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 그는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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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 그는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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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관료적 발상에 머무르지 말고 기업측면에서 시민사회적 발상을 가져야

▶최재성 민주당 의원 : 종합 비타민 같고 폭, 깊이, 영역 등에서 두루 능력을 갖춘 사람.

▶김성식 한나라당 의원 : 마음가짐이 올바른 사람.

▶권영길 민노당 원내대표 : 기획력, 추진력, 통합능력을 갖고 있는 사람.

김호기 연세대 교수 : 시민사회 리더 중 결점 없고, 완벽한 리더십, 소통의 리더십, 감성의 리더십 등 리더십 세 조건을 갖춘 사람.

▶강준만 전북대 교수 : 대통령급 시민운동가.후계자를 만들 수 없는‘톱-다운’모델.

▶김민영 참여연대 사무처장 : 철두철미한 워커홀릭(일 중독자). 같이 일하는게 힘들 정도지만 스스로 성장함을 느끼게 만드는 사람.

▶탁현민 성공회대 겸임교수 : 절대 인연에 연연하지 않고 아는 사람에게도 국물도 없다. 필요하다면 체면 위신 버리는 사람.

▶시민단체 관계자 : 일을 해야 기쁘고 바뻐야 정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

이것은 정치계와 학계, 시민단체들이 박원순을 본 시견이다.

1956년 3월26일 경남 창녕에서 출생한 박원순(55)은 서울시장 출마를 앞두고 지난 9일 17년간 몸담았던 시민사회단체들을 두루 찾아 다니며 작별를 고함으로서 ‘인권변호사’, ‘시민운동가’역을 모두 마감했다.

박원순 그는 1982년 대구지검 검사로 법조인 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나 그 이듬해 바로 변호사로 개업 해 주로 이념.노동사건을 맡았다.

그는 인권변호사로서 ▲부천경찰서 성고문 사건 ▲미국 문화원 점거 사건 ▲<말>지 보도지침 사건 ▲서울대 우조교 성희롱 사건 등 대표적인 사건을 다루며 활동해 왔다.

국민연금 노령수당 청구 소송을 승소로 이끌어내며 '생활 최저선' 이라는 개념을 처음 도입했고, 국가보안법 철폐도 주장했다.

선배인 조영래 변호사의 죽음을 계기로 유학을 떠난 뒤 돌아와선 시민운동가로 살았다.

1995년에 진보 성향의 시민단체인 '참여연대'를 결성해 소액주주 권리 찾기 운동, 총선 낙천·낙선운동 등으로 국내외 관심을 모았다.

당시 그는 시민사회단체의 상징적 존재로 불리우는 ‘시민운동의 대부’라는 말을 싫어하면서 “많은 운동가 중의 한 사람” 이라고 강조하며 박 변호사가 일궈낸  ‘참여연대’는 시민운동에 중추적 역할을 해 왔다.

2002년 이후엔 ‘나눔’, ‘기부’등에 관심을 돌려 아름다운가게와 아름다운재단을 설립해 시민운동의 새 영역을 개척했다.

2006년엔 희망제작소를 창립해 은퇴자 재교육 프로그램 등을 진행하면서 명함에는 ‘소셜 디자이너’라는 직함을 갖고 다녔다.

그는 시민단체 영역에서 각종 사회문제에 거의 모두 관여해왔기 때문에 '여러문제 연구소장'이라는 별명도 붙었다.

희망제작소 등에서는 상임이사라는 직함보다 '원순씨'라는 이름으로 불리었다. 조직의 창의성을 높이고 소통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 나이나 직급이 방해되면 안 된다는 소신에서라고 했다.

그러나 아름다운재단의 자금 사용처가 불투명하다는 지적이 있었고, 인턴 직원들에게 급여를 거의 지급하지 않아 '무급 착취' 논란에 휘말린 적도 있었다.

갑자기 나타났다 사라지는 일이 있어, 조직생활이 어울리지 않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었다.

그는 정치.행정 경험이 전혀 없다는 약점이 있어 서울시장 출마에 그는 “가보지 않았던 길이라 두렵기도, 외롭기도 하다. 때로는 후회도 하겠지만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다는 기대가 있다”고 서울시장 도전 소회를 밝히기도 했다.

그는 경남 창녕군 출신으로 한나라당 홍준표 대표, 민주당 박영선 정책위의장 등과 동향이기도 하다.

1974년 경기고등학교를 졸업하고 75년 서울대 법대에 입학했으나 민주화운동으로 제적당하고 그는 78년 법원사무관시험을 보고 정선등기소장을 한 특이한 이력도 있다.

80년 사법시험에 합격한 뒤 83년 단국대에서 늦깎이로 사학을 공부했다.

2006년에는 '아시아의 노벨상' 이라고 하는 막사이사이상을 받았고, 만해대상(2006년)과 단재상(2007년)도 수상했다.

1990년대 중반 이후 선거가 있을 때마다 그는 정치권의 '영입 1순위' 였다. 그러나 그는 줄곧 거절했고 2007년 대선 당시 범여권 주자로 이름이 오르내렸으나, 정치권과는 거리를 뒀었다 이번 서울시장 선거전에 발을 들이게 됐다.

그는 ‘아름다운재단’ 작별인사에서 “인권변호사로 산것이 1막이라면 시민운동 길에 들어서서 활동한 것은 2막이다. 50대 중반에 새로운 인생 3막을 시작한다”면서 “지금 가는 길이 종전과 너무 다르지만 1막과 2막의 연장선이라고 생각하고 세상을 좀 더 아름답게 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사회적 기업 운영 경험이 서울 시정에 도움이 되느냐’는 기자들 질문에 “도움 정도가 아니라 바로 그것을 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 뉴스타운  
 
그러면서 그는 “정부는 예전처럼 관료적인 발상에 머무르지 말고 기업측면을 가지면서도 시민사회적인 발상을 해야 한다“ 고 말했다.

시장 출마를 위해 서울 안국동 안국빌딩에 캠프를 차린 박원순은 추석 연휴 동안 선거를 도와줄 인사들의 영입을 마친다는 계획을 세우고 공식 출마는 13~14일쯤 선언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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