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의 평화협정 주장은 미군철수를 겨냥한다
문재인의 평화협정 주장은 미군철수를 겨냥한다
  • 김동문 논설위원
  • 승인 2016.12.16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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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한 베트남의 역사를 되풀이해선 안된다

▲ ⓒ뉴스타운

패망월남과 대한민국은 일란성쌍둥이 반세기전(1966년) 필자는 “동족상잔의 전쟁으로 남북으로 갈라진 월남 땅에서 이 나라는 망한다”는 예단을 한 바 있다. 요즘 자칭 대통령후보 1순위로 거론되는 문재인, 그는 입버릇처럼 남북한 정전협정을 공산화를 초래한 1973년 베트남 평화협정으로 바꿔야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문재인의 주장하는 평화협정은 주한미군의 철수가 목표

1973년 1월 23일, 전쟁 종식과 베트남에서의 평화 회복에 관한 협정이 미국 측 헨리 키신저와 베트남 민주공화국의 특별고문 르덕토에 의해 타결되었다는 소식이 세계에 전해졌다. 이 협정은 1월 27일, 베트남 파리회담에 참여하고 있는 미국, 북베트남, 남베트남, 남베트남임시혁명정부 관계자들에 의해 공식적으로 조인되었다.

이에 따라 1968년 5월 13일 파리협상의 첫 회의에 북베트남은 쉽게 평화협상에 응하지 않았다. 그들은 처음부터 미국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조건들을 제시했다. 핵심은 남 베트남에서 미군을 철수시키라는 것이었다.

하루빨리 베트남에서 미군을 철수 시킬 것을 요구하는 반전여론을 의식한 후임 닉슨 대통령은 ‘닉슨 독트린’을 발표하여 '아시아는 아시아의 손에 맡긴다'는 정책으로 급선회하여 철군을 시도했다.

물론 남 베트남의 티우 대통령은 미국의 일방적인 철수를 완강하게 반대했다. 그럼에도 1973년 1월 27일 평화협정이 체결되었고 닉슨은 1954년 프랑스가 디엔 비엔 푸 전투에서 패배한 이후 시작된 인도차이나 개입의 멍에를 20여 년 만에 벗어던질 수 있었다.

미군철수 후 급격한 전세 역전

1974년 가을까지 군사적 균형은 이미 북 베트남 쪽으로 급격하게 기울고 있었다. 북 베트남과 임시혁명정부는 이미 많은 병력을 동원했고 보급품을 축적하면서 결정적 타격을 가할 준비를 진행시키고 있었던 반면 남 베트남은 경제적으로 점차 어려워져 가고 있었다. 미군철수와 함께 경기는 위축되었고, 미국의 원조삭감과 90퍼센트가 넘는 인플레로 실업이 속출하고 군의 사기는 급속도로 떨어졌다. 이 같은 사기저하는 1974년 한 해 동안 24만 명의 정부군이 탈영을 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기회를 기다리던 북 베트남은 1975년 본격적인 공세를 감행했고, 불과 55일 만에 사이공 정부로부터 무조건 항복을 얻어냈다.

사이공 함락 후 남 베트남의 지도층 인사, 공무원, 지식인들은 수용소에 보내졌다. 심지어 북 베트남을 도와 사이공 정권 반대운동을 벌였던 인사들도 대부분 체포되어 사형에 처해졌다. 당시 작은 보트를 이용해 목숨을 걸고 탈출한 국민들의 숫자는 약 106만 명으로 추산된다. 이중 11만 명이 바다에서 목숨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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