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화] 궁금하면 5백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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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화] 궁금하면 5백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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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우 연재소설 응답하라2017] "조연하는 공 의원의 첫사랑이에요."

주경진은 공대성 후보의 머릿속에서 읽어낸 두 여자, 조연하와 김하진에 대해 무척 호기심이 생겼다. 자기가 알고 있는 주변 사람 중에는 없는 여자였다. 공대성 후보가 아내로 삼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정도면 숨겨둔 여인이 틀림없을 것이다.

김하진. 혀에 많이 익은 이름이었다. 주경진은 한참 만에 김하진이 유명한 발레단의 프리마돈나임을 기억해 냈다. 그러나 그 젊은 여인이 공대성의 애인이란 말인가? 너무 어울리지 않았다.

조연하. 흔히 있는 이름이다. 요정에 다니면서 어쩌다가 만난 여자일지도 모른다.

어쨌든 이 여자들의 정체를 알면 이번 대선의 판도를 뒤집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 이 사실을 캐내서 오혜빈 후보가 당선되도록 한번 크게 흔들어 보아? 물론 그 공은 문지수에게 돌아가도록 해야 되겠지?

주경진은 혼자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가 문득 백상희를 머릿속에 떠올렸다. 오랫동안 공대성의 개인 비서 역할을 해온 여자였다. 공대성이 대통령 후보로 나오면서 물러선 여자였다. 백상희가 문지수의 친구 언니이기 때문에 두어 번 만나 함께 카드 게임을 하면서 논 일이 있어서 안면이 있었다. 그 여자라면 비밀을 알 수도 있었다. 더구나 백상희는 주경진을 마음에 들어 하는 눈치였다. 나이는 주경진보다 열 살 이상이나 연상이었다.

주경진은 집에 들어가 낡은 라면 상자를 꺼냈다. 옛날 명함이며 지나간 비행기 표, 시효지난 여권 등 잡동사니를 모아둔 상자였다.

주경진은 잡동사니를 한참 뒤지다가 백상희의 명함을 찾아냈다.

'공대성 국회의원 비서실. 보좌관 백상희.'

틀림없었다.

주경진은 명함에 적힌 핸드폰을 번호를 들여다보았다. 첫머리 숫자가 '011'로 되어 있었다. 바뀌었을 것이란 생각을 하면서도 전화를 걸었다.

"없는 번호입니다."

주경진이 짐작한 대로였다. 다시 011을 010으로 바꾸어 걸어 보았다. 신호가 갔다.

"여보세요."

여자 목소리였다.

그렇게 해서 주경진은 광화문에 있는 어느 호텔의 로비에서 백상희를 만났다.

"오랜만이네요. 주경진씨."

다행히 백상희는 주경진을 반겨주었다. 전보다 살이 좀 찌고 턱에 주름이 많이 잡혔다. 중년 아줌마 티가 물씬 났다. 오고 가는 인사에서 백상희는 결혼해서 미국에 사는데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귀국했다가 몇 달 머물고 있다는 말을 했다.

주경진은 백상희의 권유에 따라 호텔 일본 식당에 들어가 저녁 식사를 하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김하진과 조연하 말이죠? 그걸 어떻게 아셨어요?"

백상희가 약간 놀라는 표정으로 물었다. 그 표정에서 틀림없이 무슨 사정이 있을 것이란 짐작이 갔다. 빨리 백상희의 머리 속을 들여다보고 싶었으나 참았다. 백상희의 입을 통해 비밀을 듣는 스릴을 느끼고 싶었다.

"주경진 씨 짐작이 맞아요."

"예? 제가 무슨 짐작을 했는데요?"

주경진이 놀라 물었다.

"두 여자가 공대성 의원의 숨겨둔 여인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 아니에요? 맞죠?"

백상희가 싱글싱글 웃었다. 주름지고 살찐 얼굴이지만 그렇게 웃을 때는 귀여워 보였다.

"아니, 백 선배도 독심술 하시나요?"

"독심술? 문 박사한테 좀 배운 적이 있지요."

문지수 친구의 언니니까 그럴 수도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그럼 제 머리 속을 다 읽으셨으니 편하게 되었네요. 제 궁금한 것을 좀 풀어 주세요."

"궁금하세요?"

"예."

"궁금하면 5백원."

백상희가 손을 내밀었다. 두 사람은 얼떨결에 손을 잡고 파안대소, 소리를 내며 웃었다.

"조연하, 김하진 두 여자 모두 공의원의 숨겨둔 여자 맞습니다."

백상희가 계속해서 놀라운 이야기를 쏟아냈다.

"조연하는 공 의원의 첫사랑이에요."

"예? 그럼 첫 사랑을 다시 만난 것입니까?"

"그래요. 공 후보가 두 번째 출마했을 때 선거구에 찾아온 조연하를 만났지요."

백상희의 이야기는 점점 더 주경진의 흥미를 돋구게 했다.

조연하와 공대성은 남녀 공학인 고등학교에 함께 다녔다. 조연하는 웅변 동아리에서 함께 활동하던 후배였다. 두 사람은 전국 대회에 나란히 선정되어 서울로 올라가 대회에 참가하게 되었다. 공대성은 상을 받고 조연하는 입상하지 못했다. 공대성은 고향으로 돌아오면서 조연하의 울적한 마음을 달래 주려고 노력했다. 동정심이 마침내 사랑으로 변해 두 사람은 집으로 가지 않고 골목길 모텔로 갔다. 고등학생 시절의 무모한 불장난이었다.

두 사람은 대학을 마칠 때까지 오랜 세월 사귀었다. 그러나 비교적 부유층이던 조연하의 부모가 건달처럼 보이는 공대성을 싫어했다. 조연하 어머니의 맹렬한 반대로 결혼을 이루지 못했다. 공대성은 조연하의 단짝 친구인 김은정과 결혼했다. 조각가인 현재의 부인이었다.

조연하는 벤처 기업으로 성공한 젊은 사업가와 결혼했다. 그러나 결혼 생활은 불행했다.

젊어서 거부가 된 조연하의 남편은 방탕한 생활로 가정을 돌보지 않았다. 자녀가 장성해지자 두 사람은 별거 생활을 시작했다. 그 무렵 2선 의원에 도전하는 공대성의 가두연설을 우연히 듣게 된 조연하가 공대성의 선거 사무실을 찾게 된 것이다.

정치 생활을 하면서도 가끔 머리에 떠 올리며 첫 사랑을 잊지 못하던 공대성은 조연하가 눈물이 날 정도로 반가웠다. 공대성 의원과 조연하는 그날 밤 W호텔 방갈로로 갔다. 20여년 만에 끊어졌던 첫 사랑이 뜨겁게 이어졌다.

"아니, 입후보한 국회의원이 유부녀를 데리고 호텔 방갈로에 갔는데 전혀 소문이 나지 않았단 말이오?"

주경진이 백상희의 말허리를 자르고 질문을 했다.

"궁금하면 5백원."

백상희가 다시 손을 내밀며 이야기를 계속했다.

"정치하는 사람들은 큰 호텔 룸을 장기 예약해서 키를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아요. 중요한 손님, 예를 들면 돈 뭉치를 전달하려는 경제인들이나, 숨겨둔 애인을 만날 때는 그 비밀 장소를 이용하지요. 공 후보는 그런 일을 모두 나한테 맡겼기 때문에 내가 입을 열지 않으면 소문이 나지 않지요,"

"아하, 그렇군요. 그들의 비밀 장소가 모두 일류 호텔 객실이군요."

"꼭 그렇지는 않아요. 서울 근교에 다른 사람 이름으로 비밀가옥, 안가를 두고 있는 정치인도 많아요."

"그럼 조연하의 별거중인 남편은 그런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겠군요."

"그렇지도 않았어요. 눈치를 챈 남편이 시비를 걸어온 적이 있었어요. 공 후보가 그 사람의 사업에 정부 특혜를 알선해주고 무마한 일도 있지요."

"그게 좋게 보면 잊지 못할 첫사랑과의 재회라는 로맨스 스토리도 되지만 엄격한 현실은 간통이잖아요."

"텔레비전의 유치한 드라마 스토리 같은 것이지요."

"그리고. 김하진은 어떤 여자예요? 무용하는 그 여자 맞아요?"

주경진이 백상희의 입을 쳐다보며 대답을 기다렸다.

"그 여자 스토리는 더 기가 막히답니다."

(계속)

[이상우 연재소설 응답하라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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