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의 잇딴 자살과 분신 앞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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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의 잇딴 자살과 분신 앞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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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며칠 사이 언론의 최대 관심사는 단연 대통령의 재신임 문제와 지난해 대선 자금을 둘러싼 정치권의 공방일 것이다. 그러나 이런 정치인들의 집안 싸움에 밀린 채 지면 한 구석에 작게 처리된 또다른 기사는 요새 날씨만큼이나 차갑게 우리들의 가슴을 저미도록 만들었다.

바로 최근 연이어 벌어지고 있는 노동자들의 죽음과 분신 소식이 그것이다. 지난 1970년, 청년 노동자 전태일이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며 자신의 몸에 불을 당긴 지 33년이 지난 현재, 수많은 노동자들이 그 한맺힌 생애를 스스로 마감하였던 역사가 부산과 대구, 그리고 서울에서 되풀이되고 있는 것이다.

사실 참여정부를 표방하며 출범한 노무현 정권은 어쩌면 초기부터 노동정책에 그리 자유롭지만은 않았을런지도 모른다. 올해 초 발생한 두산중공업 노조 대의원 배달호 씨의 자살로 노동계와 정부의 긴장상태가 지속됐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참여정부가 출범하면서 '사회통합적 노동정책'을 통해 노동자의 일방적인 희생강요나 정당한 노동조합 활동에 대한 경영자의 개입·탄압 등으로 인한 노·사 관계의 불균등한 현실풍토를 바꿔나가겠다는 분명한 의지를 밝힌 것도 이러한 노동계와의 입장을 고려한 것이었으리라.

하지만 8개월이 지난 지금, 노·사 동등주의를 주창하던 참여정부는 실망스럽게도 출범 당시의 초심에서 벗어나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외면하기 시작했다. 취임 8개월만에 이미 110명에 달하는 노동자가 구속됐고, 대기업의 노동자를 '고연봉의 노동귀족'이라고 몰아붙이며, 국민소득 2만불 시대의 가장 큰 걸림돌로 매도하기도 했다.

어디 이뿐이랴. 배달호씨 사건 이후 대통령과 정부가 내놓겠다던 무분별한 손배가압류의 남용 억제책은 철도와 한진중공업 등으로 늘어나는 결과만 초래했다.^

결국 이러한 노동정책은 결과적으로 수많은 노동자들에게 바로 33년 전, 청계천의 청년 노동자가 했던 그대로 온몸을 던져 부당한 노동현실을 고발하려는 극단적인 방법만 강요하게 만들었다.

그렇다면 과연 이들이 살고 싶었던 세상은 어떤 세상이었을까. 이해남 세원테크 노조위원장이 불길 속에서 남긴 한마디는 "노동자가 인간답게 살려고 법에 보장된 노동조합을 만들었는데 그 이유만으로 구속·수배·해고되는 나라에서 더 이상은 살아갈 희망을 갖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이용석 근로복지공단 비정규직 노조 광주본부장 역시 분신 직전 동료들에게 남긴 유서에서 "인간답게 살고 싶다"며 "비정규직에 대한 고용안정 요구는 정당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들의 요구가 사실이라면 우리는 지금 노동자가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하는 사회, 아니 노동자는 인간도 아닌 사회에 살고 있는 셈이 되는 것이다. 아마 노동운동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지난 2000년12월부터 지난해까지 무려 517일 동안 '비정규직 철폐'를 외치며 파업을 벌여 온 한국통신 비정규직 노조의 투쟁을 기억할 것이다.

이들의 투쟁은 결국 우리나라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문제를 사회문제화 시키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정규직과 똑같은 일을 하고도 정규직의 절반에 불과한 월급을 받으며 회사측의 차별과 멸시를 견디며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이러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인간답게 살고 싶은' 욕심은 어쩌면 지극히 당연한 섭리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누가 이들의 섭리를 지켜줄 것인가. 노동계는 최근 잇따르고 있는 노동자의 분신과 자살을 계기로 이미 총력투쟁을 선포했다. 그렇다면 그동안 노동계는 무엇을 했단 말인가. 이들의 죽음을 막지 못한 책임이 노동계에는 없다는 말인가.

위에서 언급한대로 한국통신 비정규직 노조의 파업을 계기로 우리 사회에 본격적으로 비정규 노동자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일기 시작했다. 이미 2∼3년 전의 일이다. 이 때부터 노동계가 비정규직 노동자 문제에 대한 본질적인 접근과 관심을 기울였더라면 아마도 '인간답게 살고 싶다'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열망을 안고 산화한 이용석 본부장의 분신은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노동계가, 사회가, 그리고 국민 모두가 비정규직 노동자 문제를 단순한 수사적인 언급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실질적인 노력에서 접근했었다면 하는 아쉬움을 금할 수 없다. 우리의 무관심이 이들 노동자들을 또 다른 죽음의 그림자로 몰아가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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