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존재가 잘 알려지지 않았던, 지구의 반대편 우리나라에도 그의 전기가 오랫동안 베스트셀러 대열에 올랐다. 이제는 진보니 개혁에의 열정이니 하는 것들이 한물간 구식이라고 여겨졌던 우리의 젊은이들이 그를 만나고 감동을 받기도 했었다.
아르헨티나의 백인으로 태어나 의사의 수련을 마치고, 거의 돈 한 푼 없이 친구와 둘이서 남미를 일주하면서 사람들의 고통을 목격한 그는 세상의 고통을 없애보겠다는 생각을 했다. 많은 사람들이 그 생각을 않고 평범한 삶을 살아가지만, 그는 그렇지가 않았다.
낮선 나라. 혁명의 기운이 감돌던 과테말라와 멕시코를 전전하며 피델 카스트로를 만났다. 그리고 그와 함께 기적 같은 게릴라전의 끝에 쿠바를 해방시키는 기적을 이루어 내었다.
그들이 이루어낸 쿠바혁명은 놀라운 것이었고 불가능했던 것이었다. 그들이 이루어낸 놀라운 결과는 오랫동안 중남미를 게릴라에 의한 혁명의 열정으로 이끌었었다. 또한 그는 삶에 대한 뜨거운 열정과, 사람과 삶에 대한 사랑으로 만인의 사랑을 받는 우상이 되었다.
아직도 그가 남긴 말은 세상을 울리고 있다. “우리 모두 리얼리스트가 되자. 그러나 가슴에 이룰 수 없는 꿈을 가지자.”
얼마 전 2003년의 9월. 깐꾼에서 격렬한 반세계화 시위가 있던 그날이 바로 살바도르 아옌데 전 칠레 대통령의 사망 30년이었다. 그 역시 세상의 역사를 바꾸어 쓴 역사적인 인물이었다.
쿠바 혁명의 여파로 중남미 전체가 쿠바 식 게릴라전에 의해 국민들의 삶을 수탈하는 구체제를 혁파 할 수 있다는 기대에 들떠 있을 때 그는 정치권에 뛰어들었다. 그것도 당시 칠레에서 상당히 자리를 잡고 있던 공산당이 아니라 사회당으로 정계에 입문을 했다.
게바라가 죽은 볼리비아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인 칠레에서 조국의 변화를 위해 노력한 그 역시 의과대학을 졸업했었다. 그의 정치생활을 순탄하지 않았다. 그러나 여러 번의 도전 끝에 그는 사회당의 대통령 후보로 선출될 수 있었다.^
마침내 공산당 후보로 나온 시인 파블로 네루다와의 협상 끝에 네루다의 양보로 단일후보가 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아무도 예상치 않았던 일이 벌어졌다. 그는 칠레의 대통령으로 선출된 것이다.
무력이나 혁명이 아니라 선거에 의해 사회주의자가 대통령이 된 것은 남미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리고 세상을 온통 흥분의 도가니에 몰아넣은 쿠바식 게릴라 혁명 외에도 라틴아메리카에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길이 있다는 것을 증명해 보인 의미 있는 사건이었다.
그러나 게바라가 CIA의 지원을 받은 볼리비아 정부군에 의해 사살되었듯이, 그도 미국군대의 지원을 받은 칠레군부에 쿠데타에 의해 사살되었다.
두 사람의 삶의 방법은 달랐지만 그들이 바랬던 것은 동일한 것이었다. 그는 취임식 연설에서 국민들에게 빵과 정의를 약속했었다. 그러나 그는 결국 아무것도 이룩하지 못하고 말았다.
역시 라틴아메리카에서 의미 있는 변화를 이룩하는 것은 어렵고 힘든 일이었던 것이다. 그 역시 리얼리스트였고, 그 역시 실현 불가능한 꿈을 가슴에 앉고 세상을 열심히 달려갔던 로맨티스트였다.
그의 사망 30년이 되는 지난 9월은 조용히 지나가고 말았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게바라의 사망 30주년과는 너무 다른 날이었다. 쿠바의 혁명은 아직도 살아있고, 칠레의 선거에 의한 혁명은 완성되지 않았기 때문일까?
아니면 그의 개인적인 인기와 카리스마가 사람들의 가슴에 선명하게 기억되지 못했기 때문일까. 그는 그에게 대통령후보를 양보했던, 그의 절친한 친구 파블로 네루다보다도 우리에게 더 기억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 라틴아메리카는 다시 선거에 의한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베네수엘라, 브라질, 아르헨티나에서 일제히 사회주의적인 정책을 표방한 후보들이 대통령으로 당선되고 있다.
미국의 지침에 고분고분 따르던 페루와 아르헨티나의 전 대통령들은 무너지고 말았다. 사람들은 말한다. 브라질과 아르헨티나에서 변한 것이 무엇이 있느냐고.
그렇다. 이들 나라는 이미 너무 많은 것을 빼앗겼기에 그것들을 다시 찾아오는 것은 지극히 어려운 일일 것이다. 오직 든든한 군부를 등에 업고, 쿠데타를 극복해 낸 베네수엘라식의 과격하고 급격한 변화만이 오히려 지속가능한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것이 오늘날의 라틴아메리카의 현실이 아닌가 모르겠다. 개혁은 혁명보다 더 어려운 것이기 때문이다.
또 다시 쿠바식의 혁명은 가능한 것일까? 라틴아메리카의 진정한 변화를 많은 사람들은 고개를 젓는다. 쿠바는 당시의 바티스타 정권의 지나친 수탈과, 처음에는 우유부단했으나 나중에는 지나치게 과격했던 미국의 대응이 낮은 예외적인 산물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당시에 소련과 제 3세계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었고, 지금 미국의 경제봉쇄가 아직도 쿠바국민의 단결을 유지하게 만드는 동인이 된다는 것이다.
니카라구아, 엘살바도르, 과테말라의 내전은 끝이 났다. 그리고 페루와 볼리비아의 게릴라전은 소강상태에 들어갔다. 멕시코의 치아빠스, 콜롬비아에서는 아직도 끝나지 않은 꿈틀거림이 소용돌이치고 있다.
그들의 노력은 눈물겹게 감동적이고, 세계의 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움직이기에 충분하지만 정작 자신의 나라를 변화시키기에는 부족하다. 라틴 아메리카에서 최근 잇달아 선거에 의한 집권한 나라들의 운명은 장차 어떻게 될 것인가.
아직도 내 가슴속에는 “모두 리얼리스트가 되자. 그러나 실현될 수 없는 꿈을 가지자.”라는 말이 살아있는데, 정작 그들의 땅은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10월 9일은 체 게바라가 사망한 지 36년이 되는 날이다.
두 사람이 선구적으로 이끌었던 같은 방향을 향한 서로 다른 노력들은 30여년이 지난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데,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가슴에 그들이 남긴 언행과 그들의 지난했던 삶을 기억하고 있는데, 이 슬픈 대륙에는 아직은 의미 있는 변화가 일어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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