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와 월남 파병
아버지와 월남 파병
  • 구본선 기자
  • 승인 2003.09.22 22: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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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들을 위해서 목숨을 걸어야 했던 아버지의 인생

아버지가 저에게 늘 하시던 말씀이 있었습니다.

"나는 너무나 가난해서 군인이 되었다. 언젠가 내가 지게에 쌀 한 가마를 올려놓고 일어서니까 너희 할머니가 춤을 추셨어. 이제는 자식이 밥벌이 하게 되어서 좋다는 뜻이었지. 그것을 보고서 나는 너무 화가 났어. 그 날로 도끼를 들어 지게를 부셔버리고 군에 입대했다. 그리고 제대해 봐야 별 뾰족한 수도 없고 해서 푸른 날개 달고 군인이 되었다."

너무나 자주 들었던 말이라서 잊혀지지가 않습니다. 땅 한 뼘 없는 가난한 시골 살림이 싫어서 아버지는 군인이 되었습니다. 할아버지는 일찍 돌아가셨고, 청상 과부가 된 할머니는 떡 장사를 하면서 큰 아버지와 아버지 그리고 고모를 키우셨다고 합니다.

그나마도 큰 아버지의 생사는 알 수가 없습니다. 큰 아버지는 6·25 때 월북을 하셨거든요. 아버지가 그러시더군요. "어느 날 너희 큰 아버지가 인민군복을 입고 나타났어. 그리고 인민군들을 따라 북으로 올라갔지. 그 다음엔 살았는지 죽었는지 모르겠다"라고 말입니다.

아버지가 군인이 된 것은 6·25가 끝나고 얼마 후의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군 생활을 하시면서 어머니를 만나 결혼을 하셨습니다. 결혼을 할 때도 아버지는 빈 손이었습니다. 10년동안 군 생활을 하시면서 모아 둔 돈도 없었습니다. 으레 월급을 타면 시골에 계신 할머니와 고모에게 생활비 부쳐 드리고, 나머지는 술 마시는데 쓰시고 그러다 보니까 아무 것도 없었던 거지요.

어머니와 저 그리고 여동생 이렇게 세 식구를 위해서 아버지는 또 다른 지게를 부셔버렸습니다. 그것은 월남으로 돈 벌러 가는 것이었습니다. 아버지가 월남전에 참여하신 것은 무슨 고상한 이상과 이념을 실현하기 위해서가 아니었습니다. '그저 가족들을 잘 살게 하기 위해서'라는 소박한 꿈을 들고 전쟁에 임하셨을 겁니다.

저는 이라크 파병 문제을 이야기할 때마다 아버지가 월남에 갔던 일과 결부되어 떠오르는 생각이 있습니다. 그것은 '먹고 살 걱정이 아니라면 도대채 목숨을 걸고 이라크에 갈 이유가 무엇일까' 하는 겁니다.

40년 전에 월남의 공산화를 막기 위해서 군대를 보냈다면, 지금은 이라크의 독재화를 막기 위해서 군을 파병한다는 말인가요? 막말로 미군은 죽을 이유라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미국과 이라크의 싸움에서 괜히 죽어야 합니다. 하여튼 1970년으로 기억하는데 아버지는 배를 타고 머나먼 바다 남쪽으로 떠나 가셨습니다. 그리고 우리 세 식구는 강릉 외가집에서 1년을 살았습니다.

강릉에 살 때, 저와 동생이 눈 빠지게 기다렸던 것은 아버지가 부쳐주시는 선물들이었습니다. 우편 배달부가 전해주는 소포에는 아버지의 편지와 사진 그리고 각종 맛있는 것들이 들어 있었습니다. 비스킷과 햄, 그리고 닭고기가 들어 있는 깡통이 있었고, 편지 봉투 안에는 네모난 껌들이 들어 있었습니다.

어머니가 편지를 읽는 동안 우리 남매는 아버지가 보내 주신 사진을 보았습니다. 사진을 보면서 제일 놀라운 것은 아버지 옆에 있는 커다란 바나나 열매였습니다. 생전 본 적도 없고 먹어 본 적도 없으면서도 "맛있겠다" 하면서 입 맛만 다셨습니다. 그리고 또 다른 사진 속에는 월남 사람들과 찍은 모습, 동료 군인들과 술 마시는 장면 등이 있었습니다.

월남 가신지 1년 후, 아버지가 돌아오셨습니다. 깡 마르고 시꺼먼 얼굴 그리고 머리의 철모엔 반짝이는 상사 계급장을 달고서 찾아 오셨습니다. 5천 명이 목숨을 잃었다는 월남전에서 아버지가 무사히 살아 오신겁니다.. 귀국하신 아버지의 첫 발령지는 '인천시'였습니다. 그리고 인천에서 아버지는 1979년 상사로 정년 퇴직을 하셨습니다. 그때만 해도 45세가 군인 정년이었습니다.

아버지가 월남에서 돌아 온 후에도 여전히 우리 집은 가난했습니다. 남들은 월남에서 돈도 잘 벌어 왔다고 하는데 아버지는 돈도 못 벌어 오셨습니다.그래서 어머니의 실망이 이만 저만이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어머니는 아버지를 월남에 보내기 위해서 이 사람 저 사람 찾아 다니며 무진 애를 쓰셨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결국은 본전도 못 건진 꼴이 되고 말았습니다.

아버지가 어머니와 돈 문제로 싸우실 때 하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아니 그러면 내가 어디 가서 부정한 방법으로 돈을 벌어와야 되겠어? 내가 나쁜 짓하면 나중에 우리 새끼들이 벌 받을 거 아니야?"

돈 버는 재주는 없고, 지식들 사랑하는 마음밖에 없는 아버지. 그나마 표현을 제대로 못해서 자식들에게 인정도 받지 못하는 분이 저희 아버지입니다. 그런 것 저런 것 생각하면 잘해 드려야 하는데 그렇지가 못했습니다.

이번 추석 때도 시골 집에 내려 갔다 왔습니다. 추석 지나고 다음 날, 금요일 오후 기차를 타고 내려갔는데 어머니만 만나고 올라 왔습니다. 제가 내려 가던 날이 아버지가 근무하는 날이었거든요. 다음날 기차 시간은 아침 7시10분이었습니다.그래서 아버지 직장으로 전화만 했습니다.

"아버지도 못보고 그냥 가야 되겠어요."
"야 임마 아버지 얼굴도 안 보고 그냥 가냐?
"아이들 겨울 방학 때 다시 내려 올게요."
"그래 조심해서 내려가고"

아버지의 금년 연세가 70입니다. 그런데도 여전히 아파트 경비로 일하시며 밤 샘 근무를 하고 계시지요. 평생을 가난하게 사셨고, 지금도 돈 벌러 나가시는 분, 그리고 자식들이 벌 받을까봐 큰 죄 한 번 제대로 못짓고 사셨던 소심한 분, 그의 이름은 아버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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