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화] 국회를 폐지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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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화] 국회를 폐지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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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우 연재소설 응답하라2017] "내가 얘기하면 비밀 누설이 되는데..."

"양천수의 생각은 무엇인데?"

주경진이 가슴에서 스물거리고 있는 문지수의 손을 슬그머니 떼 내면서 물었다.

"국제 결제 수단도 전자결제 방식으로 바꾸면 된다는 거야. IMF 산하에 전자 결제원을 만들어 모든 국가의 금전거래를 전자결제로만 해도 된다는 것이지. 그것은 지금도 일부가 시행되고 있는 것이래."

"그럼 해외여행자에게 외화를 교환해 주는 것은 어떻게 해결 한다는 말인가?"

"그것도 모바일 금융 앱에 전자 입금으로 외화를 넣어주면 외국 나가서 현지 화폐로 교환하면 된다고 합니다."

"음, 그러니까 모바일 자체가 예금을 가지고 결제 행위를 하는 NFC 같은 것이군."

문지수가 이번에는 슬그머니 다가와서 주경진의 귓불을 만지작거리기 시작했다.

주경진은 위기가 닥친다고 생각했다. 이러다가 다음 순서는 와락 덤벼들어 자신을 허무러뜨릴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문지수와의 관계가 처음 시작된 것은 오래 전, 문지수가 고3 때의 일이었다.

문지수의 아버지 문국당 원장한테 독심술을 배우러 다닐 때였다. 그날은 정말 주경진의 눈에 귀신이 쓰인 것 같았다. 문 박사의 사무실엔 마침 아무도 없었다. 학교에서 돌아온 문지수가 아버지 대신 연구소를 지키고 있었다.

주경진은 교복을 입지 않은 문지수가 성숙한 여인처럼 보였다. 청초하고 아름다웠다. 첫눈에 반했다는 것이 이럴 때 쓰는 말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반했다.

"원장님 안계십니까?"

주경진은 말까지 가늘게 떨려나왔다. 갑자기 식은땀이 나는 것 같기도 했다.

"아버지 말씀이군요. 오늘 좀 늦으신다고 했어요. 어쩌면 안 오실지도 모르니 손님과 다음날 약속을 받아놓으라고 하셨어요. 여기 좀 앉으세요."

문지수가 생글생글 웃으면서 소파를 권했다.

"아, 예."

주경진은 문지수의 얼굴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엉거주춤 소파에 걸터 앉았다. 텅빈 연구원. 주인은 안 올지도 모른다.

"아버지에게 독심술 배우시는 분인가 봐요."

"아, 예."

"커피 한 잔 드릴까요?"

"아, 예."

주경진은 다른 단어가 생각나지 않았다. 문지수한테 넋을 빼앗겼기 때문이었다. 문지수도 주경진에게 호감을 느낀 것 같았다.

문지수가 안으로 들어갔다가 커피 잔을 쟁반에 받쳐 들고 나왔다. 문지수가 커피 잔을 내려놓으려고 할 때 주경진이 벌떡 일어서서 커피 잔을 받았다. 그 순간 떨리는 주경진의 손이 커피 잔을 치고 말았다.

"앗 뜨거!"

커피가 문지수의 팔목에 튀었다. 동시에 잔이 엎어지면서 커피가 주경진의 가슴으로 쏟아졌다.

"으!"

주경진도 비명을 질렀다. 주경진의 흰 셔츠에 커다란 얼룩이 생겼다.

"죄송해요. 손 데지 않았어요?"

주경진이 엉겁결에 문지수의 손을 덥석 잡았다.

"괜찮아요. 근데 셔츠를 ..."

문지수는 뜻밖에 주경진의 손을 마주 잡으며 생긋 웃었다.

"옷을 벗으세요. 제가 얼룩진 곳만 대강 빨아 드릴게요."

문지수가 주경진의 셔츠 단추를 풀기 시작했다. 주경진은 가슴이 방망이질치기 시작했다.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가슴속에서 폭탄이 터진 듯 열기가 솟구쳤다. 문지수의 손으로 셔츠가 벗겨지자 더 참지 못한 문지수를 와락 껴안았다. 문지수는 별로 저항을 하지 않았다. 주경진은 텅 빈 연구실 바닥에 문지수를 눕혔다. 시간이 어떻게 흘렀는지, 두 사람은 자기들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얼마나 지났을까? 맨몸인 채 정신이 돌아온 주경진은 벌떡 일어나 앉았다.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한 거야?'

그러나 일을 저지른 것은 분명했다. 속옷만 입고 옆에 누워 있는 문지수의 얼굴은 편안해보였다.

"미안해요. 정말. 그런데 이름이 뭐예요?"

주경진은 할 짓 다 한 뒤에 여자 이름을 묻는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고 혼자 머리를 쥐어뜯었다.

"문지수.... 처음이었어요."

"용서해줘요."

"고3이고요."

문지수는 담담했다. 그 태도가 주경진을 더욱 못 견디게 했다. 그 이후로 문지수만 보면 죄책감에 사로잡혀 피하고 싶었다. 이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피하려고 했다. 문지수와 결혼한다는 것은 한 번도 생각하지 못했다.

"양천수는 오혜빈 후보 일을 계속 봐주고 있는 것 같은데... 둘이 몰래 사귄다는 멘붕연대 이야기가 근거 있는 것 아닌가?"

주경진이 문지수의 관심을 돌리려고 다른 질문을 하면서 슬금슬금 옥상을 걷기 시작했다. 노을은 이제 시들어 붉으죽죽한 흔적만 남기고 있었다.

"사귀는지 어쩐지는 잘 모르겠고요... 아니 오빠가 양 박사 만나 독심술로 한번 관찰해 보세요."

"전에 한번 들여다보았는데 그의 머리속은 스마트폰으로 꽉 차 있더라고."

"참, 양 박사가 새로운 정책 하나를 제의했는데, 여론을 즉각 즉각 수집해서 국민의 희망 사항을 정확하게 전수(全數)로 알아내는 앱을 개발해서 사용하자는 거예요."

"그래서 오 후보가 그 정책에 찬성이라도 했나?"

"아뇨. 양 박사는 다음에 더 황당한 정책을 내놓았어요."

"그게 뭔데?"

"내가 얘기하면 비밀 누설이 되는데..."

"싫음 말고."

주경진이 돌아서서 옥상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오빠, 그게 말이야..."

문지수가 쫓아와 팔짱을 끼면서 말을 이었다.

"국회를 없애자는 것이야."

"뭐? 국회를 없앤다고? 그럼 민주주의의 원칙인 3권분립을 파기하자는 말이야? 그게 말이나 돼?"

"어쩜 말이 돼요. 국회를 없앤다고 해서 대의정치를 없애자는 것이 아니거든요."

"그럼 어떻게 한다는 거야?"

주경진이 걸음을 멈추고 문지수를 내려다보았다.

"국회라는 게 뭐예요? 국민의 의사를 반영하는 곳 아닌가요? 국민 모두의 생각을 다 반영할 방법이 없으니까 대리자, 즉 대의원을 뽑아서 반영하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그런데 최상의 방법은 모든 국민의 의견을 대리인을 통하지 않고 직접 국정에 반영한다면 더 좋은 것 아니예요?"

"그게 직접 민주주의라는 거지. 하지만 그 방법이...."

"지금은 방법이 있지요. 모든 국민, 아니 유권자는 핸드폰을 한 개 이상 가지고 있으니까 핸드폰으로 의사표시를 할 수 있습니다. 국회에 상정될 법안을 모든 국민의 핸드폰에 쏘아주고 국민이 직접 찬반 표시를 하면 국가에서 그걸 집계하면 되지요. 법안의 제안도 국민이 직접 핸드폰으로 제안하면 되지요. 이런 복잡한 사안을 정리하는 간편한 앱을 개발해서 쓴다면 국회 기능을 훨씬 신속하게 정확하게 수행할 수 있는 것 아닌가요?"

"음, 하기는...."

주경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계속)

[이상우 연재소설 응답하라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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