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이야기(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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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이야기(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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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 다르고 속 다르다

중국인에 대한 평가 중에는 "중국인은 느리다" (慢慢地 manmandi)라는 말이 있고 중국인 자신들도 인정을 한다. 그러나 나는 이와는 반대 경험도 많이 했다.

1990년대 초 상해에서의 일이다. 한국의 인건비가 워낙 올라 수주한 오-다를 중국 공장에서 생산해 볼 계획으로 여러 공장과 상담을 하고 가공임, 납기 내 선적 등에 문제가 없는 한 공장에다 견본이 완성되면 되도록 빨리 서울로 보내 달라고 했더니 “내일 오전에 당장 견본을 만들어 보여 주겠다”고 했다.

마침 주말인 그날은 비도 많이 오고 시내에서 공장이 있는 ‘푸동’까지는 자동차로 2시간이상 이동거리여서 불가능한 약속이라고 판단했는데 이들은 이튿날 견본을 만들어서 숙소인 호텔로 가져온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제품을 만들자면 재단사가 형지를 만들어서 재단하고 미싱사가 봉제까지 마쳐야 한다. 한국의 일류공장에서도 불가능한 일을 이들은 24시간 내에 만들어온 것이다. 귀국 후 즉시 관련 견본 자제 등을 점검하고 곧 다시 상해공장을 직접 가보니 한국과 큰 차이가 없고 생산하고 있는 상품의 품질에 별 문제가 없어서 계약을 마쳤다.

그러나 이 공장은 그토록 빨리 견본을 만든 것과는 달리 전체 물량은 약속한 납기시간을 계속 어겨 큰 골탕을 먹었다. 나중에 알아 보았더니, 오-다를 우선적으로 확보한 다음은 바이어 납기를 무시하고 자기들 공장에 유리한 방식으로 생산하다보니 지연이 되었다는 것이다. 또 이들은 여러 가지 이유를 대면서 "중국인들이 ‘慢慢地’인 것을 몰랐느냐?“고 되려 반문해대어 그들의 엉터리 변명이 기가 찼지만 달리 항의할 기관도 막막해 당하기만 했다.

靑島에서 15여년 작업을 하면서 내가 취급하는 품목이 방한복이 많아서 주로 3월-9월 까지 생산을 하고 겨울에는 휴업이어서 다음해 구정을 지낸 후 출국한다. 매달 출장을 갈 때는 모르지만 4-5개월 지난 뒤에 가게 되면 시내에 신축한 건물이 수두룩하게 생긴 것에 놀란다. 한국인들의 "빨리빨리"는 세계가 알아주는 명성이고 중동을 비롯한 세계의 건축시장에서 한국인의 신속성에 대한 평판이 자자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한국인들보다 더 빠른 것이 중국인인 것 같았다.

물론 중국은 시내 한복판에서도 24시간 작업을 할 수 있고 토지도 국유이며 값싼 노동력으로 주민들을 대대적으로 동원하니 신속 면에서 유리하지만 어쨌거나 중국인이 느리다는 것은 왜곡된 말이다. 특히 자기들의 이익이 연관되면 무지하게 빠르다는 것이다. 중국인이 느리다는 말은 중국인 자신들이 자기들이 유리할 때 이용하려고 만들어낸 것 같다.

또 "중국인들은 진정한 친구가 되기 어렵지만 한번 친구가 되면 영원히 배신하지 않는다" 라고 하지만 중국공장을 상대로 일을 하면서 이해되지 않는 것은 이들은 계속해서 새로운 거래처를 찾는다. 우리는(다른 선진국도 마찬가지) 첫 거래를 하고 이상이 없으면 서로가 계속 거래를 하기를 원하고 점점 상호간 신용이 쌓여 수월한 관계가 된다.

중국인은 좋은 조건으로 첫 거래를 트고 난 후, 계속 단골거래를 하게 되면 턱없는 가공임 인상을 요구하는 등으로 조건이 점점 까다로워지며 요구사항이 결렬되면 더 불리한 조건임에도 새로운 거래처를 찾았다. 비슷한 이야기로 숙소 가까이 가게에서 퇴근하면서 거의 매일 과일을 사다먹었는데 어느 날 같은 과일을 처음 온 사람에게 더 싼 가격으로 파는 것은 목격하고는 주인에 항의했더니 "당신이 자주 와 과일을 사가는 것은 내 물건이 좋으니까 그렇지 않느냐? 그러니 당신에게는 더 받는다“고 대답했다.

드물긴 하지만 靑島공장의 내 파트너는 처음부터 끝까지 양심적이고 성실하게 거래를 했지만 대부분의 다른 공장은 이처럼 잔머리를 굴리는 일이 많았다. 그래서 “친해지기 어렵지만 한번 친해지면 영원히 간다” “중국인은 느긋하다. 느리다”는 나에게 별 설득력을 가지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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