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함정 화력에 밀려, 파열탄이 가장 무섭고, 한국 방탄조끼 부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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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함정 화력에 밀려, 파열탄이 가장 무섭고, 한국 방탄조끼 부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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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포커스, 2002년 6월 ‘제2연평해전’ 당시 북한 수병들의 증언 공개

▲ 제2연평해전에서 순직한 6명의 해군 장병
북한 전문 인터넷 언론 ‘뉴포커스’는 지난 2002년 6월 29일 제2연평해전 당시 교전한 북한 해군 수병들의 생생한 증언들을 6월 20일 게재, 공개했다.

당시 북한 대남선전기관인 통일전선부 소속 탈북자 장진성 뉴포커스 대표가 한국 해군과 교전 직후 자신과 함께 3명의 요원이 해군사령부 8전대 부상병을 만난 사실을 발설하지 말라는 서약을 한 후 평양시 대동강구역에 있는 조선인민군 11호병원에서 이들을 만났던 내용을 기사화했다.

영웅담을 듣기 위해 나온 것이 아니니 교전소감을 솔직히 말하라는 말에 온 몸에 붕대를 감고 230개의 파편을 맞았다는 수병이 휠체어에 실려왔는데, 한 수병이 “파열탄 수 백개가 우박 떨어지듯 합니다. 그 파열탄이 제일 무섭습니다”라고 증언했다.

다른 수병은 “놈들은 전투준비! 하면 모두 갑판밑으로 사라지는데 우리는 전투준비! 하면 모두 갑판위로 올라가요, 그런 상황에서 저 파열탄만 터지면 전투능력이 우선 1차적으로 상실돼요.” 라며 서로간의 소통을 포탄껍질로 철모를 때리며 했다며 긴박함을 전하기도 했다.

한 수병은 한국 해군의 방탄조기를 부러워 했다면서 “한 가지 제기해도 좋습니까? 놈들 배는 부럽지 않은데 제일 부러운 게 방탄조끼입니다. 방탄조끼는 비싸니깐 우리에게 목화솜옷이라도 주면 파편이 덜 들어가겠는데…” 라는 말에 장교는 “정말 방탄조끼는 아니라도 좋으니 목화솜옷을 좀 해결해주십시오, 그것만 입어도 애들 저렇게까지 심하게 부상당하지 않습니다.”라고 증언했다.

또한 6월 29일의 전투준비 증언도 나왔는데 “그날 함장이 평양에 갔다 온 날이어서 우리는 느슨하게 출항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함장이 그날따라 배에 기름을 가득 채우라고 지시하는 것이었습니다.” 라며 “그날 함장이 기름뿐 아니라 포탄과 탄약들도 만장탄하라고 지시하였습니다. 그리고 배 앞에 붙인 레루(레일)도 확인하더니 다시 더 단단하게 용접하라고 하였습니다.” 라고 했다.

출항직전 레일 용접에 대해 “전번 1차 때 충돌싸움부터 시작했었는데 그 애들 철갑이 굉장히 단단해서 우리 배가 찢어지더라구요, 그래서 고심하던 함장이 창안한 겁니다. 레루를 붙이면 승산 있을거라면서요.” 라는 증언도 했다.

당시의 전투상황 증언에서는 “우린 다 갑판 위로 올라가서 쏘는데 그 놈들은 어디서 쏘는지 보이지도 않아요. 그 놈들 함선 무섭게 발전했어요”라며 “우린 놈들 배에 접근해서 충돌을 시도했어요. 함장이 지시해서 발포도 우리가 먼저 시작했구요, 근데 놈들 첫 포탄에 함장이 먼저 죽었어요, 우리 함선 규정엔 싸움을 시작할 땐 함보위지도원의 동의가 있어야 합니다. 함보위지도원이 정치지도원을 겸하거든요, 그래서 함장 대신 그 때부터 보위지도원이 지휘했습니다. 그날은 우리가 작심하고 나갔으니 놈들 배가 손실이 컸습니다. 작전이 더 길어지면 화력우세나 함선우세에서 우리가 밀리기 때문에 손실은 불가피했습니다. 마침 전대사령부와 실시간으로 통신하던 조타수가 달려와 전대의 철수명령을 전했고 우린 보조조타로 조종하며 돌아왔습니다. 이상한 것은 함장 딸이 세 명이거든요, 근데 죽은 함장 몸에서 세 개의 파편이 나왔습니다.”라고 했다.

장 대표는 기사에서 “2차 교전 결과를 보고받은 김정일은 1차교전은 진 전투였다면, 2차는 이긴 전쟁이었다며 8전대 해병들에게 감사와 선물을 보냈다. 함장은 공화국 영웅칭호를 받았고 보위지도원은 국기훈장 1급을 수여받았다. 다른 해병들에게도 국기훈장 2, 3급과 함께 김정일 이름이 박힌 칼라TV가 선물로 하달됐다. 그 후 함장은 세 딸에게 아버지가 남긴 복수의 유산이란 내용의 ‘세 파편’ 연극의 주인공으로 부활했다.”고 썼다.

또한 “통전부가 연평해전서 싸운 해병들을 취재한 것은 NLL전략은 처음부터 김정일의 지시로 통전부가 기획했던 평화협박전략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통전부는 햇볕정책 역이용전략을 추진하면서 남한으로부터 경제적 지원을 수용하는 대신 한편으로는 체제갈등을 유지하기 위한 상시적 평화협박 공간이 필요했다. 이를 위해 개성이나 금강산 등 육지에서는 안정적으로 남북경협과 대북지원을 유인하고, 한편 평화협박공간은 바다로 옮기게 된 것이다. 북한은 NLL전략을 고착화시키기 위해 1차부터 3차까지의 교전도 모자라 천안함, 연평도 포격까지 이어오게 된 것이다.”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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