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인디펜던트, 평양은 '쇼 케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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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인디펜던트, 평양은 '쇼 케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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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주민, 세계에서 가장 억압받는 체제

^^^▲ 세계 최고의 억합통치 체제인 북한의 밤은 역시 에너지 부족으로 어둡기만 하다.
ⓒ paradoxoff.com ^^^
영국의 진보성향의 유력 일간지 ‘인디펜던트(The Independent)’가 “북한은 세계에서 가장 억압적인 체제(Face to face with the world's most repressive regime)‘라는 특별보고서를 27일자 인터넷 판에 게재 북한 실정을 상세하게 전했다.

신문은 신분을 위장(undercover)해 평양을 방문한 후 쓴 특별보고서에서 평양의 뒷골목, 불법 시장 등 평소 가려진 북한 속살을 상세하게 전하면서 평양은 쇼 케이스(Showcase)의 수도에 불과하다고 혹평하며 비판을 했다.

데이비드 맥닐(David McNeill)은 신분을 위장하고 평양에 들어가 몰래 불법시장(illegal market, 이른바 장마당)을 훑어보았다고 전하면서 평양은 아주 잘못된 공산주의의 쇼 케이스 같은 수도라고 말하고, 부패를 막기 위해 약물 처리를 한 북한 창건자인 고 김일성의 시신은 금수산 궁전에 안장돼 있었으며 그의 얼굴은 부패 속도를 늦추려는 것을 속일 수 없듯이 등골이 오싹할 정도로 창백해 보였다고 전했다.

그는 양각도 호텔 40층에서 내려다보니 평양 시가지는 어둑어둑한 조명이 가로등으로부터 발산되고 있었으며, 아파트에 설치된 전구들도 전력이 낮은 품목으로 이를 보니 북한의 연료 및 전력망이 얼마나 부족한지를 보여주는 상징처럼 보였으며, 그 중에서 가장 밝게 빛나는 것은 인공 조각물로 겉은 번지르르하지만 볼품이 없는 우상숭배적인 벽화와 평양시가지에 점철된 김일성의 거대한 동상뿐이었다고 소개했다.

그러나 주요거리를 조금만 벗어나면 지난해 화폐개혁이 실패로 돌아가면서 가난과 영양실조의 모습만이 보였다. 물가는 화폐개혁 이후 무려 10배 이상 치솟았고 그러나 최근에는 종전 가격으로 되돌아가 2배 정도 올라 있다고 전하고, 북한 경제는 이미 절름발이 상태라고 소개했다.

북한 안내원은 방문객을 마치 바이러스 항체처럼 다뤘으며, 시내 중심가에서 동남쪽으로 약 1마일(1.6km) 떨어진 곳에 있는 호텔은 마치 미국의 샌프란시스코 부근에 있는 고립된 알카트레즈(Alcatraz)교도소와 같아 보였다고 말했다.

북한의 최근 상황을 보면 9월 상순에 노동당대표자 대회를 열게Y다고 발표하고는 아무런 이유도 밝히지 않은 채 28일로 연기했다면서 그들은 만수대에 모여 김정일의 3남 김정은을 후계자로 삼는 문제를 논의하게 될 것이라고 데이비드 맥닐은 말했다.

그러나 그러한 사실을 익히 알고 있는 북한 안내인은 그 문제에 대해서는 입을 꽉 다물고는 지체부자유의 북한에 그 문제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등의 질문에는 과감히 등을 돌리는 모습을 보였다면서 “우리는 정치인이 아니라 단지 평범한 보통사람”이라고만 답했다고 방문자는 말했다.

호텔 정면 넘어 보이는 것은 안내인이 양각도 섬으로 가는 다리를 재빠르게 넘어가는 것을 보는 것이 유일했으며 이런 모습을 보니 평양의 주민들은 아마도 세계에서 가장 고립된 수도에서 사는 사람들처럼 기묘한 모습이었다.

많은 북한 주민들은 하루를 시작할 때 도보나 자전거 아니면 시가전차를 타고 일터로 가고 있었으며, 보글보글 볶은 파마머리를 한 여성들은 서둘러 시가전차에 오르고 있었고, 남성들은 아이를 데리고 걸어서 학교까지 데려다 주고 있었다고 평양의 아침 풍경을 자세하게 그렸다.

전통적으로 현대사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은 볼 수 없었다. 아이패드도, 청바지도, 티셔츠도, 스니커도 없었으며 이는 매혹적인 외국산 제품을 금지한 것으로 보인다고 신문은 전했다. 휴대폰은 마치 겨울철의 참새처럼 아주 귀해 보였다.

평양의 뒷골목을 걸어보니 평양의 겉모습이라는 가면이 벗겨졌다. 골목길은 여기저기 움푹 파여 있었고, 사람들은 꾀죄죄했고 마치 골난 사람처럼 시무룩했으며 몇 몇 사람들은 마치 슬럼가에서 사는 사람들처럼 보였다.

뒷골목을 죽 돌아보면서 우리는 약 200명 정도 모인 어수선한 임시 거리시장(장마당)을 지나 쳤다. 이러한 모습은 우리 일행이 처음 본 광경이다. 북한은 조심스럽게 ‘포촘킨 마을(Potemkin Village)’을 지어 놓은 듯했고 국가에서 운영하는 배급제도 갈기갈기 찢겨진 것 같았다.

‘포촘킨 마을’이란 1787년 러시아의 예카테리나 여제가 새로 합병된 크림반도를 시찰 갔는데 그 지역의 지사로 있던 그레고리 포템킨이 빈곤하고 누추한 모습을 감추려고 가짜 마을을 만들어 그 마을이 마치 훌륭하게 만들어진 것처럼 눈가림했던 데서 유래된 것으로 실상을 속이고 겉만 번지르르한 것으로 임시방편적인 것을 비유할 때 주로 이용되는 말이다.

장마당 여성들은 널빤지위에 육류, 채소. 사과, 심지어 속옷까지 올려놓고 장사를 하고 있었는데 상품 중에는 포상으로 받은 물품까지 팔려고 내놓고 있었다. 내가 카메라를 꺼내 들고 사진을 찍으려 하자 장마당 군중들은 성난 얼굴을 하고 거세가 소리치며 일부 군중들이 우리에게 몰려들기도 했다.

꾀죄죄한 군복을 입은 한 남자가 우리의 카메라를 달라고 요구했다. 우리는 가방 속 물건들을 잃지 않기 위해 서둘러 그곳을 빠져 나가려 했다. 내 동료인 영국의 ‘더 타임스(The Times)'신문의 리처드 로이드 패리(Richard Lloyd Parry)는 빠져나가려다 넘어지기도 했다.

따라서 우리는 안전한 도피를 하지 않는다면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결국 카메라를 넘겨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군복 차림의 남성은 우리를 데리고 경찰서와 같은 곳으로 데려 가려고 했다. 그러나 일단의 푸른 제복을 입고 걸어가는 집단 속으로 들어가 그곳을 빠져 나올 수 있었다.

외국 언론인들은 전에도 이와 비슷한 경험을 해왔다. 미국의 ‘커런트 TV(앨 고어 전 미국 부통령이 공동으로 운영하는)’소속의 유나 리와 로라 링이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의 평양 방문으로 석방된 일도 있었다. 다행스럽게 우리는 미국인들이 아니었지만 우리는 정신적으로 그와 같은 일을 당하지 않을까 전전긍긍했다. 우리는 언론인 신분이라는 것이 들통 나지 않기 위해 일반 관광객으로 위장했었다.

우리가 묵고 있는 호텔 방에는 일본인 신분의 신분증, 비즈니스 카드, 그리고 ‘폭군의 학창시절(Schooldays of a Tyrant)’이라는 글을 포함 김정일에 대해 쓴 기사가 담겨진 랩탑 컴퓨터가 있었다. 만일 우리가 그런 조치를 하지 않고 그런 건달패거리 안에 있었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누가 알겠는가? 라고 가슴을 쓸어내리며 기자는 글을 이어갔다.

우리는 서툰 영어(broken English)로 평양 국제 영화 페스티벌 대표단으로 평양에 왔다고 설명을 하기도 했고 잠깐 산보 겸해서 여기에 와봤다고 말했다. 우리가 그렇게 서툰 영어로 말할 때 군대 차량이 군중 속으로 달려들더니 군인들이 우리의 카메라를 가지고 사라졌는데 그전에 군 차량을 타고 온 한 남자는 사진 등을 보여 달라고 했다. 내 기억은 마치 난투를 벌인 사람처럼 혼미해졌으며, 리처드는 흐릿하게 찍혀 있는 달랑 한 장의 장마당 사진과 여러 컷의 금발의 1살짜리 딸의 사진을 보여주었다.

그 남자는 한 살짜리 아이 사진을 보더니 좀 부드러워졌다. 그는 아이의 나이가 몇 살이냐고 묻고 담배 한 대와 교환을 했다. 그런 가운데 일단 군인들이 더 와서 우리를 보고는 키 180cm가 넘는 두 명의 외국인이 어떻게 촬영하려 했는지 등 마치 연극을 하는 듯하면서 사방을 쳐다보며 웃어댔다.

이후 우리는 밴을 타고 ‘차’씨라고 하는 안내인이 있는 호텔로 돌아왔다. 북한 안내인 차씨는 우리를 호텔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의 얼굴은 우리가 당한 소식을 듣고는 충격을 받은 모습이었다. 그렇게 냉엄한 계급사회에서 그는 우리를 책임지고 있었으며 스칸디나비안, 프랑스, 미국 언론인들도 우리와 같은 입장에 처해 있었다.

목소리가 굵직하고 줄담배를 피는 한 보스는 우리의 행동이 북한과 영국사이의 관계 개선에 오점을 남긴다고 말했다. 당시 나는 내가 아일랜드계 사람이라고 말할 때는 아니었다. 우리는 호텔에 갇혀 있으면서 “진심으로(from our hearts)”라는 사과문을 쓰고 그 사과문을 읽었다. 보스는 만족하다고 말은 했지만 4일간의 평양 방문에서 찍은 가치 있는 사진이 들어 있는 카메라 메모리 카드는 돌려주지 않았다.

북한 안내인 차씨는 눈물을 글썽이며 우리 더러 영화 페스티벌 폐막식에 참석하라며 호텔을 떠나도 좋다고 했다. 그는 마지막 건배를 하자면 술을 권했다. 우리 메모리 카드는 끝내 몰수당하고 말았다. 안내인은 “나는 여러분들이 우리나라를 더 나은 쪽으로 이해해 주기를 바라고 다시 방문해달라고 부탁한다”면서 맥주 한잔을 마시며 말했다. “우리는 사람들이 우리나라를 좋아하고 존경해주기를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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