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엑스포는 끝나고 가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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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엑스포는 끝나고 가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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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롭고 주인대접 받는 세상은 언제 올까

며칠 전 아침 7시, 옛 직장동료 네 명이 여수엑스포로 가기 위해 용산역에서 만났다. 나를 포함한 세 명은 경로였으나, 이번 투어의 (행동)대장 역을 맡은 하나는 명퇴 직전의 현역이다. 그가 예매한 무궁화 열차의 티켓에 적힌 차비는 2만에 미치지 않았지만, 우리 표와는 몇 천원의 차이가 있었다.

“KTX가 좌석이 없어서.”

“허, 그런데 대장은 명품이고, 우린 떨이일세.”

 
1. 무궁화 열차도 탈만해

무궁화호는 옛날로 치면 완행열차다. 서울에서 여수까지 가는데 다섯 시간 정도 걸리고, KTX에 비하면 두 시간쯤 늦으나 차비는 삼 만원 가량 더 싸다. 딱히 바쁜 일이 없는 은퇴한 사람으로서 이 정도라면 보상이 되고도 남았다. 여수에서 가까운 고흥이 고향인 대장의 여야 대선 주자들에 대한 직설적인 인물평과 당선예상 전망까지 듣다보니 천천히 가는 것이 오히려 덤이 되었다.

열차 안에는 입석 손님이나 떠드는 분위기도 찾아볼 수 없었다. 눈에 들어나는 질서는 선진국에 들어섰다. 식당 칸은 이름마저 카페로 바뀌었고, 가벼운 간식꺼리 판매대와 함께 PC와 게임기가 여러 대 설치되어 있었다. 화장실의 서민적인 냄새만 그럭저럭 받아드리면 무궁화호에 아무런 불편이 없다.

2. 여수엑스포 현장에서 헉헉거리며

정오 조금 지나 강열한 땡볕을 머리끝으로 받으며 여수엑스포 역에서 내렸다. 셔틀버스로 인근 전주식당으로 이동하여 간장게장과 양념게장으로 점심식사를 마치고, 3시 즈음에 사람들을 헤치며 박람회장 정문으로 들어갔다. 오후 입장료는 명품 2만원, 떨이 7천원으로 현격한 차이가 났었다.

아쿠아리움으로 가까이 다가갔을 때, 우와! 우린 먼저 입장하기까지 서서 기다리는 인파에 놀랐다. 뱀처럼 똬리를 틀며 줄선 사람들이 몇 천 명이나 될까? 관람하기까지 서너 시간 걸린다는 안내인의 설명을 듣고 보면, 대기자들의 인내심에 경탄은 하지만 내가 따라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내리쬐는 태양열 아래 비벼대는 사람들의 비릿한 열기까지 뒤집어쓴다면 곧 죽음이 아닐까.

3. 템플스테이로 하루 밤을

모처럼 여기까지 왔으니 적어도 주제관 만큼은 봐야 될 것 같아서 그 입구 앞에서 한 반시간 줄서서 기다리다가 우리는 특단을 내렸다. 엑스포 관람은 푸른 바다와 어울린 시설물들의 외관과 엉덩이만 가린 아가씨들의 눈부신 다리를 보는 것으로 대신하고 사우나로 곧장 가기로 합심했다. 그런데 택시기사 왈 그곳도 혼잡하기는 마찬가지일 것이라 한다. 이렇게 방황하는데 문득 사찰민박이란 현수막이 앞에 걸렸다.

돌산 쪽으로 접어들고 비포장도를 따라 한참 간 곳은 섬들을 촘촘히 앞에 두고 바닷가에 자리 잡은 지장대사(地藏臺寺)였다. 숙소가 예약되지 않아 우리는 주지스님 거실 옆의 통풍이 잘 되는 단체실로 안내되었다. vip로 대접 받은 듯이 너무 시원했고, 좀 쉬면서 맞이한 일몰의 노을 색은 정말 일품이었다. 우리를 더욱 감탄케 한 것은 저녁반찬이었는데, 어릴 적에 먹었던 자연산 야채와 양념 맛이 그대로 회상되었다. 1박2식에 두당 2만원으로 해결되었다.

4. 손양원목사순교지에 둘렀는데

다음날 아침 식사 후, 우리는 덧정 없는 박람회장은 포기했다. 출발 전에 제주삼다수 보다 더 수질이 좋다고 자랑하는 이곳의 약수를 한 번 더 마시며 오동도로 가기 위해 택시를 불렀다. 여수시내로 접어들었을 때 바쁘지 않던 우리는 손양원 목사님의 순교지가 멀지 않는 곳에 있어서 잠시 짬을 내어 둘렀다.

손양원 목사님은 하나도 아닌 두 아들 모두를 죽인 젊은 빨치산을 용서하고 양자로 삼았다는 전설적인 인물이다. 그리고 그분 역시 1950년 9월 당시 과수원이었던 이곳에서 총살된 순교자이다. 천애지화(天愛地花), 순교기념비석에 새겨진 명문이다. 하늘 사랑을 이 땅에서 꽃피웠다. 그는 생전에 이곳에서 한센병 환자들을 돌보며 목회했었다고 한다.

5. 오동도는 죽도라고 하면

오동도 입구에서 다도해의 풍치를 잘 보여주는 유람선을 탔다. 섬 안으로 768m 거리의 방파제 둑을 따라 걷거나 동백열차를 타고 들어갈 수도 있다. 오동도에는 170여종의 식물들이 자생하고 있다는데, 오동나무 보다 빨간 꽃의 동백나무로 유명하고, 곳곳에 대나무 숲이 더욱 무성하게 덮고 있었다. 특히 화살 만드는 대나무는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이 이곳에 전라좌수영 본진을 치고 있으면서 심었다고 전한다.

섬 중심지역에 솟아있는 등대까지 녹음 짙은 황토 산책로는 연인들의 추억을 남길만한 명소였다. 등대 옆의 옴파로스 광장에 동서남북 방향으로 오사카, 나폴리, 리우데자네이로, 블라디보스토크 등의 유명 항구가 가리켜지고 있었다. 여수는 거문도와 백도 등의 365개 섬들을 거느리고, 이번 “살라있는 바다, 숨쉬는 연안”을 주제로 하는 해양박람회를 통하여 세계 4대 미항으로 거듭나려 하고 있다.

6. 수산시장에서 전어회를

항구에 왔으면 바다고기 회는 필수이겠다. 우리는 동백열차로 섬에서 나와서 택시타고 여수수산시장으로 갔다. 이곳은 1층 활어 가게에서 회를 치고, 따로 2층 식당으로 식사와 술을 들게 하는 이중구조로 되어 있었다. 철이 좀 이르지만 전어회는 부드럽고 고소했다. 장어회와 섞어 초고추장에 버물어서 먹는 회덧밥도 일미였다.

오후 4시, 어제 도착하자마자 예매해둔 상행선 무궁화 열차에 올랐다. 이번에는 미국 뉴욕에서 거주한지 20여년이 넘는 동료와 나란히 앉았다. 그는 미국이 이런 엑스포를 개최했다면, 여수와 같이 관광객에게 불편을 주고 진땀 빼게 하지 않았을 거라고 단정했다. 시민이 자유와 민주화를 향유하는 정도가 한국은 미국의 10% 밖에 안 된다고 힘주었다. 한국의 선진화는 진정 경제력이 아니라 이제는 정치력에 달려있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

밤 9시가 좀 넘어 열차는 용산역에 도착했다. 이번 1박2일 여수투어는 10만원으로 충분했고 뒷맛도 깨끗했다. 다음에 또 기회가 주어진다면 편안하고 느긋하게 관람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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