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교재를 편집하면서 빈곤한 선생에 관련 자료는 수년후 한길사의 위대한 한국인시리즈에 허권수 교수님이 집필하신 "절망의 시대 선비는 무엇을 하는가"을 접하면서 행복감을 확인했다. 책에서 조선 중기 밖으로는 외침의 위기, 안으로는 극심한 당파싸움으로 시대적 한계에서 우국충정과 진정한 noblesse oblige를 만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흔히 우리나라의 위인전은 위인으로서 특별한 능력, 통찰 등 긍정적인 것만 강조하는 성향이 강하다. 하지만 남명 선생의 행장은 뛰어난 자질의 개인이 국난과 가족의 거듭된 불행에 주류(관직출사.입신양명)가 아닌 비주류(처사)로, 현재가 아닌 미래(교육.학자)로, 학문만이 아닌 행동(상소 등)으로 일관한 것이다. 무엇보다 인성과 교양을 중시하는 동양사상이 현장과 미래와 유리되어 혁신이 필요한 것을 깨달은 실학의 비조이기 때문이다.
실지로 선생의 일생은 극심한 당파싸움으로 국론은 분열되고, 권력자들의 부패와 무능으로 국정은 문란하고, 백성들의 삶은 피폐하여 절망(암흑)의 시대였다. 전제정의 폐해가 극심하여 여론을 주도하는 사림도 감히 비정을 비판하는 용기도 포기할 시대상에 죽음을 각오하고 출사를 명한 왕명을 거부하고 비판한 선비정신의 아우라를 보인 것이다.
또한 남명 선생은 "멀리 보지 못하면 위난은 항상 가까이 있다"는 공자의 신념을 실천한 학자였다. 외환의 위기를 예상한 선생은 제자들을 남달리 교육하여 사후 발발한 임진왜란에 정인홍 곽재우를 포함한 50 명에 달하는 의병장들을 키운 것이다. 심지어 국난을 극복하기 위해 지역을 넘어 인적교류를 실천한 통찰력을 보여 주었다.
남명은 동년배이며 영남좌도의 대학자 퇴계 이황과도 여러점에서 대비 된다. 퇴계는 성격이 온유하며 타고난 학자의 자질을 가진 대학자 였으나 남명은 퇴계에게 국정책임을 다하지 못하는 위정자에게 비판과 질책 나아가 출세에 혈안이된 젊은이들을 제대로 가르치지 못한다는 비판도 서슴치 않았다. 사림 총수로서 대안과 용기를 지적한 것이다.
경(敬)과 의(義)를 일생의 원칙으로 삼아 평생 칼과 방울을 지니셨던 선생의 통찰은 진리와 실천의 학자였다. 영국 철학자 버트란트 러셀은 서양의 우위는 자유와 규율, 관념론과 유물론, 성선설과 성악설 등 서로 상이한 요소들의 결합이라고 보았는데 남명이 바로 그러한 경우였다. 경과 의는 본래 주역 곤괘에 나오는 "군자는 경으로써 안을 곧게 하고, 의로서 바깥을 바르게 한다"라는 말에서 유래하였다. 경은 마음의 주재자이고 의는 모든 행동의 올바른 기준이 된다. 경과 의가 갖추어진 뒤에 라야 마음이 맑아져서 모든 판단이 바르게 되고 참된 용기가 솟아나게 된다고 보았다. 남명은 이 "경의"를 통해 자신을 수양하고 제자들을 기르며 나아가 이 세상을 구제하려고 노력하였다.
남명 조식 선생의 일생은 성인이나 현자도 처음에는 평범한 인간에서 출발하여 자신의 노력으로 최고의 경지에 이를 수 있음을 보여준다는 점이다. 특히, 선생의 행장기에 투영된 것은 전제정의 엄혹한 관습으로 인한 인간성의 말살이었다. 즉 사화는 전제정으로 인한 폐습의 부산물이며 가해자도 결국 피해자란 사실이었다. 그리고 이를 근본적으로 퇴치하는 바를 찾기에 주자학 나아가 동양의 사상과 제도가 갖는 한계라는 인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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