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은 12월 19일 정오 ‘특별방송’을 통해서 김정일이 2011년 12월 17일 오전 8시 30분에 현지지도 중 열차에서 객사를 했다고 발표 하면서 “외국의 조문을 받지 않겠다.”는 방침을 천명함으로서 가장 가까운 혈맹이라는 중국도 조문단을 파견치 않고, 중국대사관 분향소를 찾는 것으로 대신 했다. 그러던 북이 어처구니 없게도 22일 태도를 돌변하여 남측에 조문을 강요 협박하는 생떼를 쓰기에 이르렀다.
22일자‘우리민족끼리’는 인천지법부장판사 최은배의“MB가 김정일 조문을 막는 것은 나치 폭압과 다를 게 없는 반인권적행위”라는 망발을 인용하면서 통합진보당 민주통합당 등 야당을 비롯,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와 노무현재단, 남북강원도교류협력협회,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민가협), 광주시의회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등 종교 및 사회단체가 추모열기에 들뜬 양 선전선동에 광분하였다.
그러면서 우리정부에게“조의방문문제는 북남관계운명과 관련되는 신중한 문제”라며,“남조선당국이 어떻게 나오는가에 따라 북남관계가 풀릴 수도 있고 완전히 끝장날 수도 있다.”고 협박까지 하면서 개성공단 내 우리기업에게까지 <조문과 조의금>을 내라고 강짜를 부리고 있는 상황에서 대북송금사건 주범 김대중재단이사장 리희호와 대북송금 공범 정몽헌 미망인 현정은 현대아산회장이 조문방북을 했다.
2002년 6월 29일 김정일 해적선의 기습공격으로 격침 전사한 경비정 참수리호 장병 6구의 시체를 뻗쳐둔 채 빨강 넥타이를 매고 일본으로 축구구경을 떠나면서 군 당국에 ‘조문’마저 금지시킨 김대중의 처 리희호가 2011년 12월 27일 김정일 조문을 마치고 방명록에 남긴 글귀는 “김정일국방위원장께서 영면하셨지만 6.15남북공동선언의 정신을 이어 하루속히 민족통일이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였다.
노무현 대통령 취임 다음날인 2003년 2월 26일 통과 된 불법대북송금특검법에 따라 검찰의 조사를 받는 등 곤욕을 치르던 중 2003년 8월 4일 새벽 계동 현대사옥 12층 자신의 집무실에서 뛰어내려 자살(타살?)했다고 발표 된 정몽헌 현대아산 회장의 미망인 현정은도 “민족의 화해와 협력을 위해 노력해주신 국방위원장님을 길이길이 우리의 마음속에 기억할 것입니다. 명복을 빕니다.”라는 글귀를 남겼다.
26일 27일 1박2일에 걸쳐서 조문방북을 한 리희호는 김정일에게 극존칭을 써가면서 낮은단계연방제(적화)통일을 약속한 6.15반역선언이행을 다짐하였으며, 현정은은 금강산주부관광객 박왕자 씨를 저격살해하고 천안함폭침과 연평도포격으로 동족을 도륙한 흉악범 김정일에게 ‘민족의 화해협력’ 운운 망발을 했다. 리희호도 현정은도 조국을 위해 산화한 천안함과 연평도 전사자에게는 눈길 한번 안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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