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화도 회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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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화도 회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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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사 이야기 2 (글 박종국)

공민왕의 개혁정치가 무산되어 피살당하고, 그의 아들인 우왕이 10살의 나이로 즉위한다. 하지만, 나이가 어려서, 공민왕에게 고명을 받은 이인임이 권력을 횡사한다.

그는 공민왕이 죽을때까지 추진하던 모든 개혁정책을 과거로 환원하는 반동정책을 펼치게 된다. 이에 반발한 신진사대부들이 이인임을 탄핵하는 상소를 올렸으나, 오히려 이인임에게 의해 축출당하고 만다.

고려사회는 안으로는 권문세족과 탐관오리의 횡포가 밖으로는 왜구의 출몰로 심대한 타격을 입고 있었다. 특히 왜구의 출몰은 조운선을 습격받고, 개경 근처까지 왜구가 출몰하는가 하면, 제천같은 내륙지방까지 습격받는 사태가 일어났다.

우왕은 일본에 정몽주를 보내어 막부로 하여금 이것을 금지하도록 요청하는 서신을 보냈지만, 막부는 겉으로는 응하는 척하면서, 속으로는 왜구의 활동을 지원하고 있었다. 고려의 멸망 중에 하나가 왜구라는 점을 본다면, 왜구의 출몰이 심각하다고 볼수 있었다.

그런가하면, 중원에서는 몽고족이 지배하던 원이 만주로 밀려, 북원이 되고, 중원의 지배자로 한족의 주원장이 등장했다. 주원장은 아직도 원을 섬기고 있는 고려에게 즉각 원을 버리고, 명을 섬기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원나라의 덕으로 권력을 유지하던 권문세족이 명을 섬긴다는 것은 심각한 자기부정과 마찬가지이므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였다.

이런 내우외환 속에서, 최영과 이성계의 쿠테타가 발생하여, 이인임이 축출당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쿠테타의 주역인 최영과 이성계는 공민왕시절부터 무장으로써 홍건적의 난을 시작하여, 전쟁터를 전전하던 장수였다.

그때 이인임은 지나치게 권력을 전횡하여, 매관매직을 하는가하면, 경흥부라는 신료를 죽이는등의 악행을 서슴치 않았다. 결국 최영과 이성계의 쿠테타로 인하여, 결국 실각하고, 귀양가게 되었다. 이성계는 이인임을 죽여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최영은 이에 찬성하지 않았다.

한편 명나라는 원나라를 지금의 북몽골지역까지 몰아내고, 요동지방마저 차지하고 말았다. 하지만, 요동에 대한 영향력은 아직까지 미비했음에도 그들은 철령이북지방은 원나라 땅이니, 자기네가 차지하겠다는 것이었다.

물론 고려가 이것에 찬성할리 없었고, 강경파였던 최영은 이참에 요동까지 정벌할 계획을 세워두었다. 하지만, 온건파였던 이성계는 사대불가론을 주장하였다. 작은 나라가 큰 나라를 칠수 없다. 여름에는 장마철이어서 화살촉이 무디진다. 대군이 북쪽으로 진출하면, 후방에 왜구가 쳐들어올수 있다. 농사철이라 많은 수의 인력을 빼내기란 어렵다.

타당한 의견임에도 불구하고, 최영은 요동정벌은 강행했다. 결국 이성계, 조민수등이 이끄는 요동정벌군은 압록강 변에 도착했으나, 이성계의 예상대로 강이 범람하여, 요동으로 건너갈수가 없었다. 다시 한번 회군을 요청했지만, 강행을 독촉했다. 결국 이성계와 조민수는 회군을 강행하고, 숫자적인 열세에 밀린 최영과 우왕은 결국 체포되어 귀양갔다가 나중에 사형당하여 죽고 만다.

왜 요동정벌론은 강행되어야 했는가? 많은 사람들은 이성계를 작은 나라가 큰나라를 쳐서는 안된다는 점을 들어 사대주의자라고 한다. 그리고 권력때문에 의도적으로 위화도 회군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난 위화도 회군이 일어나게 한 책임자는 바로 최영이라고 주장하고 싶다. 일단 요동정벌 반대세력인 이성계를 좌군도통사로 임명했다는 자체도 문제가 있으며, 더구나 이성계의 주장이 첫번째 주장만 빼놓고 타당성이 있는 발언이었다.

원래 전쟁은 장마철을 피하는 법이다. 장마철은 전염병이 돌기 쉬우며, 화살촉이 무뎌지는 것도 사실이다. 더구나 왜구에 대한 방비도 없이 무작정 출정하는 것도 문제가 되는 것이었다. 왜구가 고려의 멸망 원인중 하나가 되었다는 사실을 인지한다는 무작정 강행하는 것도 문제가 있는 것이다. 더구나 농사철인 여름에 군대를 뽑는다는 것은 많은 백성의 불만을 사게 될 충분한 요소가 있는 것이다.

만약 가정이긴 하지만, 만약 요동정벌을 겨울로 했다면 어땠을까? 그렇다면, 이성계의 반론이 없었을 것이고, 충분히 요동정벌을 단행할 수 있었을 것이다. 더구나 명나라가 요동에 세력을 미친 것은 조선 태종 4년에 이르었기 때문에 충분히 정벌이 단행할 만한 것이다.

이성계가 사대주의자가 아니라는 것은 요동, 선양을 공격하는 것이 예일 것이다. 그는 그곳을 공략하면서, 이 땅은 옛 고구려의 땅이며, 우리 고려의 땅이라고 선언했다. 만약 그가 사대주의자였다면, 그 정벌을 했을리가 없었다.

하지만, 결과론적으로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으로 우왕은 폐위당했고, 이성계와 같이 위화도 회군을 추진하던 조민수는 조준의 공격으로 낙마하였으며, 과전법으로 인하여, 권문세족과 친원파의 대부분이 축출당했다.

우왕의 복위운동으로 인하여, 창왕이 폐위당하는가 하면, 정몽주의 국권회복운동의 일환으로 이성계 일당을 축출하다가 오히려 이성계의 아들 이방원에 의해 선죽교에서 피살당함에 따라 고려는 멸망을 맞이하고, 새로운 왕조 조선이 창건하는 것이다.

위화도 회군은 이성계가 의도했는가? 아님 어쩔수 없는 선택인가?는 아직까지 확실히 규명된바가 아니다. 결과론적 해석으로 권력을 위해서 위화도 회군을 단행했다는 북한의 논리가 맞다고 할수 없다.

위화도 회군이 기록된 고려사는 승리한자의 기록이다. 그래서, 역사가 왜곡되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하지만, 최영의 요동정벌은 결국 반대파에게 명분을 제공해주어 결국 자신을 패망의 길로 가게 만드는 비운의 길을 걷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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