 400만 달러를 투입했다. 2000년 3월 22일 삼성이 조선컴퓨터 소프트웨어 지원에 73만 달러를 부담했다.

2000년 3월 6일 축협에서 보낸 계란 1천만 개가 인천항을 출발했다. 새마을운동에서 곡물 1,660톤을 보냈다. 2000년 4월 12일 평화의 숲에서 묘목 20만 그루를 보냈다.

인도적 차원에서 이뤄진 지원은 99년 한 해에 4,688만 달러였다. 2000년 1.4분기에 순수 민간 조직이 보낸 대북지원액만 해도 56억 원이다.

이렇게 돈을 퍼다주면서 민 여인을 비롯한 수많은 관광객들이 온갖 수모를 감수해야 했고, 북한의 억지에 대해 정부는 언제나 북한 편을 들었다.

한국일보 기자는 "한국"이라는 낱말 때문에 H일보라는 명찰을, 대한매일은 "대한"이라는 글자 때문에 D일보라는 명찰을 달아야 했다. "한국"과 "대한"은 북한에서 용납될 수 없다는 것이다.

러시아에서 받을 차관 14.7억 달러를 북한에 주기로 협상하다가 말썽이 나자 중단했다.

2000년, 관광공사를 통해서 준 450억원을 주었고, 정부 예산을 가지고 공식적으로 지원해 준 돈은 1998년 5,600억원에서 지금은 1조 규모로 늘어났다.

김대중이 정부돈, 기업돈, 민간인 돈을 마구 퍼주는 분위기가 무르익자 2002년 1월 17일 중앙일보는 매년 북한에 1조 규모를 투자하여 북한 경제를 일으켜 주어야 한다고 대서 특필했다. 한국사회 전체가 퍼주기에 미쳤던 것이다.

평화선언 추진하려다 This man 소리 들어

김대중은 1999년 9월부터 홍위병들을 시켜, 노근리 문제, 매향리 사격장 문제, 미군기지의 독극물 방류 문제를 일으키게 했고, 주월한국군을 양민학살집단으로 매도케 함으로써 주한미군과 한국군을 비하하고, 군민 관계를 이간시키는 작전을 폈다. 이어서 국보법을 철폐시키려다 반발에 부딪쳤다.

6.15 공동성명서에 ‘낮은 단계의 연방제’를 포함시켜 불법을 자행했고, 한반도에 전쟁은 없다는 선동을 함과 동시에 휴전선에 매설된 지뢰를 2000년 12월말까지 무조건 제거하라 명하여 무리한 집행을 강요했다. 2001년 3월에 김정일을 서울에 끌어들여 평화선언을 하려다가 부시에게 불려가 ‘디스 맨’이라는 경멸적인 소리를 들으면서 혼쭐이 났다.

2001년 6월, 서해교전에서 혁혁한 승리를 이룩한 해군지휘관들을 제대시킴과 동시에 유엔군 교전규칙에 마음대로 손을 대 우리 군이 2002년 6월 29일 당할 수밖에 없도록 불리하게 고쳐놓았다. NLL이 너무 길으니 일부를 북한에 양보하라는 지시도 했다. 군에 1,000명 정도의 좌익이 활동하고 있다는 보고서를 쓴 기무사 염장군을 비행기 내에서 예편시켰다.

이러한 적화 통일 속도는 노무현에 들어와 더욱 기승을 부렸다. 사회 전체가 방송에 세뇌되고, 학생들이 전교조에 세뇌되어 자신들도 모르게 적화되어 갔다. 이러한 속도로 나간다면 한국은 불과 몇 년 안에 북한으로 흡수될 수밖에 없도록 치닫고 있었다.

9.11이 적화 통일 막아줬다

2001년 9.11 테러가 발생하기 전까지 북한은 미국에게 간접적인 적이었다. 남한을 공격하려는 북한에게 강력한 전쟁 억지력을 제공하는 간접적인 적대관계에 있었던 것이다. 전쟁억지력이란, 남침을 하는 것은 곧 미국과의 전쟁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미국이 무서워 남침할 마음을 감히 갖지 못하게 하는 힘이다.

그런데 9.11 테러를 당하면서 북한은 남한과는 무관하게 직접 미국의 적이 돼 버렸다. 북한이 가지고 있는 대량살상무기가 알카에다 등 테러리스트 손에 들어가면 미국은 엄청난 피해를 보게 되는 것이기 때문에 미국은 북한과 이란, 이라크를 한데 묶어 ‘악의축’으로 규정하면서 이들을 미국의 주적으로 규정했다.

옛날 우익 정부들은 북한의 야욕을 억지하기 위해 미국의 도움을 절실하게 필요로 했지만, 김대중과 노무현 정부는 북한이 제발 남한을 흡수해주기를 바라면서 미국의 참견을 배제하고, 미국을 배척해 왔다.

이러한 정부를 가진 한국, 미국이 한국정부의 뜻을 존중하여 한국에서 손을 뗀다면 곧장 김정일 치하로 통일될 차례에 있었다.

그러나 9.11 이후, 미국은 김정일이라는 주적에게 한국이라는 부자 나라를 넘겨줄 수가 없게 됐다. 9.11 테러가 미국으로 하여금 김정일의 멱살을 바짝 움켜쥐게 했으며, 김대중, 노무현의 내통행위를 경계하고 저지하는 계기를 마련해준 것이다. 북한이 미국의 주적으로 전환된 것은 한국의 운명을 구해준 결정적인 구세주인 것이다.

우리는 오래 전에 발생한 역사에 대해서는 이 사람 저 사람들의 시각을 통해 짐작들을 하고 있지만 지금 진행되고 있는 현재의 역사에 대해서는 인식 자체가 없는 것이다.

한국은 미국의 희생 위에 살고 있다

6.25는 김일성이 군사력을 가지고 적화 통일을 획책했던 '표시나는' 남침사건이었다. 이 때 전쟁으로부터 한국을 지켜준 존재가 바로 미국이었다.

그러나 지난 8년 반의 역사는 김대중-노무현 등의 좌파와 친북 세력을 통해 표시나지 않게 적화 통일을 획책했던 위장 통일 역사였다.

이런 위장 통일을 중단시켜준 존재 역시 미국이다. 미국에 9.11테러가 발생하지 않았다면 미국 역시 소리 없이 진행되는 좌파 세력의 위장 통일 전쟁을 눈치 채지 못했을 것이며, 간섭할 명분도 없었을 것이다. 9.11테러, 미국에겐 커다란 비극이었지만 한국에게는 비운을 막아준 은혜의 사건이었다.

미국은 태평양 전쟁에서 엄청난 희생을 치렀다. 일본이 태평양 전쟁을 일으키지 않았다면 한국은 지금까지도 해방되지 못했을지 모른다. 중국은 지금 몽고와 티베트를 사실상의 식민지로 다스리고 있다.

만일 중국이 미국을 상대로 전쟁을 하다가 패했다면 몽고와 티베트는 해방이 됐을 것이다. 한국이 해방된 것은 일본이 미국을 상대로 전쟁을 했다가 졌기 때문이다. 역설적이게도 한국의 해방은 미국의 희생 위에서 얻어진 것이다.

6.25 때 미국은 10만여 명의 희생을 치렀고, 그 희생 위에 오늘의 한국이 김일성 치하에서 벗어난 것이다.

9.11 테러에서 미국은 1만 여명의 희생을 치렀다. 9.11 테러가 없었다면 한국은 어마도 2-3년 전에 적화 통일 됐을 것이다. 9.11 테러에서 당한 미국의 희생 위에 한국이 구제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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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 2006-07-31 09:55:11
그래 이것이 현대식 적화 방법이다.
지박사 화이팅!!


나까무라 2006-07-31 11:27:48
지만원. 퍼주어서 망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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