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해와 표류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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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해와 표류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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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멜 제주도 표착 359주년 기념 특별전

^^^▲ 하멜 일행이 제주도에 상륙하는 모습
ⓒ 집문당^^^

1653년 8월16일. 걸을 수 있는 사람들은 해안으로 걸어 올라갔다. 거기에는 몇 명의 동료들이 여기 저기에 흩어져 있었다. 배는 산산이 부서지고 64명이었던 선원이 36명으로 줄어들었으며, 그 중의 대부분이 중상을 입은 것을 바라보며 우리의 심정이 어떠했으리라는 것은 쉽게 상상할수 있을 것이다.

사라진 사람 중에서 우리는 암스테르담 출신의 선장인 에그베르츠의 시체를 발견했다. 그는 머리에 팔을 베고 해변이 늘어져 있었다. 우리는 그 자리에 그를 묻어 주었다. 우리는 계속하여 해안을 수색하다가 밀가루 한 푸대, 절인 고기 한 배럴, 그리고 포도주 한 통을 발견했다.

주민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으므로 우리는 무인도에 표착한 줄로 알았다. 밤을 대비하여 우리는 덮을 감으로 돛 조각을 모았으나 불을 필 수가 없었다.
<하멜표류기에 나온 글의 일부>

1653년 8월 제주 바다에 낯선 배 한 척이 들어왔다. 배 안에는 64명이 타고 있었으나 그 중 36명이 살아남았다. 생존자 중에 한 사람이 바로 헨드릭 하멜.

하멜 일행은 제주도 부근 해역에서 태풍을 만나 조난을 당해 제주도에 표류해온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의 선원들이었다. 조선에서의 생활을 처음으로 서양에 알린 하멜 일행의 제주도 표착은 조선 근세사 중 서양관계에 있어서 가장 획기적인 사건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 <하멜보고서>가 수록된 연합동인도회사 공문서^^^
'하멜표류기' 육필원본 사상 최초 전시

국립제주박물관은 하멜 제주도 표착 350주년을 기념하여 '항해와 표류의 역사' 특별전을 10월12일까지 열고 있다. 이번 특별전에서는 '하멜표류기' 육필원본을 비롯, 한국·네덜란드·일본 등지의 20여기관(또는 개인)에서 출품된 250여점의 유물이 전시되어 있다.

특히 이번 특별전에 전시되는 네덜란드 국립공문서보관소 소장 '하멜표류기' 육필원본은 전세계적으로 공인된 유일본이다. 지금까지 네덜란드 현지에서는 물론 그 어떤 전시에도 출품된 적이 없는 이 육필 원고가 이번 전시를 통해 최초로 공개되어 조선 근대사에 있어 하멜의 표류가 갖는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이번 전시회는 '서양에 비친 조선'과 '한국의 표류인과 표류문물'로 구성된다.'서양에 비친 조선'에선 조선에 표도한 서양인 등이 본 조선과 당시 서양의 모습을 전시한다.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의 일본 나가사키 무역품, 하멜에 앞서 표착했던 벨테브레(한국명 박연)의 역사기록물, 한라산을 실측한 독일 지리학자 지그프리트 겐테 등의 기행문과 서양 고지도 등이 전시된다.

조선에 대한 무역활동을 위해 네덜란드 동인도회사가 제작한 배 '코리아'호의 항해일지, 하멜의 고향 호르큼시에 세워진 하멜 동상, 하멜 생가터 사진, 하멜이 탔던 스페르웨르호의 무역품,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의 소형 대포 등도 볼 수 있다. 이 외에도 '임금결정문서'와 '하멜 실종보상금 요청서, '출항기록 문서' 등이 전시되어 있다.

항해와 표류로 교류된 동서양의 문명과 문물

고대로부터 인간 삶의 터전이 되고 사람과 사람 사이를 이어주던 바닷길은 난파로 인해 침몰된 많은 보물들이 잠들어 있는 유물의 보고이다. 해양고고학의 성과에 힘입어 그 전모가 밝혀지기 시직한 해양의 침몰 유물들이 이번 전시에서 소개되었다.

제주의 신창리 해저에서는 중국의 무역선이 침몰하면서 선내의 생활용품과 무역품들이 그대로 유물이 되었고, 한국의 침몰선 유적으로는 충남의 보령, 태안 앞바다, 군산의 비안도·야미도 해저에서 인양된 무역선과 유물들이 있다.

도자기로 대표되는 해저 유물들은 당시의 조공무역과 사무역, 자기의 생산과 수입등 요업발달과 무역형태에 대한 많은 자료를 제공해준다.

특히 일본의 고베시립박물관으로부터 대여한 네덜란드 연합동인도회사의 무역품, 중국 경덕진요 청화백자 및 일본 이마리 다채자기 등 한·중·일 무역도자기의 다채롭고 화려한 면모를 볼 수 있다.

^^^▲ 다채자기 부녀소요문 접시(왼쪽), 청자모란동초문 양이병^^^
'표류인과 표류문물'에선 표류의 직접적인 증거물과 그로 인한 문물교류를 살펴볼 수 있다. 최부의 '표해록'등 고대부터 조선시대까지 표류 경험담을 담은 표류 기록, 표류인 송환 관련 쓰시마섬 종가문서등이 전시된다.

그리고 문헌에 나타난 표류기사와, 별도의 표류기사를 선보이고 개인의 문집에 기록되어 있는 흥미로운 사건의 기록들도 공개한다. 표류는 정보의 획득과 생생한 체험을 통해 인식의 세계를 넓히는 계기가 되어 주었다.

특히 옛 문헌중 눈길을 끈 것은 당시 제주목사인 이익태가 쓴 '지영록'이다. 지영록은 제주목사를 제수받고 고향 충남 한산을 떠나 조정에 인사한 후 제주에 부임하기까지 과정과 임기를 마치고 제주를 떠나기까지 행적을 비롯해 재임기간 업무와 제주관련 역사자료 등을 자세히 기록한 책이다.

효종∼숙종 때의 외국인 표류 기록이 들어 있는 이 책의 부록에는 당시 하멜 표류의 기착지가 차귀도 앞 고산 해안(大也水沿邊. 현재 대아물)이라고 정확히 기록돼 있다. 그러나 학계에서는 하멜표착지로 기록된 '대야수포'의 정확한 위치에 대해서는 현재까지도 논란을 거듭하고 있다.

13년28일만에 고향의 품으로 돌아간 하멜일행

1668년 7월20일. 우리는 암스테르담에 도착했다. 우리는 13년 28일만에 우리를 구원해 주신 신에게 감사하며 뒤에 남겨진 우리의 불쌍한 동료들을 측은히 여기시길 신에게 빌었다.

우리와 함께 조선에서 고향으로 돌아온 사람들의 이름은 고르쿰 출신으로서 승선 당시 서기였던 하멜, 데니스, 브리스, 야네, 이보켄, 티에리, 클레르크, 그리고 고드프로이 이다. 조선에 남은 사람들의 이름은 라페, 코넬리스, 니콜라스, 얀스, 울데르스, 아렌트스, 보스켓, 그리고 유트레히트이다.
<하멜 표류기에서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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