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쌓기'습성으로 바라보는 오늘의 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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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커쟈(客家)족들의 집, 투루(土樓).성곽같은 집 안에 수 백명이 함께 산다. ⓒ 뉴스타운 이동훈^^^ | ||
중국인들이 이 쌓는 행위에 집착하는 순간부터는 그 이전의 호방한 대륙적 기질도, 유순하던 기질도 모두가 사라져 버린다. 그 때는 아무리 애걸을 해도 이미 그가 쌓은 벽에 대고 속삭이는 격이 되고 만다.
사실 우리가 알고 있는 중국인 특유의 호방함으로 대표되는 '대륙기질'이란 것 역시 만리장성과 같은 초현실적인 업적에 대한 양적인 개념을 내포하고 있다는 점에서 재고할 부분이 있다. 특히 재물을 땅속에 묻어두는 행위나, 세계 최대의 고속철도망, 갖가지 생산량 세계 최대 등의 기록들도 모두가 외부 세계에 대해 배타적이라는 점에서는 일맥 상통하는 현상이다.
요즘 중국인들의 쌓는 문제가 세계 언론의 주목을 받고 있다. 어제오늘 일이 아니건만 새삼 이슈가 되는 건 그만큼 중국이 중요한 국가로 부상했고 그 사안들이 민감하기 때문이다. 희토류(희유금속)에 대한 관세장벽을 높이고, 류샤오보(劉曉波)의 노벨평화상 수상에 맞서 저항의 장벽을 높이고 심지어는 외신 뉴스 사이트까지 접속을 통제하는 한도없는 쌓기 정책을 보여줬다.
자세히 보면 중국의 쌓기는 최근 3년여 전부터는 거의 정책적 보편성으로 나타나고 있다. 우선 아낌없이 주기만 할 듯하던 '웰컴'식 외자정책이 일순간 "천금을 줘도 싫다,"는 장벽으로 변하리란 생각을 했던 이들은 많지 않았을 것이다. 그것은 필경 중국의 넘쳐나는 외환 보유고에다 인플레 상황과 직결되지만, 외연적으로는 중국인들의 자존적 본성에서 나온 자연적 발상임을 부인하기 어렵다.
중국 정부의 배타적 태도는 사실 상 '구글 추방' 때 쌓기 본색을 나타낸 후 지금까지 일관된 정책기조로 굳어져 오고 있다. 이 무렵 우리는 전면 개방 20년차를 목전에 둔 중국이 진작에 자본주의 체제로 가지 않은 이유를 알게 되지 않았던가. 담장을 쌓을 바에 체제를 바꾸는 우를 범한 위정자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중국 내 거주 외국인들에 대한 배타적인 비자정책이나 지나친 단속을 보면서 이 담장쌓기가 지나치게 불필요한 방향으로 전개된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이미 달러가 달갑지 않은 그들에게는 '종교', '언론', '인권' 이런 이슈와 직결되는 외국인들이 곱게 보일 리는 없을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망설임 없이 벽을 친다. "정말 이렇게까지 할 수 있나?"라고 자탄하던 외국 자본가들이나 언론들, 그리고 외신 뉴스를 지켜보는 세계인들은 요즘 들어서 그 '쌓기 습성' 자체에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던 것이다. 갑자기, 그것도 불필요한 수준으로 치닫는 것처럼 보이는 최근의 중국현상은 고대로부터 지금까지 이어져 온 불변의 원칙이었다는 점을 정확히 인식하는 게 먼저다.
더 간단히 말해서, 중국은 불과 수 십 년 전만 해도 '죽의 장막(Bamboo curtain)' 안에 존재하던 세계였다는 점을 상기해야 한다. 사실 덩샤오핑(鄧小平) 이전의 중공(中共)이 중국 역사 상 최고조의 폐쇄성을 보여준 시기이나, 이미 개방 중국과 함께 살아가고 있는 우리는 그것을 쉽게 간과하곤 한다. 왜냐하면 그 장막 속에 살아보거나 살아 본 이야기를 아직은 적나라하게 들어보기 어려운 까닭도 있다.
그들은 만리장성도 쌓았고, 쓰허위엔(四合院)의 높은 사각 담장의 집을 지었고, 커쟈(客家)족들은 아예 수 십 가구가 함께 사는 성곽 형태의 투루(土樓) 를 지었다. 어디, 그 뿐인가. 그들의 사회,조직문화의 본질을 '꽌시'(關係)로서 이해할 수 있다. 어느 사회에서나 존재하는 이 꽌시가 유독 중국에서 이야기되는 것은 그만큼 그들의 것이 강하고 견고하다는 의미다. 오죽하면 "괜찮다."는 말을 '자신과 무관하다.'는 뜻으로 "메이 꽌시(沒關係)"라고 하겠는가. 여기에 중국인들의 배타성이 표현된다.
혹자는 중국의 역대 왕조들이 망한 가장 근본적 이유가 바로 이 쌓기에 있었다고 지적한다. 진(秦)시황은 만리장성을 쌓다가 진나라를 멸망으로 몰고 갔으며, 당나라는 주변 모든 나라들과 등지다가 결국 소모전으로 내분이 일어 망했다. 도자기나 차, 비단에 대해 폐쇄적인 거래를 고수하려다 오히려 경제적인 고립과 불이익을 자초한 예도 있었다.
결코 틀린 말이 아니다. 그런데 그 말의 이면에는 "그러므로 쌓으면 안 된다."는 경고성 메시지가 포함된다. 역시 옳은 말임에도 불구하고 그 메시지는 결코 현실적이지는 못하다. 바로 "그래도 쌓을 수밖에 없다."는 현실적 필요에 의해 이 메시지의 비현실성이 간단하게 폭로된다.
다시 말해서, 중국이라면 이 쯤에서는 누구나 쌓는 것이 최선의 길이라는 판단을 하게 된다는 의미다. 그러다가는 국가 전체가 외부 세계와 심각한 모순에 직면한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요점은 무엇인가? 내가 집권한 당대에서는 결코 망하지 않는다는 확신이다.
진시황이 결코 슌(The Shun, 匈奴)족이나 외부 세계에 대한 물리적 파워가 부족해서 만리장성을 쌓은 게 아니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만리장성을 쌓는 정성이라면 전쟁준비에 비할 것인가. 그렇다면 양껏 준비해서 화끈하게 한 판 붙는 편이 낫다는 것인가? 결코 그렇지가 않다는 게 바로 권력자의 심리다.
'쌓기'는 일종의 자기만족을 위한 적극적 수비행위다. 즉, 그것은 모든 권력자들이 가지고 싶어 하는 절대 권력의 한 표현방식이기도 하다. 담장을 쌓고 그 안에서 완전한 충족과 권력을 향휴할 수 있다면 어느 권력자가 이를 마다할 것인가 말이다. 진시황의 경우처럼 싸워서 완벽한 승리를 거둔들 그 당대에 다시 무너질 수 있다면 차라리 완벽한 수비자세로 자족적 권세를 누리겠다는 셈이다. 그만큼 절대 권력자의 마음은 일초일각으로 불안하다는 의미인가?
이제 이 글의 결말에서 우리는 중국이 "어디까지" 쌓을 것이며, "그 앞날은 어떻게" 될 것인 지에 대해 가늠해 볼 차례다.
자명하건대, 담장은 점점 더 높아지고, 외부와의 갈등이 심화할수록 더욱 쌓기에 열중할 것이다. 식량과 자원, 그리고 생산력과 소비력이 완벽하게 갖추어진 중국이라는 나라는 이러한 쌓기에 의해 과거 왕조처럼 고통스러운 고립을 경험하거나 국가의 존립을 위협받는 일이 쉽게 일어나지는 않을 것이다.
그만큼 현 중국의 경제와 정치체제는 견고하고 강성하다. 또한 집중적 권력구조에다 13억 인민들이 중화주의를 주축으로 결집돼 있다는 점에서도 특별하다. 쌓으면 필연적으로 나타나게 될 고립과 도태라는 문제들을 상당 부분은 자정할 수 있는 상황이다.
다만 거기에는 한 가지 필수적 전제조건이 필요할 뿐이다. 중국 내부가 되었건, 세계가 되었건, 세상을 움직이는 전혀 새로운 시스템이 출현하지 않는다는 것, 그것이 반드시 전제되어야 가능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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