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레방아 비유로 어깨에 힘줬던 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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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레방아 비유로 어깨에 힘줬던 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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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도 진실도 아닌 논리가 통하는 대한민국

흘러간 물로 물레방아를 돌릴 수 없다, 이 비유는 이 모 관리가 “박정희 모델에서 노무현 패러다임으로(05.10.25 국정브리핑)”에서 힘준 결론이다. 논리는 일단 뒤로 제쳐놓고, 그럴 듯 하다. 이 말은 보다 간결하고 감각적이어서 선동적인 구호에 가깝다. 집권층엔 안심을, 국민에겐 당위를 안겨주는 것 같았으나, 현실은 달랐다. 다음날 10.26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 4곳 모두 여당이 참패로 끝났다.

흘러간 물로 물레방아를 돌릴 수 없다, 이 선동은 “반공이 좋은 건 박물관에 있을 때다(데일리서프라이즈 05.10.23)”의 칼럼에 이미 나타난다. 칼럼니스트 김 모 씨는 여기서 뛰어난 좌파적 정치감각을 보여줬으나, 안타깝게도 이 문구의 그럴듯함에 빠져 논리적으로 그곳에서 좌초된 것 같았다. 그는 국민들이 무식하다고 질타했지만, 차라리 그에게서 데리다(J. Derrida) 같이 탈구축(de-construction) 원리를 보고 싶었다.

흘러간 물로 물레방아를 돌릴 수 없다, 이 구호는 10월 24일 국회 정치분야 대정부질문에 나서 열린우리당 의원들에 의하여 다시 터졌다. “강교수 사건을 사법부의 판결을 통해 시비가 가려질 것이고, 정치권에서 정쟁을 벌일 일이 아니다”라고 강조하며, 그들은 “박근혜 대표와 한나라당은 이성을 되찾아, 거짓선동과 국민협박을 즉각 중단할 것을 강력히 촉구 한다”고 요구했다. 이처럼 물타기는 본말을 흐리게 하는 작전이다.

흘러간 물로 물레방아를 돌릴 수 없다, 이 비망록(agenda)에는 범여권을 포괄한 정부-언론-국회 3박자가 화음을 이루며 세팅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들의 논조는 한마디로 세상이 바뀌어도 한참 바뀌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과거기득권 특히 반공을 국시로 내세운 유신정권이나 그 후예집단을 칼로 자르듯 잘라내 버려야하는 것으로 정리된다. 과거진상조사를 통하여 친일파를 민족으로부터 단절시키자는 발상과 맞물려있다.

흘러간 물로 물레방아를 돌릴 수 없다, 이 속담은 과거지향이 아니라 미래지향에 그 참 뜻이 있다. 즉 “이전의 잘잘못을 넘어 현실을 새롭게 받아드리고 앞으로 나아가자”라는 것이다. 개혁도 좋고 혁신도 좋다. 올바르게 개혁하자는데 반대할 국민은 하나도 없다. 진보도 좋고 혁명도 좋다. 새롭게 세계를 주도할 패러다임으로 바꾸자는데 거부할 국민은 별로 없다. 그러나 숭김(崇金) 세력의 주체사상만큼은 그 대안이 될 수 없다.

흘러간 물로 물레방아를 돌릴 수 없다, 이 문장의 핵심은 물보다 오히려 물레방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물도 물의 색깔 가지고 과거에 흘렀느니 돌렸느니 왈가왈부하는 것은 더더욱 난센스이다. “광복이후 지금까지 남한의 이념은 너무 더럽혀졌다, 그러니 뿌리까지 제거하고, 북한의 정체에 접붙여 이식하자”는 발상이 정말로 양심인지 신념인지 묻고 싶다. “빈대잡기 위해 초가삼간 태운 어리석음”을 범했던 공산 캄보디아를 잊어선 안 된다.

물레방아는 물레라는 회전장치에 방아라는 작업장치가 연결되어 있다. 물레가 돌아 굴대에 이어진 방아가 곡식을 찧는다. 이 관계는 삼각함수로 나타난다. 푸리에(J. Fourier, 1768-1830)는 나폴레옹의 측근 행정가였지만 삼각함수로써 인류에 크게 공헌하였다. 오늘날의 정보통신 조차 그의 푸리에 변환이 없었다면 불가능 했을 것이다. 흘러간 물로 물레방아를 돌릴 수 없다, 이 말에서 삼각함수를 떠올리는 관리는 우리나라에서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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