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마을운동과 천리마운동의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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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마을운동과 천리마운동의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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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곡 국사 교과서 논쟁 (2)

최근 논쟁에서 가장 쟁점이 됐던 것은 남한의 새마을운동과 북한의 천리만 운동에 대한 서술 방식에 대한 문제였습니다.

대부분 독자들이 아는 바로는 새마을운동은 농촌의 현대화를 위한 박정희 정권의 혁신적인 운동이라는 식으로 알고 있을 것입니다.

거기에 비해 남한 보다 조금 이른 시기에 북한에서 시작한 천리만 운동은 잘 알려져 있지 않을 것입니다. 이번 두번째 글에서는 학술담당이신 박종국님의 정리로 새마을 운동과 천리마운동에 대해 이해 해볼까 합니다. (편집자 주-김종화)

1. 새마을운동이란?

새마을운동은 1970년 박정희 대통령이 지붕개량화 사업의 일환으로 추진한 사업이었다. 박정희 정권때 추진된 새마을 운동은 농촌에서 시작되었는데, 이미 말했듯, 지붕개량화(초가 지붕을 없애고, 양철 지붕을 올렸고), 농지 도로 확포장 공사, 다리놓는 일차 공사와 마을 회관 건설, 상수도 시설, 소하천 정비, 특용작물등을 재배하여 70년대 중반, 농촌 소득이 도시 근로자 소득과 비슷해질 정도였다.

이것이 농촌에 자리잡자, 도시에까지 확대되어 반상회가 조직되고, 이웃 알기와 새마을대청소, 저축하기와 거리질서 캠페인을 전개하였다. 그리고 직장과 공장에서는 건전한 직장분위기 조성운동으로 시작되어 새마을분임조 활동을 통한 생산성 향상과 물자절약, 노사관계 정립에 중점을 두었으며, 학교에서는 인사 잘하기, 부모 공경하기 등 예절교육을 실시해 나갔다.

새마을 운동은 박정희 대통령이 농촌 출신이었고, 그가 쿠테타를 일으킨 이유가 경제를 부흥시켜 꽁보리밥 대신 쌀밥을 먹자고 할 정도로 농촌에 대한 애정이 강했던 탓이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새마을 운동은 박정희 정권에게 있어서 유일하게 비정치적인 목적에서 시작된 운동이었다.

2. 새마을 운동의 문제점은 없었나?

새마을 운동의 가장 취약한 문제점은 관 주도의 운동이다보니, 권위주의적이고, 현 실정을 고려하지 않은 운동이었다는 점이다. 그대표적인 예가 미신이라는 이유로 서낭당을 베어버리는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마을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서낭당이나 천하대장군등을 없애버린 건 권위의식에서 나온 행태라고 볼 수 있다.

더구나 새마을운동은 관 주도여서 비리의 온상이었다. 전두환 정권때 새마을중앙회가 창설되고, 회장에 아우인 전경환을 앉혀 수천억에 넘는 비자금을 창출하게 만드는 장본인이었다. 결국 박정희 정권때 시작된 순수한 새마을 운동은 결국 전두환 정권때 접어들어 변질되어 지금은 관제단체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3. 천리마운동은 무엇인가?

1956년 8월 종파 사건이후 북한의 독자 노선이 시작되자, 소련과 중국에서 무상으로 제공되던 지원금이 끊기자, 부족한 건설자금을 주민의 자체 노동력으로 해결해야만 했다.

따라서 56년 12월에 열린 당전원회의에서 부족자금을 주민의 노력동원으로 보충하기 위하여 <최대한의 증산과 절약>을 내세워 종래의 노력경쟁운동을 강화하기로 결정하고, 평안남도청년탄광돌격대·청년철도건설돌격대 등 돌격대의 노동강화운동을 전개하였으며, 천리마운동은 58년 9월 개최된 <전국생산혁신자대회>를 계기로 북한 전체 근로자의 노력경쟁운동으로 본격화되었다.

또한 59년 3월 강선제강소(현재 천리마제강연합기업소)의 진응원이 천리마작업반운동을 발기함으로써, 이 운동은 공장·기업체·농장·학교 등 전분야로 확산되었다. 60년 중반에는 천리마직장운동·천리마공장운동 등으로 발전하였고, 이어서 천리마칭호 쟁취운동·천리마영예상 쟁취운동 등이 고안되어 더욱 강화되었다.

4. 천리마 운동의 문제점은?

천리를 달리는 말처럼 노동자도 천리를 달리듯 열심히 일하는 뜻에서 시작된 이 운동은 폐쇄된 내수경제를 채택한 북한의 한계를 그대로 반영한 것이었다. 비록 처음에는 이것이 잘 추진되었지만, 결국 70년대 접어들어 한계를 느낄 수 밖에 없었다.

더구나 1972년 북조선 인민 민주주의 헌법(현행 헌법) 13조에 보이듯, 천리마 운동은 북한의 사상적인 운동이었다. 사람이 배고픈 상태에서 아무리 열심히 일을 할려고 해도 배가 고파서 결국 멈춰지듯 움킨 배 쥐고 해봤자, 계속 유지될 수 없을 수밖에 없었다.

5. 새마을 운동과 천리마 운동

현재 많은 학교에서 채택하고 있는 금성교과서에서 발간한 한국근현대사에는 "새마을운동은 박정희 정권가 대중의 지지를 기반으로 장기집권을 정당화할 목적"이라고 기술하고 있다.

반면, 천리마운동은 "사회주의 경제 건설에 도움이 되었다."는 식의 서술하여 마치 북한은 장기독재와 관련이 없는 듯 한 글을 쓰고 있다. 하지만 북한이나 남한이나 독재를 하기 위해 이용했다고 했다면 모를까? 하나는 경제를 위해 했고, 하나는 독재를 위해 했다는 해석은 억지아닌가?

새마을운동으로 과연 민중의 지지를 얻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자기가 못먹고 못입었던 농촌세대를 자손들에게 물려주지 않기 위해 벌였던 비정치적인 사업을 왜곡하는 것 같아서 씁쓸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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