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조되는 위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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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조되는 위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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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근대사 1(글 바우)

메이지 이전까지만 해도 천황은 유명무실한 존재였다. 말 그대로 군림한 황제일뿐 아무런 실권이 없는 허수아비였다. 지금이야 천황은 일본인이 신으로 떠받들지만 그당시 일본인들에게는 천황이 있는지 조차도 모를 정도의 소외받은 존재였다.

일본이 건국되고 9세기까지만 해도 천황은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는 존재였다. 하지만 천황의 권력이 쇠약해지고 일본은 분열되어 혼란의 연속일때 천황의 권위는 조선의 몰락 양반마냥 처량한 신세일뿐이었다. 그뒤 일본이 통일되어 노부나가, 도요토미를 이어지는 가운데서도 천황은 뒷전 먼 신세였다.

명나라에서 도요토미에게 일본 천황의 직을 하사했을때 도요토미는 "그깟 천황 내가 맘먹었으면 벌써 했을 것이다."라고 고함을 질렀다고 한다. 신하에게 조롱당할만큼 천황의 권위는 땅에 떨어진 신세였다. 그 현상은 정권이 바뀌어 막부시대에 이르서도 마찬가지였다.

막부시대, 천황은 3만석에 지나지 않았다. 일반 지방 영주가 10만석인 것을 보면 일반 번보다 못한 처지였다. 천황은 궁색한 살림을 면하고자 황실의 귀중한 물건을 시장에 내다 팔기도 했다. 어떤 천황은 즉위식을 치루는데 돈이 없어 20년이 지나서야 겨우 즉위식을 치를 수 잇었다.

하지만 일본 천하를 장악했던 막부는 그런 황실의 사정을 알면서도 돕지 않았다. 오히려 천황이 정치적인 움직임을 보이면 정치적인 압력을 강해 무산시켰다. 만약 막부가 더이상 오래가면 천황은 언젠가 없어질지 모른다는 소외감에 사로잡힐때 이양선이 출몰했다.

16세기, 로마 교황청은 유럽 전역에 신교 열풍이 불자, 위기감을 느끼게 되어 전 세계에 천주교를 전파할 의도로 예수회를 조직한다. 이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국가가 포루투칼과 스폐인, 특히 포루투칼같은 경우 마카오를 경유해서 일본에 천주교를 전파한다.^

하지만 도요토미를 시작한 천주교 탄압은 막부시대에 가서 더욱 난폭해지고, 천주교의 반란으로 인해 천주교는 거의 말살지경까지 갔다. 막부는 네덜란드를 제외한 전 서양국가에 대한 쇄국정책을 썼고, 네덜란드도 나가사키에만 개항을 허용했다.

그렇지만 18세기말부터 서양의 군선이 출몰하면서 막부의 공포는 시작된다. 특히 북쪽의 곰이라 불리던 러시아는 세차례에 걸쳐 탐험대를 보내고 통상을 요구했으나 거절당하자, 북해도의 일본인 거류지를 공격했고, 1806년 영국의 페이튼 호는 적대국인 네덜란드의 함대를 수색하겠다고 나가사키(長기)에 들어왔다.

이때 19살 난 선장은 물과 식량을 공급하지 않으면 정박중인 중국, 네덜란드이 배를 모두 불사르겠다고 협박했다. 이런 일련의 사건을 통해 막부는 더욱더 서양에 대해 경계하게 되었다.

밖에서의 압력에 직면했음에도 막부는 여전히 쇄국을 고수했다. 1790년대에서 1800년대초에 걸쳐 러시아의 개국 압력에도 그들은 예의를 갖추면서 굴복하지 않았다. 더구나 1825년 영국 선원이 물자 공급을 위해 히라도라는 섬을 습격하자, 막부에서는 지방관들에게 근접하는 외국 선박에 대한 격침과 선원에 대한 살해를 지시했다. 물론 현실적으로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이런 "영원한 쇄국"에 대한 간절한 바램은 일본에게 있어 천하의 중심인 중국이 영국에게 무너지면서부터이다.1839년 말 네덜란드, 중국 배를 통해 들어오는 소식은 막부에게 있어 충격적이었다.

더구나 아편전쟁을 통해 문명 국가인 중국이 야만인인 영국에게 항복했다는 소식을 들은 막부는 자신에게도 이런 비참한 현실이 초래되는 것이 아닌지 우려되었다. 당시의 기록에는 <중국에서 내리는 이슬이 일본에게 서리가 되지 않는다고 누가 알겠는가?>라고 적잖이 걱정하고 있었다.

이런 가운데 외부에서 밀려오는 서양 세력에 대한 두려움은 일본이 어떻게 대응하야 하며 타개책에 대해 학자, 관리, 정치 지도자들 사이에 의견이 분분했는데, 이것은 다음 회에서 이야기하도록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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