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사설 믿지 말자!
조선일보 사설 믿지 말자!
  • 지만원 박사
  • 승인 2010.10.20 02: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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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우익지 노릇하려면 공부 좀 해야

 
   
     
 

오늘 조선일보 사설 “ '6자회담으로 되겠나' 하는 의심 씻을 방안 내놔야”에 대해 매우 중요한 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사설의 요지는 미국과 우리가 아무리 북한을 경제적으로 봉쇄해도 중국이 도와주고 있는 한, 한-미의 경제봉쇄는 아무런 의미가 없기 때문에 6자회담에 응하기는 하되 6자회담 내에서 천안함 문제를 다루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문하고 있다.

“북한을 아무리 압박해도 중국이 북의 생존을 보장하는 최소한의 지원을 계속하는 한 대북 압박의 효과가 뚜렷이 나타나기 힘들다. 이런 딜레마 때문에 한·미 안팎에서 11월 2일 미국 중간선거가 끝나면 어떤 형식으로든 북한과 핵 회담을 재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흘러나오는 것이다... 한·미는 6자회담에서 북핵 문제의 실질적 해법을 이끌어내려면 현재의 구도를 바꿔야 한다... 북한이 과거처럼 핵 합의를 깨거나 회담 중에 새로운 도발을 저지를 경우 상응하는 책임을 6자회담 틀에서 물을 수 있는 방안이 먼저 마련돼야 한다. 한국과 미국은 6자회담 재개에 앞서 중국을 상대로 이 문제부터 풀어야 한다.”

조선일보 사설의 문제점

여기에서 지적돼야 할 가장 큰 문제가 있다. 중국이 북한을 경제적으로 도와주는 것이 대북봉쇄정책의 효과를 감소시키는 것임은 틀림없다. 그러나 그것이 대북봉쇄정책의 무용론으로 해석돼서는 매우 곤란하다. 무용한 것이 아니라 효과가 ‘다소’ 감소될 뿐이다. 대북봉쇄정책의 무용론을 확산시키는 사람들은 빨갱이들일 것이다. 이런 선동에 놀아나는 사람들이 빨갱이들의 대변자 노릇을 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 조선일보가 그러했다. 6자회담에서 천안함을 다루어 보라. 조선일보가 제 정신인가?

무용론은 왜 틀렸는가?

중국은 부자나라가 절대 아니다. 인구가 많은 나라다. 13억 인구들 중에는 정부의 손을 기다라는 사람들이 매우 많다. 세계에서 가장 부자인 미국에서도 정부가 단돈 100만 달러를 쓰려 해도 그 돈을 어디에서 빼내느냐를 놓고 고민들을 한다. 지도층의 격이 있는 나라들에서는 우리처럼 오야 맘대로 예산을 전용하지 않는다.

중국이 설사 미국처럼 잘 산다 해도 북한을 경제적으로 도와주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더구나 북한 같은 거지의 나라를 매년 도와준다는 것은 중국이 미국처럼 잘 산다 해도 악몽이다. 중국이 북한을 어쩔 수 없이 돕기는 해도 그 양은 미미할 수밖에 없다 하다. 그래서 중국은 하루라도 빨리 북한이 경제적으로 독립하기를 바란다.

결론적으로 북한을 경제적으로 봉쇄하는 것은 북한에도 고통이지만 중국에게도 엄청난 고통이다. 아울러 한 두번도 아니고 중국에 자꾸 손을 내밀어야 하는 북한의 고통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이는 경제적으로 당하는 고통 이상으로 더한 고통일 것이다.

북한을 경제적으로 봉쇄하는 것은 곧 중국에게 고통을 주는 것이다. 더러는 13억 인구 중에 그까짓 2,500만의 북한 인구를 떠맡는 것이 뭐 그리 어려운 일이겠느냐, 이렇게 말한다. 중국인들의 대부분은 자기가 벌어먹지 정부에 쌀을 달라하지 않는다. 이 세상에 자기가 벌어먹지 않는 국민 수천만을 먹여살릴 나라는 없다. 또한 이들은 예산이라는 것을 전혀 모르고 하는 말이다.

한국과 미국과 일본은 힘을 합쳐 북한을 더욱 몰아붙여야 한다. 이로부터 북한이 당하는 고통은 곧 중국의 고통이 된다. 중국의 고통이 심화할수록 중국은 북한을 협박하고 설득할 것이다. 대북봉쇄가 중국의 지원 때문에 무용하다는 말은 앞으로 삼가야 할 것이다. 이런 말은 빨갱이들의 선동구호일 것이다. 이런 문제는 조선일보의 사설에서 다뤄야 할 문제가 아니라 전문가가 다뤄야 할 문제다. 전문가가 다뤄야 할 문제를 조선일보 직원이 쓴다는 것은 너무 경솔한 행위다.

조선일보, 우익지 노릇하려면 공부 좀 해야

2008년 11월 조선일보는 문근영 띄우기에 앞섰고, 북한이 기득권 양반층에 저항했다는 이유로 영웅시한 신윤복 띄우기에도 앞장섰다. 당시 사설을 썼던 이선민은 지금 문화부장으로 있는데 그는 당시 문근영에 대해서도 신윤복에 대해서도 별로 조사한 바 없으면서 대세에서 앞장 서보려는 생각에서인지 필자를 몹쓸 사람으로 매도한 바 있다.

그가 문근영과 신윤복에 대해 조사를 했으면서도 그런 사설을 썼다면 그의 사상에 문제가 있는 것이고, 조사한 바 없이 썼다면 당시에 일고 있던 포퓰리즘에 앞장 서 보겠다는 욕심이었을 것이다. 결국 조선일보는 필자의 반론보도를 수용했지만 그 후로도 필자는 조선일보의 함량미달 사설들을 지적한바 여러 번 있었다.

조선일보는 황석영의 강남몽도 띄웠다. 그 강남몽은 친북-반국가를 표방하는 이적 서적이다. 이적서적을 우익지라는 조선일보가 열심히 띄워준 것이다. 조선일보는 황석영을 그동안 여러 차례 띄웠다. 황석영이 대한민국에 얼마나 해로운 존재인가를 공부하지 않은 것이다.

이제 조선일보가 띄워준 강남몽이 신동아 조기자의 책을 표절한 것이라 하니 조선일보는 그 책임을 어찌 질 것인가? 남의 잘못에 대해서는 호통을 쳐 왔던 조선일보가 자신의 잘못에 대해서는 왜 침묵하는가? 그를 띄워준 것만큼 황석영을 준엄하게 몰아쳐야 하는 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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