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사태]공소장에서 밝혀진 무기고 탈취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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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사태]공소장에서 밝혀진 무기고 탈취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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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양 건너온 역사학도의 메일소식

역사학도가 밝혀낸 무기고 탈취 검찰기록

김동문기자님 안녕하십니까, 역사학도 입니다.

나주 경찰서 무기고 무기 탈취는 영암 사람 김00와 박00과 유00이 인솔한 500 여명의 시민군들이, 그리고 금성파출서 무기고 무기 탈취는 박00과 유00과 임00가 앞장서 100 여명이 하였습니다.

이어 20 여명의 폭도들(당시 남민전 점조직이었던 카톨릭 농민회 회원들)을 인솔하여 나주군청으로 쳐들어간 함평사람은 서00 이었으며, 어쩌면 함평사람 노00도 동행하였을 것입니다.

함평 고구마 사건 주동자들이 무기 탈취 계획 주동인 카농은 이미 5월 9일 무기 탈취 계획을 완료해 놓고 있었습니다. 혹시 1978년의 "함평 고구마 사건"을 기억하시나요?

"함평 고구마 사건"을 계획한 카농 조직이 남한측 무기 탈취 주동자들이었는데, 본래 예비군 접수 예정일이 5월 19일이었습니다. 그래서 19일이란 날자가 중요합니다. 아마 무기 탈취 계획이 완료된 날을 21일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나주에서는 19일부터 시도되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금성파출서 무기 피탈 사건 목격자 증언- 함평사람 서00과 노00는 영암사람 김00에게 시켜 무기탈취 특공대가 나주에서 무기를 탈취한 후 광주공원에 집결하여 무기 분배를 하게 하였습니다.

혹시 금성파출서 무기 피탈 사건을 이 준위님께 알려주신 첫 목격자가 바로잡기님 이셨는지요.

바로잡기- 그렇습니다. 80년 5월19일 오후1시-3시 사이 금성동파출소 옆 나주 예비군대대 무기고가 피탈된 현장 150미터지점 사무실(전남매일신문 나주지사)에 보안부대 책임자이00준위와 저, 그리고 피신 온 나주경찰서 정보과 소속 친구 박모 경장 등 3인이 무기고 피습현장을 목격하고 예비군대대에 긴급연락 피탈된 무기의 현황을 파악했고 그곳에서 피탈된 엠60기관총이 25일 충정작전 후 전남도청에 장착된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역사학도- 아! 그랬군요. 금성파출서 무기 피탈 사건의 공소장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동년 5. 21 14:00경 전남 나주읍 금성동 파출소에 침입, 성명 불상 폭도는 군용 트럭 후미로 동파출소 예비군 무기고 문을 들이받아 이를 파괴하고 동 박창남은 칼빈 소총 4정, 동 유재홍은 칼빈 소총 1정을 들고 나오는 등, 엠원 소총 200여 정, 칼빈 소총 5백정, 총탄 50.000 여 발을 가져와 이를 약탈하고," (공소장 45권)

공소장 기록이 애매하여 저도 혼동 했었습니다. 공소장에는 "동파출소 예비군 무기고"라 적혀 있는데, "나주 예비군대대 무기고"였군요. 정확히 말해 파출서 무기가 아니라, 예비군 대대 무기고였습니다. 그래서 엠60 기관총 같은 중장비가 있었던 것이었군요. 그런데, "예비군 대대 무기고"라는 간판이 붙어 있었는 궁금합니다.

바로잡기- 어떠한 무기고도 출입통제지역으로 특히 군부대 무기고는 브록담으로 위장되어 있고 무기고는 적벽돌로 튼튼하게 만들어진 4평규모의 고정건물로서 무기고란 표시는 금기사항으로 해당지역 예비군들이 훈련 후 보관하는 곳이며 금성동파출소 이웃에 위치했고 관리책임자는 대대장 정소령이 관리책임자 입니다.

그렇다면 민간인들 중에는 그 지역 예비군들만 알 수 있는 곳이었겠군요. 사실은 저는 여러 차례 예비군 훈련을 받았으면서도 우리 동네 어디에 예비군 무기고가 있었는지 까맣게 몰랐습니다. 만약 예비군이 무기고에서 직접 무기 분배를 받는 것이 아니라면 예비군조차도 모를 수 있겠네요. 그런데 타지역에서 온 김대중의 사조직 김봉수가 정확히 그 위치를 알고 있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고 생각됩니다.

바로잡기- 더욱 중요한 사실은 79년 광주-목포 간 고속화도로신설로(완공 후 대중도로로 불리기도 했슴)폐쇄된 나주읍 경현동소재 채석장이 폐쇄되었는데 그 장소에 남겨진 발파용 다이너마이트(폭약)가 버려진 창고에 보관되어 있을것으로 판단 화순광업소 폭약탈취 이후 나주까지 폭약을 취득하려고 복면부대가 19일자 나주에 왔다는 사실을 이미 역사학도님이 제게 알려주었지요,

사태후 대대장은 무기고 피탈책임을 물어 저와 함께 광주 진입하는 서남부11개시군의 시민군을 차단하는 공로를 세우고도 사태후 강제 예편 되었고 나주경찰서장(김상윤총경)도 책임을 지고 전남경찰국 수사과장으로 전보되고 바로 사임 했습니다.

현장기록-1980년 5월 19일 오후3시- 나주 예비군대대 무기고가 피습되고 1600여정의 총기가 탈취되던 날!

신의주1호선인<광주-목포>도로에는 삽시간에 각목과 쇠 파이프 그리고 칼빈총으로 무장한 시위대가 도로를 점거한 후 복면으로 얼굴을 가린 장발족의 청장년들이 차창 밖으로 몸을 내민체 요란한 함성을 지르고 목포 와 영암 방향으로 질주하고 있었다

* 나주예비군대대 무기고 탈취 일자가 실제는 19일 13시-15시 사이인데 검찰(공소장 45권)기록은 탈취 이틀 후 동년 5.21일 14시00분으로 기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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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 2011-05-04 18:10:26
계엄군 기록에 19일에 무기고 탈취됐다는 내용은 한 줄 없는데 ㅋㅋ

애쓴다 애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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