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길남 씨 | ||
오길남은 서울대학에서 독어독문학과를 졸업하고, 독일로 가서 경제학 박사를 한 모양이다. 공부하는 동안 동갑의 파독 간호원 신숙자(1942)를 만나 두 딸을 둔 모양이다. 오길남은 박정희의 유신체제가 싫다며 반한단체에 가입하면서 북을 동경한 모양이다.
박사학위는 땄지만 직업도 구하지 못했고, 설상가상으로 그의 부인이 아팠던 모양이다. 그래서 독일에서 또아리를 틀고 있는 윤이상의 포섭대상이 됐다. 윤이상의 간교한 감언이설에 그는 북한을 동경했다. 아내의 간곡한 만류를 뿌리치고 아내와 두 딸 까지 데리고 북으로 갔다. 그리고 밀봉교육을 받은 모양이다.
속았구나 하고 있던 차에 독일에 있는 두 사람을 대동 입북시키라는 밀명을 받고 독일로 재파견 되었을 때 그는 혼자 탈출하여 한국으로 왔다. 오길남은 여기에 살고 있지만 그가 억지로 끌고 간 3명의 가족들은 북한에서 가장 험악하다는 요덕 수용소에서 죽음보다 더한 고통을 받고 있다.
오길남의 심적 고통이 이만 저만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그의 고집 때문에 요덕수용소에 갇혀 있는 세 식구들은 지금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상상조차 되지 않는 온갖 고통과 치욕을 당하고 있을 것이다.
윤이상이야 그런 인간이라 치부하지만, 서울대학을 나오고 독일에 가서 박사까지 한 사람이, 민주화가 좋고 유신이 싫다고 주장했던 지식인이, 아내의 동의 없이 그리고 어린 아이들의 운명에 대한 심각한 고려 없이 윤이상의 꼬임에 빠져 온 가족을 북으로 데려간 것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오길남 자신이 유신보다 더 잔악한 독재자였다는 뜻이다.
박정희 대통령은 3천만의 안전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3천만의 안전을 가장 잘 지켜주었다. 그런 박정희를 미워한 오길남, 그는 불과 3명에 불과한 자기 가족의 안전조차 지켜주지 못 할 만큼 무능하고 경박한 사람이었다. 3명의 안전조차 지켜주지 못한 인간이 3천만의 안전을 지켜주기 위해 고군분투한 박정희를 욕한 것이다.
바로 이런 것이 이른바 지식인들의 작태요, 어설픈 민주화 인간들의 작태인 것이다. 그는 이제 와서 가족을 구해달라고 탄원문을 썼다. 그러나 그런 그에게 귀를 기울일 사람은 별로 없었던 모양이다. “지가 저질러놓은 일을 남더러 해결해 달라니!” 아마 이게 사람들의 솔직한 생각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제는 그의 호소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의 부인 신숙자가 윤이상의 고향 통영출신이라는 사실과 그 통영의 딸이 요덕에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신숙자와 그의 두 딸에 대한 구명운동이 일고 있다.
오길남과 그 가족들에 대한 사연은 지금도 수많은 곳들에서 활동하고 있을 제2, 제3, 제 1,000의 간첩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고, 대한민국을 저주했던 나머지 북한을 동경하고 있는 수만-수십만의 또 다른 오길남들에 대한 냉소의 붐이 요원의 불길처럼 이 사회에 번지게 하는데 기여하기를 바란다. 그리고 오길남은 가족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북의 악을 알리는데 남은 인생을 바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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